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초여름에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에 자리 잡은 홍릉수목원에 갔을 때의 일이다. 숲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수목원을 둘러보니, 싱그러움을 자랑하고 있는 나무와 풀들이 아주 정겹게 느껴졌다. 밤나무와 나도밤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고, 자리를 옮겨 가던 중 하얀 풀꽃 두 포기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꽃 이름을 몰라 해설사에게 물으니, ‘개망초라고 하면서, “이 꽃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우리나라를 망하게 하려는 뜻에서 퍼뜨린 꽃이라 하여 나라를 망하게 하는 꽃이라는 말이 전해 온다.”고 하였다. 그 때부터 나는 이 꽃에 관심을 갖고, 예쁜 꽃에 왜 이런 이야기가 전해 오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개망초는 국화과의 두해살이풀로, 키는 50~100cm이다. 잎은 어긋나고, 피침(披針, 양쪽 끝에 날이 있는 곪은 데를 째는 침) 모양 또는 타원형이다. 6~8월에 흰색 꽃이 아래쪽 가장자리에서부터 위쪽으로 올라가며 핀다. 잎이 연하고 부드러워 한창 자라나는 초여름까지 새순을 뜯어 나물이나 국을 끓여 먹기도 한다. 한방에서는 약용으로 쓰는데, 감기학질전염성 감염위염장염설사 등의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 꽃은 북아메리카 원산의 귀화(歸化) 식물인데, 번식력이 매우 강하여 우리나라 전국 각지의 길가나 빈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꽃의 한가운데에 있는 노란 꽃술과 이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퍼진 하얀 꽃잎의 모양이 마치 계란 프라이와 같다고 하여 계란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꽃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 온대지방에 널리 퍼져 자라고 있다.

 

   북아메리카 원산인 개망초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경인선 철도 공사 때라고 한다. 경인선 철도는 1896(고종 33) 329일 미국인 J.R.모스가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부설권을 얻어, 1897329일 인천 우각현(牛角峴, 지금의 도원역 부근)에서 공사에 착수하였으나, 자금 부족으로 중단하였다. 그 후 일본인이 경영하는 경인철도회사가 부설권을 인수하여 18994월부터 다시 공사를 시작하여 1900년에 완공하였다. 철도공사 때 레일을 괴는 굄목(침목)을 아메리카에서 들여왔는데, 굄목에 개망초의 씨앗이 붙어 들어와 철로 주변에 피기 시작하였다. 그 때는 일본의 침략 야욕이 드러나기 시작하였고, 철도 공사에 따른 많은 폐해가 생겼으므로, 철도 공사를 보는 한국인의 마음은 매우 불편하였다. 그런 한국인의 눈에 철도 공사 현장 주변에 수없이 피는 개망초는 무척 밉고,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나라를 망하게 하는 망국초(亡國草)라고 하며 일본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토로하였다. 거기에 더하여 개망초는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를 닮았다 하여 더욱 미워하였다. 그 뒤로 개망초의 효용이나 꽃의 아름다움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망국초라고 하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전해 왔다.

 

   개망초가 나라를 망하게 한 꽃이라는 이야기는 중국 초나라와 관련되어 전해 오기도 한다. 초나라의 한 농부가 아내와 함께 열심히 밭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군에 입대하였다. 아내는 밭일을 열심히 하며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후, 그녀는 초나라가 전쟁에 져서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실망하여 병이 났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이 돌아왔을 때 잡초가 무성한 밭을 보여줄 수 없다.’는 생각에서 병든 몸을 돌보지 않고 밭에 나가 풀을 뽑다가 지쳐서 죽고 말았다. 전쟁이 끝난 뒤에 남편이 돌아와 보니, 아내 없는 밭에 잡초만 무성하였다. 남편은 혼자서 밭에 무성한 풀을 뽑아 개같이 망할 놈의 풀이라고 하며 던졌다. 그래서 개망초또는 초나라가 망할 때의 풀이란 뜻으로 망초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번식력이 매우 강하여 자주 뽑지 않으면 무성한 개망초의 특성과 관련지어 꾸며낸 이야기일 것이다.

