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0일은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고, 청와대가 74년 만에 완전 개방되어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역사적인 날이다. 해당 부서에서는 5월 10일부터 청와대를 개방한다고 하면서 청와대에 가고 싶은 사람은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추첨하여 당첨 여부를 통보해 준다고 하였다. 나는 인터넷으로 신청하는 일이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당첨되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신청하지 않았다. 그런데 인터넷 활용을 잘 하는 지인의 딸이 지인과 함께 우리 부부도 신청한 것이 당첨되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개방 셋째 날인 5월 12일에 청와대를 관람하는 행운을 얻었다. 행운권이나 복권처럼 많은 사람 중에서 뽑히는 행운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며 이들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나에게는 뜻밖에 찾아온 행운이었다.

   청와대는 고려 숙종 때 남경의 이궁(離宮, 임금이 나들이 때에 머물던 별궁 )이 있던 곳이다. 조선 시대에는 경복궁의 후원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이 여기에 조선총독 관저를 짓고 관저로 사용하였다. 광복 직후에는 조선주둔군 사령관 하지(Hodge, J. R.) 중장이 관저로 사용하였다.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관저로 사용하면서 ‘경무대(景武臺)’라고 하였다. 4․19 혁명 직후에 윤보선 대통령이 입주하면서 관저 이름을 ‘청와대(靑瓦臺)’로 바꾸었다. 이것은 대리석으로 지은 본관의 지붕을 ‘청기와’로 이은 데서 연유된 것이다. 그 뒤에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이 입주하여 지내면서 청와대는 대한민국 통치 권력의 핵심부가 되었다. 그러는 동안 청와대는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는 금단(禁斷)의 구역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오전 10시에 청와대 영빈문 앞에 가니, 많은 사람들이 여기 저기 모여 있었다. 우리는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안내원에게 스마트폰에 저장된 입장허가서를 보였다. 안내원은 이를 전산시스템에 접속하여 확인하고는 들어가서 자유롭게 관람하라고 하였다. 우리는 들어갈 때 받은 청와대 관람 안내도를 보면서, 경내에 난 도로를 따라 영빈관·대정원·소정원·본관·관저·침류각·상춘재·춘추관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북악산 자락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청와대는 참으로 아늑하고 평온한 곳으로, 가히 ‘복지(福地, 집터의 운이 좋아 운수가 트일 땅)’라고 할 만하였다. 청와대 뒤에 있는 암벽에 300~400년 전 새긴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고 새긴 글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오래 전부터 좋은 자리로 꼽혀 왔던 것 같다. 입지조건이 좋은 곳에 세워진 건물들은 잘 관리된 숲, 정원수와 꽃, 잔디 등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웅장하면서도 정갈하고 아름다웠다. 넓고 조용하며 아름다운 이곳을 거닐다 보니, 세상과 동떨어진 산중 선계(仙界), 깊은 산사(山寺), 또는 구중궁궐(九重宮闕)과 같은 별세계에 온 듯하였다.

   청와대 안에 있는 건물들은 제 각기 특색을 지니면서 웅장하고 장엄한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청와대 안의 건물들은 직선거리가 가깝게는 이삼백 미터, 멀게는 오륙백 미터 떨어져 있었다. 역대 대통령이나 보좌관들이 경내에서 길을 따라 이동할 때 자동차나 자전거를 이용하였다는 말이 참인 것 같다. 이러한 건물 배치는 청와대 전체의 구도로 보아서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매우 좋은 모습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여러 가지 국사를 처리하는 데에는 불편함도 많았을 것 같다. 특히 대통령의 집무실인 본관과 관저는 비서관이나 행정관들이 업무를 보좌하는 여민관과 직선거리 약 오륙백 미터 떨어져 있어서 걸어서 가면 20분가량 걸릴 터이니, 신속하고 원활한 업무 보좌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국내외 언론사 기자들이 출입하는 프레스센터인 춘추관은 본관과 더 멀리 떨어져 있고, 그 사이에는 출입을 통제하는 문이 있다. 대통령이 춘추관으로 내려가거나 기자를 안으로 부르지 않으면, 기자는 대통령을 만날 수 없게 되어 있다. 따라서 대통령은 국민의 입과 귀 역할을 하는 기자를 만날 수 없어 여론을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불통의 대통령’이 되기 좋은 조건이다. 대통령이 일반 국민과 접촉하기 어려운 곳에 머문다면, 외톨이가 되어 자기중심의 생각을 갖게 되기 쉽다. 그러면 구중궁궐에서 총신(寵臣)들에 둘러싸여 지내면서 백성들의 삶은 외면하고 자기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던 옛날 왕들처럼 되기 쉬워진다. 그래서 몇 분의 대통령이 ‘구중궁궐에 사는 제왕적 대통령’, ‘불통 대통령’이라는 별칭을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김영삼 대통령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청와대를 벗어나는 문제를 논의하였다. 그 중 한 분은 광화문에 집무실을 마련하여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선거공약으로 내걸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를 실천한 분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취임한 윤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고 용산에 집무실을, 한남동에 관저를 마련하여 ‘용산 시대’를 열고, 청와대를 개방하였다. 윤 대통령이 넓고 쾌적하며 아름다우면서 권위를 느끼게 하는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결단하는 데에는 찬반양론이 있었다. 그에 따라 많은 망설임과 고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먼 앞날을 생각하여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고, 국민에게 돌려주기로 하였다. 윤 대통령의 과감한 결단에 경의를 표하고,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춘추관 앞의 출입문을 나와 삼청동길로 내려오면서 간절히 기도하였다. 청와대를 나와 국민 속으로 힘찬 발걸음을 옮긴 윤 정부가 크게 성공하게 해주십시오.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며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여 나라가 발전하고, 국민의 삶이 평안해지게 해주십시오. 청와대가 흉지(凶地)여서 성공한 대통령이 나오지 못하고 퇴임한 뒤에 불행을 겪는다는 풍수설이 없어질 터이니, 앞으로는 퇴임 후에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평안히 사는 대통령이 이어서 나오게 해주십시오. (2022. 05. 14.)

청와대 국민개방 기념행사 안내도
청와대 본관

                                                  대통령 관저--대통령과 그 가족의 거주 공간

상춘재--국내외 귀빈에게 한국의 전통가옥 양식 소개 및 의전 행사, 비공식 희의를 진행하던 곳
녹지원--청와대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춘추관--대통령의 기자회견 및 출입 기자들의  기사 송고실로 사용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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