지난달에 친구들과 ‘우애 깊은 형제 이야기’의 현장 두 곳을 찾았다. 한 곳은 <의좋은 형제>, 다른 한 곳은 <금덩이를 강물에 던진 형제> 이야기의 배경이 된 곳이다. 두 이야기는 오랜 동안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어서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오래 전에 왔던 곳을 다시 찾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충남 예산군 대흥면사무소 앞에는 ‘이성만(李成萬)·이순(李淳) 형제 효제비’가 있다. 이 지역에 살던 형제가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에는 정성을 다하여 모시고, 돌아가시자 형은 어머니의 묘소, 동생은 아버지의 묘소에서 여묘(廬墓, 무덤 근처에서 여막을 짓고 살면서 무덤을 지킴)하였다. 이들은 아침에는 형이 동생의 집에 가고, 저녁에는 동생이 형의 집에 가서 조석으로 함께 식사하였는데, 국 한 그릇이 있어도 함께 하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 이들의 지극한 효성과 우애를 기리기 위해 1497년(연산군 3년) 2월에 왕명으로 이 비를 세웠다고 한다. 이들의 효행과 우애에 관하여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0 <대흥현조(大興縣條)>에도 실려 있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2호인 이 비 옆에 ‘의좋은 형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여러 가지 행사를 하면서 이들 형제의 효행과 우애를 기리고 있다.
이 지역에는 오래 전부터 이들 형제를 모델로 한 이야기가 전해 온다. 옛날에 의좋은 형제가 아래위 마을에 살았다. 어느 해 가을, 벼 베기를 끝낸 뒤에 형은 새살림을 차린 동생에게 많은 벼를 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동생이 조상의 제사를 받드는 형이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해서 좀처럼 해결이 되지 않았다. 하루는 밤에 형이 볏단을 져다가 동생의 낟가리에 놓았다. 그날 밤 동생도 몰래 볏단을 져다가 형의 낟가리에 놓았다. 이튿날 아침, 형이 낟가리를 보니, 볏단이 그대로여서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동생 역시 낟가리를 보니, 그 수가 줄지 않았으므로 이상하게 여겼다. 두 사람은 이상하게 여기면서 밤마다 볏단을 형은 동생의 낟가리에, 동생은 형의 낟가리에 져다 놓곤 하였다. 어느 어두운 밤, 전과 같이 각각 볏단을 지고 가던 형과 아우는 마을 앞 다리에서 서로 부딪혀 넘어지게 되었다. 그제야 두 사람은 볏단이 줄지 않은 까닭을 알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던 이 이야기에는 아우를 사랑하며 배려하는 형의 마음과 형을 공경하며 사랑하는 동생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한강 하류에 놓인 방화대교 남단의 북쪽 강변에는 ‘서서 금덩이를 던지려는 사람과 앉아서 이를 지켜보는 남자가 탄 배’가 있다. 그 옆의 안내판에는 이를 설명하는 ‘투금탄(投金灘) 이야기’가 적혀 있다. 이 이야기는 《고려사 열전》 권34 <효우정유전(孝友鄭愈傳)>에 처음 전하는 것으로,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와 《신증동국여지승람》권10 <양천현산천(陽川縣山川) 공암진조(孔巖津條)>에도 실려 있다.
고려 공민왕 때 형과 함께 길을 가던 동생이 황금 덩어리 두 개를 주웠다. 아우는 그것을 형과 한 덩이씩 나누어 가졌다. 공암나루에 이르러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별안간 아우가 금덩어리를 강물에 던졌다. 형이 그 이유를 물으니, 동생은 “내가 평소에는 형을 사랑하였으나, 지금 금덩어리를 나누고 보니 형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니, 차라리 강물에 던지고 잊어버리는 것이 좋겠어서 그랬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들은 형은 “네 말이 과연 옳구나.” 하면서 역시 금덩어리를 강물에 던졌다. 이 이야기에는 황금보다 우애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형제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던 두 이야기는 형제 우애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실천을 강조하는 기능을 해 왔다. 나는 우애의 극치를 보여주는 두 이야기의 현장을 돌아보면서 우애에 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옛 사람들은 형제간의 우애를 효 다음으로 지켜야 할 덕목으로 꼽으면서, 우애의 실천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전에는 우애로운 가정이 많았고, 우애 관련 미담도 널리 전하여 왔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자녀의 수가 적은 데다가 개성을 존중하는 의식이 팽배(澎湃)하여 자기 본위의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다. 그래서 우애를 강조하는 사람을 보수적인 사람, 또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다.
며칠 전에는 돈 문제로 다투던 58세의 형이 49세의 동생을 죽인 사건이 일어나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형제들이 남은 조위금 분배 문제로 크게 다퉜다는 이야기나, 유산 상속 문제로 다투던 형제자매가 왕래를 끊고 지낸다는 이야기는 이제 새삼스럽게 들리지도 않는다. 재산 문제로 형제간에 다투는 사람이 몇 년 전만 하여도 일곱 집 중 한 집 정도였는데, 요즈음에는 세 집 중 한 집 정도로 많아졌다고 한다. 이런 일로 미루어 보면, 이제 돈 앞에서는 우애를 헌신짝처럼 던져버리는 세상이 된 것 같아 마음이 어두워진다.
나는 어렸을 때 ‘형우제공 부감원노(兄友弟恭 不敢怨怒,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손히 하여 감히 원망하거나 성내지 말아야 한다.)’란 말을 듣고, 이를 실천하려고 애쓰며 살아왔다.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은 <퇴계가훈(退溪家訓)>에서 “형은 아우보다 먼저 태어났으니, 아우 되는 이는 형을 반드시 공경하라. 아우는 형보다 뒤에 태어났으니, 형 되는 이는 반드시 아우를 사랑해야 한다. 형제간엔 재물을 잊어버리고, 언제나 마음을 천륜(天倫)에 두어야 한다. 만약 이해를 따지면, 불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형제 사이에 재물이 끼어들고, 이해를 따지게 되면 불화할 수밖에 없으니, 천륜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으라는 퇴계 선생의 가르침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이다.
일찍이 장자(莊子)는, “형제는 수족과 같고, 부부는 의복과 같다. 의복은 찢어지면 새 것으로 바꿔 입을 수 있으나, 수족은 끊어지면 다시 이을 수 없다.”고 하여 우애의 소중함을 강조하였다. 이 말은 부부관계를 폄하(貶下)한 듯하여 아쉬움이 있지만, 우애를 강조한 뜻은 깊이 새겨둘 만하다.
우애하는 마음을 갖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는 자녀에게 우애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이를 실천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자기 형제자매와 우애롭게 지내야 한다. 부모가 스스로 우애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그 가르침은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또, 자녀가 둘 이상일 때에는 편애(偏愛)하지 말아야 한다. 편애는 자녀의 마음에 불화의 씨앗을 심어놓는 것이다. 그 씨앗이 싹이 터서 자라면, 우애는 민들레 홀씨처럼 공중으로 날아가 흩어져 버리고 말 것이다. 자녀들에게 우애로운 형제의 미담을 들려주는 것도 우애하는 마음을 심어주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애 깊은 형제 이야기의 현장을 찾아보며 그 이야기의 의미를 되살려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2019. 1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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