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한 아파트 단지의 뒷동에 살던 딸이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지난 1월에 미국 LA로 직장을 옮긴 사위를 뒤따라갔으니 잘 된 일이다. 그런데도 딸을 떠나보낸 나와 아내의 마음은 세상이 텅 빈 것 같고, 허전하다. 3년 전 같은 아파트 앞 동에 살던 큰 아들네 가족이 직장 근처로 이사를 갔을 때에도 그랬는데, 이번에는 그 정도가 더한 것 같다. 마음이 여린 아내는 아파트 뒤쪽 베란다에서 딸이 살던 아파트를 내려다보면서도 눈물을 글썽이고, 딸이나 외손자손녀 이야기만 나오면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한다.

 

   딸은 1996년에 결혼하여 서울에서 2년 간 신혼생활을 한 뒤에 한국 기업의 주재원으로 미국에 가서 4년여를 지낸 뒤에 2002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때 우리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자리를 잡아 지금까지 살았다. 딸은 12년을 사는 동안 두 차례 이사를 하였으나,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의 이사여서 늘 우리 곁에 있었다. 그 동안에 미국에 가기 전에 낳은 외손녀는 고등하교 2학년 학생이 되었고, 미국에 있을 때 낳은 외손자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다.

 

   사위는 성실하고 부지런하며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아 여러 차례 승진을 하였다. 그러나 임원으로 승진하지 못한 채 50세 가까이 되자 자원하여 명예퇴직을 하였다. 퇴직한 후에 두 번이나 새로운 회사에 취업하여 몇 달씩 근무하였으나 그의 능력이나 뜻을 펼 여건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던 중 중소기업의 미국법인 장으로 선발되었다. 한국에서 좋은 대학을 나와 미국 유학을 하였고, 전에 미국 주재원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어서 발탁된 것 같다. 나이 50이 넘어 새로운 직장을 잡은 것도 다행스런 일인데, 자녀들의 학업 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미국 LA의 법인장이 되었으니, 참으로 잘 된 일이다. 이 일을 아는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한다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위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라 믿고 감사한다.

 

   딸네 가족이 미국에 가게 되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이 일은 하나님의 은혜로, 잘 된 일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출국을 축하하고, 감사하며 그곳에 가서 잘 살기를 바라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섭섭하고 허전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그 동안 가까이 살면서 나눈 정이 깊고, 이번에 떠나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말은 아이들 공부가 끝나면 돌아온다지만, 그 때가 언제일지 모르겠다. 작은애가 대학을 마칠 때까지만 계산하여도 10년 넘게 걸릴 것이다. 대학을 마친 큰애가 학업을 계속할지, 직장은 어디서 잡을지도 확실하지 않으니, 돌아올 날을 쉽게 점칠 수 없다. 나와 아내는 나이가 점점 들어가니, 전처럼 가까이 살면서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더욱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가까이 사는 동안 우리는 외손녀와 외손자가 하루하루 자라는 과정을 보고, 재롱을 보며 즐거워하였다. 명절 때는 물론 시간이 맞으면 큰아들과 작은아들네 아이들까지 함께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무한한 행복을 느꼈다. 딸은 수시로 드나들며 집 안팎의 대소사를 이야기하였다. 나나 아내가 몸이 아플 때에는 문병 와서 위로하였다. 자기 볼 일로 백화점이나 마트에 갔다가도 예쁜 옷이나 신발이 있으면 사다 주었다. 자기 볼일로 어디를 갔다가도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과일이나 음식이 눈에 띄면 사서 들고 왔다. 우리 아파트 단지 안의 소식은 물론, 이웃 동네의 크고 작은 소식도 알려주었다. 딸은 우리의 눈과 귀의 역할을 해 주었다.

 

  사위와 딸은 미식가(美食家)에 가까울 정도로 맛에 민감하다. 외손녀 또한 그러하다. 그들은 맛있는 음식점을 가본 다음에는 우리 부부를 데리고 갔다. 그래서 가까운 곳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동네의 좋다는 음식점을 안내하곤 하였다. 음식 값은 우리를 대접하는 뜻에서 그가 내기도 하고, 좋은 곳을 안내받은 턱으로 내가 내기도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딸네 가족과 정이 깊어졌다. 그런 딸네 가족이 멀리 떠나고 보니, 우리 아파트 단지, 아니 서울이 텅 빈 것 같다.

