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종로에서 친구들과 식당에 갔을 때의 일이다. 옆 자리에 남자 어르신 몇 분이 식사를 끝내고 담소하고 계셨다. 한 분이 뭐라고 길게 이야기하자 옆에 있던 분이 ‘쥐뿔도 모르면서 아는 체한다’라고 면박을 주었다. 이 분의 목소리가 커서 옆자리에 앉은 나에게도 잘 들렸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쥐뿔은 아주 보잘것없거나 규모가 작은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하였다. ‘쥐뿔도 모르면서 아는 체한다’는 말은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하는 사람을 조롱조로 하는 말이다. 전에는 이 말을 자주 들었고 말한 적도 있으나 요즈음에는 이 말을 하거나 들은 일이 거의 없어 기억의 저 편에 숨어 있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들으니, 반가움과 함께 오래 전에 채록하여 한국의 민담 2에 수록해 놓은 옛날이야기 「쥐x도 모르고」가 떠올랐다.
예전에 한 노인이 사랑방에서 자리를 매다가 쥐구멍으로 올라온 생쥐를 보았다. 그는 생쥐가 예뻐서 짚에 붙어 있어 훑어 두었던 나락을 생쥐에게 주곤 하였다.
어느 날 그가 감투를 벗어놓고 변소에 간 사이에 그동안 크게 자란 쥐가 노인으로 변하여 자리를 매고 있었다. 그는 쥐의 변신체인 가짜와 서로 주인이라고 다투었다. 가짜는 집안 세간살이를 잘 아는 자가 진짜이니, 세간살이를 말해보라고 하였다.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물론 고을 원님까지도 세간살이의 내용을 더 잘 말하는 가짜의 편을 드는 바람에 그는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는 몇 년 동안 분심을 삭이며 유리걸식하다가 어느 절에 가서 스님에게 억울한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스님은 그에게 10년 묵은 고양이 한 마리를 주면서 집으로 가지고 가라고 하였다.
그가 날이 저문 뒤에 집으로 가서 주인을 찾으니, 아내와 가짜 주인, 그동안 낳은 아이가 나왔다. 그가 품에 안고 간 고양이를 꺼내놓자 가짜 주인과 아이를 물어 죽였다. 이를 살펴보니 그것은 큰 쥐와 새끼 쥐였다. 그는 아내에게 ‘그동안 쥐x도 모르고 살았느냐?’고 힐난하였다.
위와 비슷한 이야기 중에 한 남자가 손톱 발톱 깎은 것을 버리지 않은 채 변소에 간 사이에 쥐가 이를 먹고 그 남자로 변신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이야기는 한 번 접촉한 사물은 접촉 관계가 끝난 뒤에도 그와 영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믿는 주술심리에 의해 구성된 것이다. 주술심리에서는 노인의 손톱이나 발톱, 손으로 훑은 나락이나 머리에 썼던 감투는 그와 영적 관계를 맺고 있다. 쥐는 그와 영적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먹거나 접촉함으로써 그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주인공이 여자로 바뀐 이야기도 있다. 예전에 한 여인이 설거지를 한 뒤에 남은 음식물 찌꺼기를 생쥐에게 주곤 하였다. 그 쥐가 크게 자란 뒤에 그 여인으로 변신하여 남편을 속이고 안주인 행세를 하며 그를 쫓아낸다. 그 역시 스님이 주는 고양이의 힘을 빌려 가짜가 쥐의 변신체였음을 밝힌다. 그는 이를 본 남편을 향해 ‘쥐x도 모르고 지냈느냐?’며 힐난하였다고 한다. 여기서의 ‘x’는 여자의 성기를 가리끼는 말이다.
우리가 속담처럼 말하는 ‘쥐뿔도 모른다’는 위와 같은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 온다. 이에 따르면 쫓겨났던 남자가 분노와 허탈한 심정에서 아내에게 힐난조로 말한 남자의 성기를 드러내는 말을 그대로 말하기 거북하여 ‘쥐x’을 ‘쥐뿔’로 바꿔서 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지금은 쥐의 뿔이 퇴화하여 없어졌지만, 전에는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말이 생겼을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것이 맞는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위 이야기를 수용하여 구성한 고소설 중에 「옹고집전」이 있다. 이 작품에서는 부자이나 인색하고, 고집이 세어 ‘옹고집’으로 불리는 이가 늙으신 어머니께 불효하고, 스님을 박대한다. 그가 여러 해 동안 기른 쥐가 그로 변신하여 그와 서로 주인이라며 싸운다. 그 역시 가짜로 몰려 쫓겨나 떠돌며 고생하다가 어느 스님이 준 고양이의 도움으로 가짜 주인이 쥐의 변신체였음을 밝힌다. 이 작품은 위에 적은 설화를 수용하여 구성하면서 권선징악적인 주제를 형상화하였다.
‘쥐x도 모르면서 아는 체한다’는 말은 쥐의 변신을 통하여 진가(眞假)를 구별하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그래서 도대체 뭐가 뭔지 식별을 못하는 사람,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사람을 조롱조로 하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젊은이들 중에는 이 말을 줄여서 ‘뭣도 모르면서 아는 체한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이 말의 유래를 생각하면서 바르게 썼으면 좋겠다. (2024.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