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이 사는 집 세면대에는 대개 배수구를 막는 마개가 있다. 그래서 그것으로 배수구를 막아 물을 받아놓고 손이나 얼굴을 씻는다. 마개는 전에는 고무로 만든 것을 사용하였으나, 요즈음에는 쇠에 도금하거나 스테인리스로 된 것을 많이 사용한다. 마개를 닫고 여는 방식을 보면, 전에는 고무마개를 손으로 눌러 막고, 잡아 올려 열곤 하였다. 요즈음에는 수전 뒤쪽에 있는 막대를 이용하거나, 손으로 직접 마개를 눌러 닫고 연다. 세면대에 물을 받아놓고 세수를 하면,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하는 것보다 편하고, 씻는 동작을 하는 동안 물을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아 물을 절약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이를 널리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나라의 세면대에 마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이를 아예 설치하지 않는 나라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터키를 들 수 있다. 내가 터키 에르지예스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객원교수로 근무할 때 터키인의 가정에 가 보니, 세면대의 설계 자체가 마개를 막을 수 없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오래된 개인주택이라서 그런가 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새로 지은 아파트에 가서 보아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면대의 배수구를 막을 수 없으니,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채 흘러내리는 물에 손을 씻거나, 두 손을 모아 물을 받아 올려 얼굴을 씻어야 한다. 얼굴이나 손을 씻는 동작이 끝날 때까지 수도를 틀어놓고 있어야 하니, 물의 소비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를 처음 본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이곳 사람들은 물을 아낀다는 의식이 전혀 없나?’, ‘유럽화 경향을 보이는 나라에서 이런 불합리한 현상을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왜 이런 문화가 형성되었지?’ 하는 의문이 일었다. 나는 궁금한 것을 풀기 위해 터키 문화에 관한 책을 읽으며, 이런 문화가 형성된 배경과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터키의 주류를 이루는 민족은 튀르크(Türk) 족으로, 우리 역사서에 돌궐(突厥)로 표현된 민족이다. 이들은 일찍이 중앙아시아 지역에 살면서 소와 양을 키우던 유목민족이다. 고대에 이들은 중국 북방지역에 거주하면서 우리 한민족과 싸우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하였다. <<삼국사기>> 19 <고구려본기> 7의 양원왕(24대) 7년(551년)조를 보면, “가을에 돌궐이 고구려에 쳐들어와 신성을 포위하였으나 승리하지 못하자, 군대를 이동하여 백암성을 공격하였다. 왕이 장군 고흘(高紇)에게 병사 1만을 주어 그들을 물리치고, 1천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는 기사가 있다. 이로 보아 돌궐은 고구려와 다퉜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뒤에는 고구려와 동맹을 맺어 협력하였다. 이때를 생각하면, 한민족과 튀르크 족은 형제 관계라는 말이 헛말이 아니라고 하겠다. 터키에서는 역사교과서에서 한국을 형제국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튀르크 족은 전성기에 유라시아 지역 동서와 남북에 걸쳐 대제국을 형성했다. 이들은 중원이 수나라에 이어 당나라에 의해 통일된 데다 내부 분열이 생기면서 동돌궐과 서돌궐로 나눠졌다. 동돌궐은 630년, 서돌궐은 651년 당나라에 의해 멸망했다. 그 뒤에 후돌궐이 일어나 전성기를 이루었고, 고유의 문자를 개발하여 사용하면서 ‘돌궐비문’에 강성기(强盛期) 왕의 사적을 기록하였다. 현재 중국 신장의 위구르족이 동돌궐의 후손이라면, 터키는 서돌궐의 분파다. 서돌궐은 동남쪽으로 이동하여 지금의 아나톨리아 반도에 자리 잡아 셀주크 튀르크(Seljuk Türk)를 세웠다. 이 나라는 뒤에 오스만 튀르크(Osman Türk)로 이어져 크게 세력을 떨쳤다. 지금의 터키공화국은 오스만 튀르크를 이은 나라이다.
현재 터키는 유목민족의 후예답게 목축을 많이 하지만, 다양한 산업이 발달한 산업국가이다. 그러나 이들은 선조들이 유목생활을 하면서 이룩한 문화를 잊지 않고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선조는 유목민이었으므로, 물과 풀이 있는 곳을 찾아 옮겨 다니며 살았다. 그래서 흐르는 물에 세수하고, 몸을 씻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에 비하여 일찍부터 농사를 지으며 정주생활(定住生活)을 한 우리 민족은 집집마다 샘이나 우물을 팔 수 없기에 두멍에 물을 길어다 놓고, 아껴가며 썼다. 이런 생활 방식이 세면대에 마개를 막는 문화를 형성하였다. 그런데 터키 사람들은 집안에 세면대를 설치하면서 마개를 막는 한국이나 유럽의 문화를 따르지 않고, 자기 선조들의 문화적 전통을 이어 가고 있다. 그래서 집안에 세면대를 설치하면서 마개를 쓰지 않고, 수도꼭지를 틀어 물이 흐르게 한 뒤에 그 물로 손이나 얼굴을 씻는다.
나는 터키에 있을 때 터키인의 집에 가서 묵은 일이 있다. 저녁을 먹은 뒤에 세면실에서 칫솔질을 하고, 물로 입안을 가시려고 컵을 찾았으나 컵이 없었다. 하는 수 없어 손을 오그린 뒤에 물을 받아 입을 가셨다. 집 주인에게 컵이 없다는 말을 하니, 터키인은 컵을 쓰지 않고 손을 오그려 물을 담아 올려 입을 가신다고 하였다. 이것 역시 유목생활을 하던 선조가 흐르는 물가에서 양치질을 하고 입을 가시던 생활습관에서 형성된 문화이리라. 양치질을 할 때 컵을 사용하지 않는 것 역시 이런 문화적 전통에서 연유된 것이라 하겠다.
문화는 오랜 동안 한 지역에서, 같은 언어를 쓰며 살아온 사람들(민족)이 생활 속에서 형성하여 전해오는 유형·무형의 것들이다. 이것은 그 민족이 사는 곳의 생활환경과 역사성을 바탕으로, 그들의 공동심성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각기 다른 습관이나 문화는 그 나름의 형성 배경과 이유가 있다. 이를 알아야 그 문화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다른 문화의 형성 배경과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자기 문화의 잣대로 그 문화를 폄하하거나, 자기 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하면, 관규여측(管窺蠡測, 대롱으로 하늘을 보고 표주박으로 바닷물의 양을 잰다는 뜻으로 사물에 대한 이해나 관찰이 매우 좁거나 단편적임을 비유한 말)의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다. 다른 문화의 형성 배경과 이유를 알고 이해할 때 그 문화와 교류할 수 있고, 그 문화를 지닌 사람들과도 교감하게 될 것이다.(2019.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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