 

  아내는 경동시장의 과일과 채소의 값이 동네의 마트보다 훨씬 싼 것을 보고, 이것저것 사려다가 나눠줄 딸이 없음을 생각하고 주춤하였다. 시내 음식점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다가도 딸네 가족과 함께 식사하던 생각이 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예쁜 옷이나 장신구(裝身具) 가게 앞을 지나다가도 이를 사다 주면 좋아할 외손녀가 없음을 생각하고 눈물을 훔쳤다.

 

  나는 아내에게 우리가 미국에 가거나 딸네 가족이 한국에 오면 만날 터이니 너무 아쉬워하거나 허전해 하지 말라고 위로하곤 하였다. 아내는 내 말에 공감하면서도 가슴이 아리고 텅 빈 듯한 것을 어찌 하란 말이냐고 대꾸하며 눈물을 훔치곤 한다. 이를 보는 나의 눈가에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곤 한다. 나는 아내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려고 차에 태워 소요산으로 가서 산길을 걷기도 하고, 신북온천에 가서 쉬기도 하였다. 강원도 고성에 있는 콘도에 가서 쉬면서 온천욕을 하고, 통일전망대와 DMZ박물관을 관람하기도 하였다.

 

  미국에 있는 딸과 외손자손녀와는 자주 카톡, 보이스톡, 영상통화를 한다. 그러는 동안에 가슴이 텅 빈 것 같던 허전함과 아리던 상처는 조금씩 아물고 있다. 이제 그곳 생활에 잘 적응하면서 건강하게 지내기를 기도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자주 안부를 전하면서 지내다가 만날 날이 속히 오기를 기다려야겠다.

 

  며칠 후면 대학의 교수인 큰아들이 연구년을 맞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난다. 아들네는 1년 후면 돌아오겠지만, 딸네가 떠난 뒤에 바로 떠난다고 하니, 더욱 허전하다. 남아 있는 작은 아들네 가족과나 자주 만나야 할 터인데, 아들과 며느리가 바쁘고 거리가 머니 자주 만나기도 어려울 듯하다. 텅 빈 것 같은 허전함과 아쉬움을 달래며 지낼 일이 걱정이다.

                                                                            (2014.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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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에 교일산우회 남부모임 회원 7명과 함께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강촌리에 있는 구곡폭포와 문배마을에 갔다. 오전 950분에 상봉역에서 만나 춘천행 열차를 타고 1시간쯤 달려 강촌역에 도착하였다. 강촌역에서 내린 우리는 기다리고 있는 택시를 타고 구곡폭포 매표소 앞 주차장으로 갔다. 주차장에서 보니 왼쪽 길은 봉화산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 길은 구곡폭포로 가는 길이다. 문배마을은 구곡폭포 입구에서 갈라진다고 하므로 구곡폭포 매표소 쪽으로 갔다.

 

   구곡폭포 매표소 앞에는 길 양쪽에 세운 목조 문기둥에 가로로 걸쳐놓은 현판에 자연이 살아 숨쉬는 구곡폭포 관광지라고 커다랗게 쓴 글자들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매표소에 가니 어르신들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고 하여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길 양편에는 서 있는 아름드리나무들이 만들어 주는 그늘을 따라 황토 오솔길을 걸어 올라갔다. 길옆의 계곡에는 물이 조금씩 흐르고, 산에는 여러 모양의 바위들이 멋진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계곡의 물이 많았으면 시원함과 산길의 운치를 느끼게 해주었을 터인데, 초여름의 가뭄이 심한 탓에 물이 거의 말라 아쉽게 느껴졌다.

 

   구곡폭포는 해발 526m의 봉화산 기슭에 있는 높이 50m의 폭포이다. 구곡폭포는 아홉 구비를 돌아서 떨어지는 폭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구곡폭포는 1981213일 춘천시 관광지로 지정되는데, 옛 이름은 문폭(文瀑)’이라고 한다. 회원들과 대화하며 걷다가 길옆에 세워놓은 간판을 보니, 그 내용이 매우 흥미로웠다.

 

봉화산(해발 525.8m)이 품고 있는 생명수가 아홉 골짜기를 휘돌아 내리고, 선녀의 날개옷처럼 하늘거리는 아홉 줄기의 사뿐한 물 내림, 그 조화로운 물소리가 아름답고 단아한 폭포입니다. 폭포에 이르는 황토 오솔길과 시냇물을 벗 삼아 폭포에 이르면 , , , , , , , , 의 쌍기역() 아홉 가지 구곡혼(九曲魂)을 담아가실 수 있습니다.”

