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동창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친구가 ‘지부상소(持斧上疏)’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그가 무슨 의도로 이 말을 꺼냈는가를 생각하며 그의 말이 끝까지 이어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을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고, 다른 화제를 던지는 사람의 목소리가 커서 그의 말은 이어지지 못하였다. 나는 그의 말이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초반에 끊긴 것을 아쉬워하며 이 말의 뜻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지부상소(持斧上疏)는 ‘신하가 도끼를 지니고 임금에게 올리는 상소’를 뜻하는 말이다. 자기의 말이 틀리면 가지고 온 도끼로 목을 베라며 목숨을 걸고 직언하는 행위이다. 이를 처음 행한 것은 고려 충선왕 때의 학자인 우탁(1263~1342)으로 알려져 있다. 충선왕이 아버지 충렬왕의 후궁 숙창원비를 가까이하며 숙비로 봉작하는 패륜을 저질렀다. 당시 감찰규정이던 그는 흰 상복을 입고 거적을 메고, 한 손에 도끼를 들고 궁궐에 들어가 상소를 올렸다. 왕은 그의 직언에 놀라 그 행위를 중단하였다고 한다.
조선 선조 24년(1591)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겐소(玄蘇) 등을 사신으로 보내어 ‘명으로 가는 길을 빌려 달라’고 요구하였다. 충청도 옥천에서 이 말을 들은 조헌(趙憲)은 상경하여 대궐 문밖에서 3일간 지부상소로 일본 사신의 목을 베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우다가 금산전투에서 순절했다. 그 후 그는 이조참판․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성균관 문묘에 배향되었다.
조선 고종 13년(1876)년 2월 운양호 사건을 계기로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자 경기도 관찰사였던 최익현(崔益鉉, 1833~1906)은 도끼를 들고 광화문 앞에서 강화도조약을 강요한 일본 사신 구로다 교타카(黑田淸隆)의 목을 베라고 상소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파직되었다. 그는 고종 32년(1895) 일본 자객이 명성황후를 죽인 을미사변과 단발령 이후 항일척사운동을 강화하였으며,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반발해 의병을 모집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나 결국 체포되어 일본 쓰시마로 유배되었고, 단식 투쟁과 병으로 1907년 1월 1일 쓰시마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뒤에 그는 고종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고,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 받았다.
세 분의 지부상소는 임금께 드리는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라,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위기를 막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올리는 충성스러운 상소였다. 현대는 왕조시대가 아니므로 상소라는 말 대신에 ‘충언’, ‘직언’ 또는 ‘건의’라고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현대에도 세 분과 같은 충언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자기가 모시는 상사나 기관장이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이를 바로잡기 위해 충심으로 건의해야 한다. 공공기관이나 회사에서는 아랫사람의 직언을 받아들여 잘못을 시정하고 개선하여 원만하게 운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정부를 비롯한 중요 기관에 직언하는 사람도 없고, 직언하여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다.
정부는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면 그 말의 옳고 그름이나 국민의 의견은 무시하고 무조건 따르기에 바쁘다. 국회는 다수 의석을 가진 정당이 소수당의 의견은 깔아뭉개며 독주한다. 불의한 현상을 보면서도 권력자에게 충직하고 바른말을 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그 결과 국가 안보가 위태롭게 되고, 동맹국과 냉랭한 관계가 되었으며, 민생은 파탄하였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도 권력자의 측근에는 바른말을 하는 사람이 없고, 야당의 비판은 허공의 메아리가 되고 있다. 그래서 국민은 내일에 대한 기대나 희망을 잃고 탄식한다.
대통령이 자기의 죄를 없애기 위해 공소 취소를 위한 입법을 시도하고 있다. 재판을 회피하며, 재판의 삼심제를 부정하고 사심제를 도입하고, 대법관 수를 늘려 대법원 무력화를 꾀하고 있는데도 이를 만류하는 공직자가 없다. 국민에게 현금을 나눠주는 포퓰리즘 정책의 부작용을 설파하고 만류하는 측근은 없고, 지방선거가 부실․부정 선거라며 재선거를 주장하는 민주 시민을 패가망신 당할 것이라고 협박하는 경찰 간부는 있다.
지부상소를 하던 결기와 충심을 지닌 공직자가 대통령 주변에 없으니 한심한 일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바른말을 하면 받아들여지기는커녕 억압과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충신은 당장은 손해를 볼지라도 후일에는 보상을 받는다는 것을 지부상소를 하였던 충신들의 선례에서 볼 수 있다.
이제는 지각을 가진 국민이 지부상소하는 심정으로 행동할 때이다. 정부의 부패나 비리를 폭로하는 내부고발, 잘못된 정책이나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를 표명하는 양심선언을 해야 한다. 정부에 보내는 강력한 비판 성격의 공개서한을 보내고, 사회적 정의를 외치는 시민 운동 또는 집단행동으로 결연한 의지를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만 정의가 자리를 잡게 되고,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던 자들은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성동문학 26, 성동문인협회,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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