 

   개망초는 길가나 밭가, 담장 밑, 산자락을 가리지 않고 틈만 있으면 어디든지 자리를 잡고 자란다. 한두 포기가 외롭게 자라 꽃이 피기도 하고, 몇 포기가 함께 자라 꽃이 피기도 한다. 거름기가 있고 햇빛이 잘 드는 곳에서 자라면 꽃이 탐스럽고 예쁘다. 그러나 척박한 땅에서 자란 것은 키도 작고, 꽃도 작다. 그러나 개망초꽃은 어디서 자라 피든, 화려하지 않으면서 맑고 깨끗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개망초는 꽃이 예쁘니 화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화단에 심어 가꿀 만도 한데, 이 꽃을 화단에 심어 가꾸는 것은 아직까지 보지 못하였다.

 

   몇 년 전 일자산에 갔을 때의 일이다. 산등성이로 난 길을 따라 걷다가 하남시 서부면 감곡동 쪽으로 내려가면서 보니, 길 양편 산자락에 개망초가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다. 노란 얼굴(꽃술)에 하얀 꽃잎을 예쁘게 단 개망초가 떼를 지어 피어 있는 모양은 정말 예뻤다. 몇 그루씩 피어 있어도 예쁜데, 넓은 면적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고, 멋졌다. 씨를 부리고 가꾼 사람이 없건만, 보는 사람도 많지 않은 산자락에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대견하였다. 이런 광경은 다시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서 사진을 찍은 뒤에 산길을 내려갔다. 얼마 뒤에 춘천 문배마을에 갔을 때에도 개망초 군락지를 보았다. 그곳에는 개망초가 마을 입구의 길 뒤쪽 빈터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길가에 심어 가꾼 여러 가지 꽃들과 어우러져 아주 예쁘고 멋졌다.

 

   개망초는 잎이 식용 또는 약용으로 쓰이고, 꽃이 매우 예뻐서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음 직하다. 그러나 미움의 대상이 아니면, 잡초 취급을 당하고 있다. 충남 천안에 근무하는 한 초등학교 여교사가 하던 말이 떠오른다. 그녀가 담임한 반 어린이들과 함께 화단을 정리하는데, 봄에 심지 않은 개망초 몇 포기가 피어 있었다. 그녀가 개망초를 뽑으려 하자, 한 어린이가 이렇게 예쁜 꽃을 왜 뽑아요?” 하면서 뽑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그녀가 교장선생님의 말씀이니 뽑아야 한다고 하자, 그 어린이는 울면서 그 꽃을 뽑지 말라고 하여 매우 난감하였다고 한다. 이 말을 들으며 나는 농작물 또는 관상용 화초와 잡초를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일까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잡초는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 가지 풀로, 농사꾼의 입장에서 보면 농작물 아닌 것은 모두 잡초이다. 화단을 가꿀 때 사람들은 자기의 취향에 맞는 화초는 심어 가꾸지만, 자기 취향에 맞지 않으면 잡초라 하여 뽑아버린다. 개망초는 예쁜 꽃이지만, 나라를 망하게 하는 꽃이라는 누명을 벗지 못하였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잡초 취급을 당하고 있다.

 

   개망초는 우리나라에 와서 사람을 해친 적도 없고, 나라를 망하게 한 일도 없다. 한국에 들어오는 과정과 시기 때문에 나라를 망하게 한 꽃이라는 누명을 썼다. 이제 누명을 벗겨줄 때가 되었다. 개망초는 식용과 약용의 유용성과 함께 예쁜 꽃을 피운다. 작고 가벼운 씨로 멀리 퍼져 나가고, 기름진 땅이나 메마른 땅을 가리지 않고 틈만 있으면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자라 꽃을 피우는 강한 번식력이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생존에 대한 열망과 의욕을 북돋워 준다. 개망초의 꽃말은 화해이다. 편견(偏見)과 아집(我執) 때문에 편 가르기가 심한 우리 사회에서 화해는 정말 필요한 화두(話頭)이다. 우리는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개망초가 나라를 망하게 한 꽃이라는 그릇된 선입관을 버리고, 보이는 그대로 예쁘게 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꽃의 꽃말처럼 우리 모두 화해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었으면 좋겠다. <청하문학 15, 서울: 청하문학회, 201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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