 

   쌍기역으로 된 낱말 9개를 제시하고, 이를 구곡혼이라고 한 발상이 매우 흥미로워 각 낱말의 뜻을 생각해 보았다. 각 낱말의 뜻과 나타내려는 의도가 얼른 떠오르는 말도 있지만, 무어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는 말도 있었다. 조금 올라가니, 작은 간판(leaflet)에 낱말 하나를 적고, 그 말이 지닌 의미와 지향점을 짧게 풀이하고, 영어 단어로 적어 놓았다. 이렇게 적은 아홉 개의 작은 간판이 폭포 앞까지 띄엄띄엄 서 있다. 나는 낱말의 뜻과 지향점, 그 말을 번역한 영어 단어가 궁금해 적으면서 올라갔다.

 

(희망은 생명. Dream), (재능은 발견. Talent), (지혜는 쌓음. Wisdom), (용기는 마음. Courage), (전문가는 숙달. Expert), (인맥은 연결고리. Connection), (태도는 됨됨이. Altitude), (맵시와 솜씨는 산뜻함. Freshness),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 End).

 

   구곡폭포 가까이 오니, 문배마을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나왔다. 구곡폭포를 보려고 경사가 급한 꼬부랑길 위에 놓은 나무계단을 한참 올라갔다. 수많은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니, 50m 높이의 폭포가 보였다. 그러나 가뭄 탓에 흐르는 물이 적어 폭포로서의 이름값을 느낄 수 없어 아쉬웠다.

 

   구곡폭포 입구 갈림길에서 오른쪽 능선 쪽으로 길을 잡아 문배마을로 향했다. 널찍하게 닦아놓은 비탈길과 계단을 40여 분 걸어 올라가니 문배마을이 나왔다. 문배마을은 산 정상처럼 보이는 분지(盆地) 마을인데, 625 전쟁 때 전쟁이 일어난 것도 모르고 살았다는 평화로운 마을이다. 66,000넓이의 분지인 이 마을은 200여 년 전에 형성되었는데, 이 지역 산간에 자생하는 돌배보다는 크고 과수원 배보다는 작은 문배나무가 있었고, 마을의 생김새가 짐을 가득 실은 배 모양이어서 문배마을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문폭(구곡폭포의 옛이름)’의 뒤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문배(文背)마을이라고 하였다고 하기도 한다. 구한말 춘천 의병장으로 유명한 이 마을의 선비 습재(習齋) 이소응(李昭應, 18521930) 선생은 그의 문집에서 구곡폭포를 문폭이라 하고, 문배마을에 관하여는 문배의 샘물은 달고, 토지는 비옥하며 둘러친 산으로 하여 마치 큰 배와 같이 생겼다.”고 하였다.

 

   문배마을 어구에는 자연생태 우수마을로 인정한 환경부장관의 인증서(2010. 1. 1.~2012. 12. 31.)를 확대하여 올려놓은 간판이 서 있다. 세움 간판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니, 길옆에 심어놓은 여러 가지 꽃들이 개망초를 비롯한 야생화와 어울려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아주 조용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주는 마을에는 띄엄띄엄 집이 있는데, 모두 식당 간판이 붙어 있다. 각 집에는 주차장은 물론 족구장을 비롯한 작은 운동장과 간이 운동 시설이 보였다. 이로 보아 이곳은 우리처럼 잠깐 왔다가는 손님도 있지만, 단체로 와서 친목 도모와 함께 체력 단련을 하는 손님이 많은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형이 서울에서 소개받았고,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만난 서울 손님들이 소개한 신씨네 집을 찾아갔다. 야외에 마련된 넓은 마루에 앉아 닭백숙을 주문하고, 서비스로 주는, 칡가루로 부친 전을 안주로 이 집에서 담갔다는 술을 한 잔씩 마셨다. 우리는 문배마을에서 빚은 술은 문배주라고 하면서 이 술이 그 이름난 문배주와 관계가 있느냐고 물었다. 젊은 주인은 이곳에 오는 손님들이 이 술을 문배주라고 하지만, 이름난 문배주와는 관계가 없다고 하였다. 문배주는 원래 평양에서 밀좁쌀수수를 재료로 하여 만들던 술로, 술의 향기가 문배나무의 과일에서 풍기는 향기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86년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는데, 20006월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 건배하여 유명해졌다. 우리는 문배마을에 와서 전통의 문배주를 맛볼 수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문배마을에서 빚은 술이 곧 문배주라며 웃었다. 닭백숙을 기다리는 동안 여행, 건강, 사회문제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곳에서 먹은 맛있는 닭요리와 유익한 대화는 고갯길을 넘어오느라고 쌓인 피로를 말끔히 날려 주었다.

