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는 충남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에 있는 도미부인 유적지를 다시 찾았다. 이곳에는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백제시대에 뛰어난 정절을 보인 여인으로 기록되어 있는 도미부인의 사당과 묘, 상사정(相思亭)이 있다. 먼저 도미부인 정절사(貞節祀)와 묘를 살펴보고, 도미부인이 산에 올라 남편이 실려 간 뱃길을 바라보고 그리워하며 통곡하였다는 상사봉의 상사정을 찾아 올라갔다. 정상에 오르는 가파른 길 양편에는 진달래꽃이 군데군데 무리지어 곱게 피어 있다. 진달래꽃을 살펴보니, 대부분은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데, 몇 포기는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서 있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렸으나 온전한 땅에 뿌리를 내린 진달래 못지않게 자라 예쁜 곳을 피우고 있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위치를 바꿔가며 사진을 찍을 때 문득 광릉수목원에서 갔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광릉에 있는 국립수목원에 갔는데, 수목을 특성에 맞게 단지를 조성하여 잘 관리하는 모습이 놀라움과 함께 큰 감동을 주었다.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풀과 나무를 살펴보면서 전나무숲 쪽으로 가다가 보니, 뿌리 채 뽑힌 전나무들이 땅바닥에 누워 있다. 작은 나무도 아닌 아름드리나무 몇 그루가 뿌리 채 뽑혀 땅바닥에 누워 있는 것을 보는 순간, 나는 놀라움과 함께 충격을 받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궁금하여 둘레를 보니, <태풍 콘파스 피해 현장>이란 작은 표지판이 서 있다. 쓰러진 나무들은 201092일에 순간풍속 19~25/sec으로 부는 태풍의 피해를 입은 것이라고 한다. 땅위로 드러나 말라버린 뿌리를 보니, 깊게 뻗었던 굵은 뿌리는 없고, 잔뿌리만 잔뜩 엉켜 있다. 이 나무들은 땅속 깊숙이 뿌리를 뻗지 못해 강풍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것이 분명하다. 피해 입은 나무들을 제거하지 않은 것은 자연 상태로 보존하여 생태적 변화를 관찰하려는 뜻에서라고 한다.

 

   태풍 피해 현장을 지나 조금 올라가니, 넓게 조성된 전나무숲이 있다. 이곳의 전나무들은 피해를 입은 나무들만큼 큰 나무들인데, 전혀 피해를 입지 않고 반듯하게 서서 위용(偉容)을 자랑하고 있다. 같은 수목원에서 자란 비슷한 크기의 전나무가 한쪽은 피해를 입고, 한쪽은 피해를 입지 않았는데, 그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나무가 서 있는 곳의 환경의 차이 때문인 것 같다. 피해를 입지 않은 나무들이 서 있는 곳은 비스듬한 언덕으로, 습기가 많지 않아 땅속으로 뿌리를 깊이 뻗지 않으면 수분과 양분을 취할 수 없는 곳이다. 이곳의 나무들은 생존을 위해 땅속으로 깊고 넓게 뿌리를 뻗었을 것이다. 그래서 잘 자랄 수 있었고, 태풍에도 끄떡없이 버틸 수 있었다. 이에 비해 피해를 입은 나무들이 있는 곳은 골짜기의 낮은 지대로 습기가 많은 곳이다. 이곳의 나무들은 뿌리를 땅속으로 깊이 뻗지 않아도 수분과 양분을 취할 수 있었으므로, 힘들여 땅속으로 뿌리를 뻗지 않고, 옆으로 잔뿌리만 뻗었을 것이다. 당장의 편함에 스스로 만족하여 뿌리를 땅속으로 깊이 뻗지 않았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피해를 입지 않은 나무들은 쓰러진 나무들이 땅속으로 깊이 뿌리를 내리지 않아 태풍의 피해를 입은 것을 안타까워하는 듯하였다.

 

   이 나무들을 보면서 자연스레 <용비어천가> 2장이 떠올랐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꽃이 예쁘고 열매를 많이 맺는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아니 하므로, 내를 이루어 바다에 간.

 

<용비어천가>는 조선 세종 27(1445)에 정인지, 안지, 권제 등이 지어 세종 29(1447)에 간행한 악장(樂章)의 하나이다. 훈민정음으로 쓴 최초의 작품으로, 조선 건국의 초석(礎石)을 놓은 목조익조도조환조태조태종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 모두 125장인데, 대부분은 여섯 선조의 사적(事跡)을 중국 고사(故事)에 비유하여 그 공덕을 기리는 형식으로 지었다. 그러나 제2장은 뿌리 깊은 나무샘이 깊은 물처럼 가까운 것에서 비유를 취하여 여섯 선조의 공덕을 칭송하면서, 새로 세운 조선이 흔들림 없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아주 잘 표현하였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예쁜 꽃과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기도 하다. 이것을 사람의 경우에 대응시키면 어떨까? 뿌리 깊은 나무와 같은 사람은 심지(心地)가 굳고, 바르며,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나무처럼 나쁜 환경이나 어려움, 또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바르게 판단하고, 바르게 행동하여 큰일을 성취한다. 나무를 가꿀 때 뿌리가 튼튼하도록 하는 것처럼 사람을 기를 때에는 심지가 굳고 바르게 키워야 한다. 심지가 굳은 사람, 올바른 인격을 갖춘 사람을 기르는 데 중요한 요인은 환경과 교육이다. 좋은 가정환경과 사회적 환경에서 부모, 교사, 어른으로부터 바른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좋은 환경에서 바른 교육을 받으며 자라면, 예의와 염치 체면을 아는 사람, 선악에 대한 분별력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여기에 종교적인 신념이 합해지면 더욱 좋을 것이다.

 

좋은 환경에서 자랄지라도 바른 교육을 받지 못하면,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사람이 된다. 과잉보호를 받으면, 온실의 화초가 자생력이 부족한 것처럼 자주성이 부족하고, 의타심이 강해진다. 기를 살려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선악의 기준도 없이 무엇이든지 들어주며 키운 자녀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나 협동심을 기를 수 없고, 바른 가치 판단력을 가질 수 없다.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좌절하는 학생, 어머니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는 마마보이, 어려움이 닥치면 쉽게 포기하는 젊은이가 된다.

 

환경이 좋지 않을지라도 바른 교육을 받으면,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고난극복의 의지를 가지고 자기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 바위틈에 뿌리를 박은 나무는 환경이 나쁘지만, 삶의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잘 자라서 꽃을 피운다. 환경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는 바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사회적 낙오자가 되기 쉽다. 상사봉의 진달래는 환경이 좋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자립의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노력하고, 옆에서 도와주면, 바르고 튼튼하게 자라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상사봉 바위틈에 핀 진달래와 광릉수목원의 뿌리 뽑힌 전나무는 환경과 교육의 중요성과 함께 스스로 생존의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말해 준다. 자연 현상을 보면서 배운 것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지혜를 가져야겠다 <성동문학 제17, 서울 : 성동문인협회, 2017. 09.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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