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의 일이다. 백령중·종합고등학교 B교감이 찾아와서, 백령도에 전해오는 ‘심청 전설’과 <심청전>의 관계를 밝혀 달라고 하였다. 그는 <심청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내가 꼭 해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나는 전에 이 이야기를 듣고 조사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으므로, 그와 함께 이 일을 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옹진군에 조사비 지원 요청을 하였다.
이듬해 여름방학에 백령도에 가서 자료 조사를 하던 중 주일을 맞았다. B교감은 백령도에서 가장 큰 J교회의 집사였다. 그런데 그는 J교회가 아닌 군인교회로 나를 인도하였다. J교회 목사님이 몇 주 전 주일예배 설교 중에 “요즈음 우리 교회의 뒷산에 심청각을 짓는다는 말이 돌고 있다. 심청각은 우상의 전당이므로, 그 일을 추진하는 사람은 사탄”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 일을 추진하는 사람이 B집사라는 것은 백령도 사람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는 자기를 앉혀놓고 사탄이라고 하는 목사가 주관하는 예배에 나를 데리고 갈 수 없어 군인교회로 간다고 하였다.
나는 몇 차례에 걸쳐 백령도와 인근 지역의 지리적 특성과 전설, 민속을 철저히 조사하였다. 그 결과 ‘심청 전설’에 나오는 ‘인당수’는 백령도와 장산곶 사이에, ‘연봉’은 백령도 남쪽에, ‘연화리’는 백령도 서쪽에 실제로 존재하고, 이 지역 조류의 흐름과도 일치한다. 또, 백령도는 중국을 왕래하는 상선들의 중간 기착지였고, 항해의 안전을 위해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습속이 남아 있던 지역임을 확인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오래 전부터 ‘심청 전설’이 전해 오는 백령도는 <심청전>의 배경이 된 곳이라고 하였다.
옹진군에서는 내가 주도하여 제출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심청각 건립을 구체화하였다. 그러자 J교회 목사는 예배 시간에 “심청각은 우상의 집이므로, 짓지 못하도록 막겠다. 만일 우리 교회 뒷산에 심청각을 짓는다면 할복자살하겠다.”라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백령도 기독교연합회 이름으로 청와대, 문화공보부, 인천시에 심청각 건립 반대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심청각 건립은 사라져가는 샤머니즘 문화의 정착이고, 허구적인 이야기를 실제로 있었던 일인 것처럼 꾸미는 것이므로 반대한다고 하였다. 진정서를 받은 세 기관에서는 ‘적절히 처리하고 보고하기 바람’이라는 공문을 옹진군청으로 보냈다. 이 공문을 처리해야 하는 옹진군청 문화계장은 답변서를 어떻게 써야 하느냐며 나에게 하소연하였다.
나는 <심청각이 우상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써서 월간지에 실었다. <심청전>은 조선 후기에 꾸며낸 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이 된 곳에 그 작품의 내용과 관련되는 상징물이나 자료관을 세우고, 그 지역을 홍보하는 것은 국내는 물론 다른 나라에도 흔히 있는 일이다. 남원을 유명 관광지로 각광을 받게 한 것은 <춘향전>이다. 광한루원에는 춘향각이 있고, 그 안에 춘향의 초상화가 있지만, 춘향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심청전>의 배경이 된 백령도에 심청각을 세워 심청의 효행을 기리고, 백령도를 효원의 섬으로 홍보하는 것은 관광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작업의 하나일 뿐이다. 심청각을 우상숭배의 표상이라고 하는 것은 문학이나 문화를 종교와 혼동하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옹진군청 문화계장은 이 글을 참고하여 답변서를 써서 보고하였다.
B교감은 이 글을 백령도에서 발간하는 《백령도지》에 옮겨 실어 많은 백령도 주민이 읽게 하였다. 지역 유지가 된 B교감의 제자들은 자기들이 존경하는 은사가 추진하는 이 일이 옳다고 여기면서도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들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어 반대 진정서에 서명을 한 상황이었다. 이들이 문화와 종교를 혼동하지 말라는 내 글을 읽고, 목사를 찾아가 진정서에서 자기 이름을 빼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많은 수의 주민이 빠져나가자 탄원서는 힘을 잃고 말았다.
심청각 건립이 구체화된 뒤에 만난 B교감은 J교회 목사가 육지의 아주 먼 시골 교회로 쫓겨 갔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하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목사를 그대로 두면 할복자살하거나, 목사의 언행에 실망한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일이 생길 것이다. 하나님은 이를 그대로 두고 보실 수 없어 그가 오래 전에 저지른 잘못을 드러나게 하여 먼 곳으로 가게 만든 것이리라.
지금 인당수와 연봉바위, 연화리가 보이는 J교회 뒷산 정상에는 심청각이 서 있다. 그 안에는 <심청전> 관련 자료와 작품의 주요 장면을 그린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판소리 <심청가>가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그래서 백령도를 찾는 많은 관광객들은 심청의 효행을 기리면서 마음을 가다듬는다. 사탄으로 몰렸던 B집사는 그때 바로 누명을 벗었다. 그리고 백령도 주민의 소원을 풀어준 고마운 분으로 칭송을 받다가 얼마 전에 하나님 품으로 가셨다. 옳고 보람 있는 일을 한 B집사는 하나님 나라에서 안식을 취하고 계시리라 믿는다. <기독교연합신문 1617호, 2022년 3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