 

 

   가던 길을 되돌아오는 동안 산세(山勢)와 길, 여러 나무와 풀의 어울림을 살펴보았다. 푸른빛을 자랑하는 나무와 하늘을 번갈아 보면서 70이 넘은 나이에 건강한 몸으로 이런 곳에 올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였다. 가뭄으로 물이 적어 구곡폭포의 멋진 모습을 보지 못하고 내려오는 길이 못내 아쉬웠는데, 매표소 가까이에 예쁘게 지어놓은 구곡정(九曲亭)’이 아쉬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2014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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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교일산우회 남부모임 회원들과 함께 서울시내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회원의 밭농사 현장을 찾았다. 회원들은 건강 증진을 위해 먼저 서울시 강동구와 경기도 하남시에 자리잡고 있는 일자산 산행을 한 뒤에 회원이 농작물을 가꾸는 밭에 갔다. 회원이 어디에서, 어떤 작물을, 어떻게 재배하는지 그 현장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회원들은 천호역과 잠실역에서 보훈병원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보훈병원으로 갔다. 셔틀버스는 천호동에서는 10, 잠실에서는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데,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타야 하였다. 나는 천호역에서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중앙보훈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은 것에 놀랐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희생하신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에 대한 진료와 의학적정신적 재활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한 보훈병원 이용자가 많다는 것은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에 대한 국가적 배려가 깊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여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중앙보훈병원에서 만난 회원 9명은 회원의 안내로 보훈병원 뒤에 있는 일자산 등성이에 난 길을 따라 걸었다. 경사나 굴곡이 심하지 않은 산등성이가 4km 가까이 이어지므로 일자산(一字山)’이라 하였다는 산 이름처럼 산길은 경사나 굴곡이 심하지 않아 걷기에 좋았다. 길 양편에 서 있는 크고 작은 나무와 풀들은 푸른빛을 더해 가고 있었다. 회원들과 삼삼오오(三三五五) 짝을 지어 걸어가면서 주고받는 대화는 참으로 정겨웠다.

 

   산길을 걸을 때 유난히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개암나무였다. 자주 가는 대모산에서 보지 못하던 개암나무가 열매를 담은 파란 주머니를 다닥다닥 달고서 뽐내며 서 있었다. 어린 시절 뒷동산에서 보던 개암나무와 부모님 산소 옆에 줄지어 서 있던 개암나무의 모습이 떠올랐다. 춘천 김유정 문학관 뒷산에서 보던 커다란 개암나무의 모습도 떠올랐다. 터키에 있을 때 흑해 연안에서 보던 개암나무숲의 모습도 자연스레 떠올랐다.

 

   우리 일행은 1시간 넘게 걸은 뒤에 땀을 식히려고 일자산 등성이에 있는 쉼터의 간이의자에 앉았다. 그 때 회원이 배낭에서 포도주 한 병과 부침개를 꺼내놓았다. 회원은 오이를, 회원은 초컬릿 과자를 꺼내놓았다. 쉼터의 간이탁자가 갑자기 조촐한 파티의 식탁이 되었다. 회원들은 포도주잔을 높이 들어 이런 기회가 자주 있기를 빈다.’는 건배사를 줄인 구호 이기자를 크게 외친 뒤에 건배(乾杯)하였다. 산에서 부침개와 오이, 과자를 안주 삼아 마시는 포도주의 맛은 아주 좋았다.

 

   얼마를 더 걸은 뒤에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산을 내려왔다. 2시간 이상을 걸었으니 5~6km는 족히 걸었으리라. 내려오는 길 양편에는 노란 얼굴에 하얀 꽃잎을 예쁘게 단 개망초가 주욱 늘어서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산을 내려오니, 물류 창고들이 밭 가운데에 서 있었다. 낯선 곳이기에 여기가 어디냐고 물으니, 그곳은 경기도 하남시 서부면 감북동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회원의 안내에 따라 물류 창고 뒤에 있는 밭으로 갔다. 거기에는 두 필지의 널찍한 밭이 있는데, 왼쪽이 회원이 농사짓는 밭이라고 하였다.

