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지인들과 서울 광진구 능곡동에 있는 어린이대공원에 갔다. 평일인 데다가 추위를 느낄 정도로 기온이 내려간 탓인지 관람객이 거의 없었다. 공원 안을 걸으며 대화하던 중 한 사람이 동북쪽으로 보이는 용마산을 가리키며 산 이름과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궁금하다고 하였으나 이에 관해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몇 년 전에 아차산을 거쳐 용마산 정상에 올랐다가 중곡동 쪽으로 내려온 기억을 되살리며 용마산과 관련되어 전해 오는 전설을 이야기하였다.
용마산은 중랑구 중곡동과 면목동의 뒤편에 있는 산이다. 이 산에는 전국에 분포되어 있는 「아기장수 전설」과 비슷한 「용마산 전설」이 전해 온다. 옛날 전제군주 국가에서는 민간에서 아기장수가 태어났다고 하면 그가 자라 반역을 도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아기장수를 죽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이런 시절을 배경으로 형성되어 전파․전승되어 왔을 것이다.
옛날에 이 산 밑에 살던 농부가 아들을 낳았다. 아기 엄마가 첫국밥을 먹은 뒤에 잠깐 뒷간에 갔다가 들어와 보니까 갓난아이가 온데간데없었다. 그가 방안을 둘러보니까 아기가 방안의 선반에 올라가 놀고 있었다. 이상하게 여겨 아기의 몸을 살펴보니 겨드랑이에 날개가 있었다.
그가 남편을 불러 이 일을 이야기하니, 남편이 말하였다. “이 아이는 장수가 될 비범한 아이임이 틀림없소. 이 아이가 자라 반역을 하면 우리 집안은 망하게 되오. 이 아이에 대한 소문이 퍼지게 되면 우리는 신고하지 않은 벌로 죽게 될 것이니 우리가 몰래 죽여 후환을 없앱시다.” 부부가 이렇게 의논한 끝에 어린애를 맷돌로 찍어 눌러서 죽였다. 아이가 죽은 뒤에 용마산에서 용마가 나와 울면서 뛰어다니다가 어디론가 날아갔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충남 서산시 소원면 파도리를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채록한 바 있다. 우리나라 300여 군데에서 채록된 이 이야기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변이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 이야기에서는 비범한 아이인 것을 알아차린 부모가 바로 죽이지 않고 몰래 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는 밤마다 깊은 숲속에 가서 소년병들을 훈련시키다가 탄로나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이것은 그가 병사를 훈련시키며 장차 바른 세상을 세워갈 준비를 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를 두려워한 부모와 마을 사람들의 고정관념에 의해 좌절된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부모가 그를 죽이려고 하자 “나를 볶은 콩 1000알과 함께 묻어주시고, 묻은 곳을 절대 비밀로 해 주세요.”라고 유언을 하였다. 아기장수 소문을 들은 관병이 찾아와 아기의 무덤 있는 곳을 대라고 추궁하자 부모는 할 수 없이 관병에게 무덤이 있는 곳을 말하였다. 관병이 무덤을 파헤치자 묻혀 있던 그가 콩알을 던져 관병을 하나씩 물리쳤다. 그러나 엄마가 콩을 볶으며 맛보느라고 한 알을 먹었기 때문에 한 알이 부족하여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이것은 아기장수가 관병이나 사회적 통념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역시 부모의 실수로 좌절되고 만다.
이 이야기는 미래에 꿈을 펼칠 아기장수가 자기의 안일과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기적 집단에 의해 좌절되었다는 비극적 내용이다. 아기장수는 미래의 주인을, 부모와 관군은 현재의 질서에 안주하는 현실주의 집단을 상징한다. 날아서 시렁에 올라갈 수 있는 아기는 자라서 남보다 빨리, 남보다 멀리까지 자기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비범한 인물이다. 지배계층이나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은 비범한 사람의 출현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범한 사람, 장수나 영웅은 많을수록 좋다. 이들이 힘을 모은다면, 나라가 튼튼해질 것이고, 어떠한 국난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배계층은 그 아이가 자라서 역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좁은 생각에서 아기장수가 나면 죽여야 하고, 이를 숨기는 부모나 마을 사람들은 처벌하겠다고 한다. 지배계층이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만든 이 규칙은 2000여 년 전의 이스라엘에도 있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헤롯왕이 예수의 탄생 소식을 듣고 갓 태어난 아기를 모두 죽이라고 명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아기장수가 비참한 최후를 맺게 된 데에는 아기장수 자신의 책임도 있다. 그는 아직 어려서 자기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도 없고, ‘아기장수는 죽여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과 맞서 싸워서 이길 능력도 없다. 그런데 성급하게도 날갯짓을 하여 죽음을 자초하고 말았다. 아기장수가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까지 자신을 숨기고 얌전하게 있었더라면, 장수가 되어 성공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장수 나자 용마 난다.’는 말이 있다. 아기장수가 태어났으니, 그 장수를 태우고 그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힘차게 달릴 용마가 태어난 것이다. 날개 달린 장수와 용마, 얼마나 잘 어울리는 짝인가! 그런데 주인이 될 아기장수가 섣불리 날갯짓을 하다가 죽고 말았다. 주인을 잃은 용마는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어 어디로인지 가버린 것이다.
이 이야기 속에는 장수나 영웅의 출현을 바라는 민간의 기대 심리와 아기장수를 수용하지 못하고 죽인 아쉬움이 녹아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전파․전승되어 온 것이다. 몇 년 전에는 이 전설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희곡으로 쓴 최인훈의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가 연극으로 공연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것 역시 이 전설을 사랑하는 민간의 의식이 바탕에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라 하겠다.
어린이대공원 팔각정 앞에 서서 동쪽 산줄기로 이어진 아차산과 용마산을 다시 바라보았다. 아차산을 바라볼 때에는 그곳에 보루를 두고 신라에게 빼앗긴 한강 유역의 땅을 되찾으려 하던 고구려 온달 장군의 용맹과 결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용마산을 바라볼 때에는 희망찬 미래를 펼칠 벅찬 꿈을 안고 태어난 아기장수를 잃고 울부짖는 용마의 슬픈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밝은 미래의 꿈을 펼칠 영웅의 출현을 기다리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으리라. 대한민국을 바르게 이끌어갈 지도자가 속히 출현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25.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