 

   밭의 입구에는 농기구와 거름 등을 보관할 수 있는 간이시설과 걸터앉을 수 있는 나무토막 등이 있었다. 200평은 족히 될 것 같은 밭에는 토마토와 가지, 고추가 튼실한 열매를 자랑하고, 상추호박오이땅콩강낭콩고구마도라지부추토란생강당귀 등이 자라고 있었다. 밭 가장자리에는 활짝 핀 백합꽃이 줄지어 서 있다. 이들은 기름진 땅에서 충분한 영영분과 적당한 수분을 섭취한데다가 햇볕을 제대로 받아 자람 상태가 아주 좋았다. 갈색을 띈 흙은 매우 기름져 보이는데, 두둑은 물론 고랑에도 잡초가 전혀 없다. 숙련된 농사꾼이 정성스레 가꾸는 밭임을 알 수 있었다. 농작물들은 주인이 자기들을 사랑과 정성으로 보살피고 있다고 말하는 듯하였다.

 

   ㅂ회원은 서울 시내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20여 년 전부터 농작물을 가꿨다고 한다. 어렸을 때 농촌에서 자라며 농사짓는 것을 보았기에 농작물을 가꾸는 일이 낯설지 않아서 동료들과 공동으로 농사일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계속해 왔다고 한다. 강동구 상일동이 개발되기 전에 밭을 빌려 30여 평의 밭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그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바람에 옮길 장소를 물색하던 중 4년 전에 지금의 밭을 얻어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하였다. 그는 여러 작물의 특성을 연구하여 그에 맞는 재배법을 쓰고 있다고 하였다. 그가 가꾼 밭작물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을 본 이곳 토박이 농사꾼들도 모두 놀라워한다고 하였다.

 

   그는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천연비료를 만들어 쓰는데, 이를 만들기 위해 특별한 정성을 기울인다. 거름을 만들기 위해서 천호동 집 근처의 기름집에서 수시로 깻묵을 얻어오고, 건강원에서 건강식품을 다리고 난 찌꺼기를 얻어온다. 깻묵에 뜨물을 부어 발효시킨 뒤에 건강원에서 얻어온 한약재와 건강식품 찌꺼기를 다시 섞어 뜨물을 부어 비닐로 덮어두면 완전히 발효되어 좋은 거름이 된다. 밭에서 뽑은 풀과 집에서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 중 소금기가 없는 밥이나 과일껍질은 물론이고, 대변도 따로 받아 발효시켜 거름을 만든다. 밭 가장자리에 비닐로 덮은 둥그런 더미가 몇 개 있는데, 그게 바로 거름을 발효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해서 만든 거름은 최상의 천연비료이므로, 이를 먹고 자란 농작물은 아주 건강하다. 그래서 병충해에 잘 견디므로, 따로 농약을 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이렇게 몇 년을 하면 토질도 바뀌어 농작물이 잘 자라는 땅이 된다고 한다. 천연비료를 만들어 쓰는 그의 꾸준한 노력과 정성이 놀랍고 갸륵하다.

 

   나는 일행과 함께 밭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상추 줄기에 달린 잎을 따가지고 왔다. 집에 와서 상추를 먹어보니, 쌉쌀하면서 고소한 맛이 유별하였다. 식당에 가서 먹거나 가게에서 사다 먹던 상추의 맛과 달랐다. 아내는 이렇게 맛 좋은 상추는 처음 먹어본다며 좋아하였다. 나는 상추를 먹으며 1주일에 45일을 거름의 재료를 비롯하여 농사에 필요한 것들을 자전거에 싣고 50분씩 달려가서 농작물을 가꾸는 교장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정년퇴임한 후에 밭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농작물의 특성에 따른 농사법을 연구하면서 정성과 땀을 기울이는 교장이 그 일을 하면서 더욱 건강하기를 기원한다. (2014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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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임새는 판소리에서, 장단을 짚는 고수(鼓手)가 창()의 사이사이에 흥을 돋우기 위하여 삽입하는 소리로, 분위기에 맞게 좋지’, ‘얼시구’, ‘좋다’. ‘그렇지’, ‘잘한다등의 말을 말한다. 추임새는 고수뿐만 아니라 청중도 하고, 판소리뿐만 아니라 탈춤에서도 많이 한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국립극장으로 고() 박동진 명창의 판소리 공연을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박 명창이 마이크 앞에 서서 허두가를 불렀는데, 청중들이 조용히 앉아 듣기만 하였다. 박 명창은 스탠드에 걸려 있던 마이크를 빼어 들더니, “아니, 이 잡것들, 요렇게 가만히 자빠져 있으려면 뭐 하러 왔당가? 내가 소리를 잘 하면, ‘좋지’, ‘얼시구’, ‘잘한다하면서 손뼉도 치고 그래야 내가 신명이 나서 소리를 하지! 가만히 자빠져 있으려면 집에 가서 낮잠이나 자!” 하고 말했다. 이런 야유 섞인 꾸지람을 들은 청중들이 머쓱해 하자, 박 명창은 서양음악 감상회에 가서는 조용히 앉아 감상해야 하지만, 판소리 공연장에서는 추임새를 해야 창자가 신명이 나서 소리를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추임새의 필요성과 요령을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판소리 공연장의 분위기나 감상 태도에 익숙하지 않아 조심하던 청중들이 박 명창의 설명을 들은 뒤에 적절히 추임새를 하였다. 그래서 그 날의 공연장은 아주 흥겨운 소리판이 되었다.

 

   ‘추임새란 말은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맞추느라 훌륭하거나 뛰어나다고 말하다.’의 뜻을 가진 추다또는 추어주다의 관형형에 모양, 상태, 정도를 나타내는 접사(接辭) ‘를 더한 말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소리판이나 탈판의 추임새는 소리꾼이나 탈꾼의 흥을 돋우기 위해 하는 말이다. 고수나 청중이 분위기에 맞춰 추임새를 잘 하면, 판소리 창자(唱者)나 탈춤 연희자(演戱者)는 흥이 나서 더 잘 하게 된다. 그에 따라 관객도 더욱 흥이 나서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러고 보면, 추임새는 창자나 연희자만을 위한 것도 아니고, 관객만을 위한 것도 아니라 양편 모두를 위한 것이다.

추임새는 소리판이나 놀이판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꼭 필요하다. 상대방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였을 때, 그 것을 이해하고 잘한다고 칭찬을 하고 격려해 주면, 그 사람은 신명이 나고, 힘이 생겨 그 일을 더 잘 하게 된다. 이를 보는 사람도 덩달아서 기쁘고 즐겁게 된다. 이것은 가정이나 직장, 교회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을 보면, <잠언> 2511절에는 경우에 알맞은 말은 은쟁반에 담긴 금사과라고 하였다. 그리고 <에베소서> 429절에는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데에 필요한 말이 있으면, 적절한 때에 해서, 듣는 사람에게 은혜가 되게 하십시오.”라고 하였다. ‘경우에 알맞은 말은 남을 깎아내리거나 헐뜯는 말이 아니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며, 칭찬과 격려의 마음을 담은 말이다.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으며, 덕을 세우는 데에 필요한 말을 적절한 때에 하면 듣는 사람에게 용기와 힘을 주게 되고, 하던 일을 더 잘 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말은 은쟁반에 담은 금사과처럼 귀하고 예쁘며, 품위가 있고 멋이 있으며, 상대방에게 은혜가 된다. 이러한 말은 곧 판소리나 가면극에서 말하는 추임새와도 같을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늘 남의 장점을 말하고 칭찬하는 사람이 있다. 그 분은 오래 전에 한 직장에서 몇 년간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교수이다. 그 분은 그 자리에 없는 사람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의 장점을 들어 이야기하고, 부족한 점이나 잘못한 일은 화제에 올리지 않거나 감싸는 모습을 보이곤 하였다. 나는 그 분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그 후 이를 본받아 실천하면서 살아왔다.

 

   사람들 중에는 분위기에 맞춰 칭찬하고 추임새를 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단점이나 잘못된 점을 들추어 꼬집기를 잘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을 깎아내리거나 욕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의 말은 말하는 사람의 품위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바로 싫증이 나게 만든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만나기만 하면,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의 지난 일, 그 사람이 힘들 때 조금 도와주었던 일 등을 되뇌면서 그 사람을 꼬집고 헐뜯어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 사람과 함께 앉아 이야기하게 되었을 때에 딴 생각을 하곤 하였고,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아 피하곤 하였다. 나는 그 사람에게 좋은 것만 기억하세요. 나쁜 기억은 잊어버리고, 화제에 올리지 마세요. 기분 좋은 화제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자주 만나 술을 사드리겠습니다.” 하고 충고의 말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아 자주 만나지 않은 채 세월이 흘렀는데, 지금은 고인이 되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한다. 분위기에 맞게 하는 칭찬 즉 추임새는 상대방을 신명나게 하고, 그에 따라 나도 즐겁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남의 결점은 감싸주고, 장점을 드러내어 칭찬하는 사람이 추임새를 잘 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추임새를 잘 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추임새를잘 하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따르게 된다. 추임새의 요령과 효과를 잘 알고 실천하면, 우리의 삶은 은쟁반의 금사과처럼 더욱 예쁘고, 품위가 있으며 풍요로워질 것이다.

   <성동문단 제14호, 서울 : 성동문인협회, 2014. pp.12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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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2014. 02. 14)에 교일산우회 회원들과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안산 자락길을 걸었다.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3번 출입구에서 만나 독립문공원을 지나서 아파트 뒤쪽에 있는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니 안산 자락길표지판이 나왔다. 서울 시내의 크고 작은 산에는 쉽게 접근하여 편히 걸을 수 있는 만들어 놓고, ‘둘레길이란 이름을 붙여 놓았다. 그런데 몇 군데에는 장애인 휠체어나 유모차도 이용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놓고, ‘자락길이란 이름을 붙여 놓았다. 이 말은 산자락에 있는 길이란 뜻인 듯하다.

 

   안산은 서대문구에 자리잡고 있는 산으로, 멀리서 보면 말의 안장과 같다고 하여 안산(鞍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안산은 정상이 해발 296m로 나지막한 산인데, 전망대에서 남산타워가 바로 보이고, 그 뒤로 관악산이 보였다. 북동쪽으로는 인왕산과 북한산이 보이고, 아래로는 서대문형무소가 보였다. 벚나무, 층층나무가 많은데, 메타세쿼이아 숲, 자작나무숲이 있어 이채롭다. 전에는 서울 서북지방에서 보내는 봉화를 받아 남산으로 보내는 동봉화대가 있던 곳이다.

 

   우리는 정상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산자락의 쉼터에서 형이 가져온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었다. 내 앞의 벤치에 앉아 있던 형이 나의 뒤쪽을 가리켜며 뒤를 보라고 하였다. 내가 몸을 돌려 뒤를 보니, 기둥에 검정색으로 常樂我淨이라 쓴 누런 나무판이 걸려 있다. 이를 본 회원들은 각자의 한문 실력을 발휘하여 상락아정의 뜻을 풀이하였다. 한 회원이 항상 즐거워하며 나를 정결하게 하라는 뜻이 아닐까?” 하고 말하였다. 나는 그보다는 더 깊은 뜻이 있는 말인 것 같은데, 구체적인 뜻이 떠오르지 않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다음 주 산행 모임 때 형이 흰 종이 한 장을 주었다. 그것은 常樂我淨의 뜻을 조사하여 정리한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간단히 살펴본 뒤에 주머니에 넣고 집에 와서 다시 읽어 보고, 다른 자료를 찾아보며 내 나름으로 이 말의 뜻을 정리하였다.

 

   ‘상락아정(常樂我淨)’은 열반(涅槃)의 네 가지 덕(四德)이라고 한다. 열반은 모든 번뇌의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진리를 깨달아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법을 체득한 경지를 이르는 말로, 불교의 궁극적인 실천 목표이다. ‘상락아정은 열반의 네 가지 덕목이니, 글자 한 자 한 자가 깊은 뜻을 가진 말이다. 이를 사자성어(四字成語)를 풀이하는 식으로 뜻을 풀이하려고 하면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상()영원한 본성(本性)’을 말한다. 부처 같은 본성은 없어지지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 ()인연을 초월하고 업장(業障)을 소멸하여 즐거워하는 해탈의 경지이다. ()본성의 자아(自我), 청정무구(淸淨無垢)한 자아이다. ()번뇌와 망상(妄想) 없이 고요하고 맑은 상태를 뜻한다. 시장 한 가운데에 있어도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깨끗하여 누구에게나 도움을 베풀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상락아정은 청정무구한 본성을 찾아 즐거워하고, 자유자재(自由自在)하면서 번뇌와 더러움이 없는 청정한 덕을 이룬다.’는 말이 된다. 그러고 보면, 상락아정은 이르기 어려운 경지이지만, 이를 얻기 위해 힘써 노력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라 하겠다.

 

   나는 이르기 어렵지만, 이를 목표로 삼고 노력하라는 뜻의 상락아정과 뜻이 통하는 성경 구절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성경을 뒤적이던 중 다음 구절에 유의하였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데살로니가 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라는 것은 모든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본성 즉 양심에 따라 행동하면서 기뻐하라는 것이니, 앞에서 말한 상()과 낙()에 해당한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려는 마음을 가지고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은 아()에 해당한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면서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은 정()에 해당한다. 이렇게 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뜻에 맞는 삶이 된다. 이런 삶을 불교식으로 말하면, 열반의 경지에 이른 삶이다. 그러고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상락아정이나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성경의 말은 같은 맥락의 가르침이다.

 

   나는 기독교인으로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성경에서 여러 번 읽었고, 목사님의 설교 말씀에서도 수없이 들었다. 이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마다 이를 실천하겠다고 다짐하곤 하였다. 그러나 그 결심은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곤 하였다. 이번 산행에서 본 상락아정의 뜻을 되새기면서 이 말씀의 실천을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안산 자락길 쉼터에 걸려 있는 상락아정의 현판은 무심코 지나는 사람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나무판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삶의 자세를 생각하고 가다듬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귀한 말이다. 이 현판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매사에 무뎌져가는 나에게 삶의 자세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태도로 살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친구들과 함께 한 안산 자락길 걷기는 매우 즐겁고 유익하였다.

  며칠 전(2014. 5. 16) 교일산우회 남부모임 회원 8명과 수서역에서 만나 함께 대모산 산행을 하였다. 잘 자란 소나무와 참나무를 비롯한 온갖 수목(樹木)과 풀들이 만들어주는 맑은 공기와 시원한 그늘을 따라 걷는 길은 정말 상쾌하였다형은 회원들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알맞은 운동을 하는 금요일의 산행은 기쁘고 즐거워서 건강 증진에 보약 한 제를 먹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회원들은 모두 동감을 표시하였다.

 

   산행을 마친 뒤에 대모산입구역 근처에 있는 식당 가마골 오리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나는 산행 뒤에 가끔씩 가던 식당이었으므로 별다른 생각 없이 식당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자리에 앉자마자 형이 오늘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하였다. 무슨 좋은 일이 있느냐고 물으니,  “나의 큰딸이 금요일마다 함께 산행을 하는 친구들에게 점심 대접을 하라며 금일봉을 주었는데, 꼭 대접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으니사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고 말했다.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는 회원들을 향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일이 있어 몇 주 동안 산행에 빠졌더니한 회원이 형은 따님들을 잘 둔 덕에 해외여행을 하느라고 빠졌겠지요.’  하더군요. 그래서 그 말을 큰딸에게 하였더니딸이 아버지를 잘 모시지 못하는 딸을 정겨운 시선으로 봐 주는 친구 분들께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자기가 나와서 식사 대접이라도 하겠다고 하더군요. 번거로우니 그만두라고 하였더니, 그러면 아버지가 친구들에게 꼭 식사 대접을 하라며 돈을 주었어요. 딸의 마음 쓰는 것이 고마워서 돈을 받아왔으니인증 사진을 찍어서 보내야 하겠어요.”

 

   이 말을 들은 우리들은 형 큰따님의 효심이 가상하다며 감사와 축하의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는 어디를 여행하였느냐고 물었다. 형은 부활여행(復活旅行)’을 하였다고 하였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우리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니,  “간단한 시술을 받고 입원하였다가 퇴원하였는데문제가 생겨 응급실로 실려가 치료를 받고 다시 입원하였다가 퇴원하였다.”고 하면서 그간의 일을 간략히 말하였다형은 이를 부활여행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면서 부활여행을 하느라 산행에 빠졌는데, 일부 회원이 해외여행을 간 것으로 짐작한 것이라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우리는 그 동안 형이 생사의 갈림길을 오간 것에 놀라고건강을 회복한 것에 안도하면서 그 동안  형의 근황에 무심하였던 것이 미안하여 얼굴이 화끈거렸다.

 

   ㅈ형이 부활 여행을 하는 동안 이를 지켜보는 부인과 따님의 놀라움과 걱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무거웠을 것이고, 그 여행을 무사히 마쳤을 때에는 기쁨과 감사가 넘쳤을 것이다. 오늘의 오찬은 형이 건강을 회복한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큰따님의 마음이 오롯이 담긴 것이다. 아버지가 부활여행을 하였다면자녀들은 누구나 이를 기뻐하고 감사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아버지의 친구들에게까지 표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산업사회로 발전해 오면서 충효(忠孝)보다는 개인의 이익이나 편리함을 더 중요시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은 옅어지고뒷전으로 밀려나는 요즘의 사회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형 큰따님의 효심을 정말 갸륵하다 하겠다. 우리들은  , 정말 따님을 잘 가르쳤군요.”,  “건강을 회복한 것을 축하하오.” 하고 진심어린 인사를 한 후 오리고기와 형이 준비한 인삼주를 맛있게 먹었다. 오늘은 산행 뒤에 효심이 어린 오찬을 즐길 수 있어서 몸도 마음도 즐겁고 흐뭇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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