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데(Niğde)의 은빛 수도원(Gümüşler Manastır)


   2011220일 일요일은 4학년 메흐멧, 에르딘츠 군과 함께 G 교수가 한국에 가면서 두고 간 승용차를 타고, 니데에 가기로 한 날이다. 아침 일찍부터 눈이 내리므로 못 가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얼마 후에는 눈이 그치는 듯하였다. 그러더니, 930분쯤에는 눈이 펑펑 쏟아졌다. 그래서 메흐멧에게 니데에 가는 것을 다음으로 미루자고 전화하고는 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메흐멧이 전화를 걸어 아버지께 전화를 하였더니, 니데에는 눈이 없다고 하니, 그대로 가자.”고 하였다. 그래서 봄눈이니 내리면서 녹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대로 길을 떠났다.

   니데는 카이세리(Kayseri)에서 남서쪽 약 130km, 아다나(Adana)에서는 북서쪽으로 12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아나톨리아 고원에 자리 잡고 있는 인구 약 15만 명의 작은 도시이다. 니데는 인근 지역에서 나는 사과를 비롯한 과일과 곡식 등의 집산지(集散地)이다. 이곳에는 셀주크 왕조 시대의 옛 사원과 묘소가 있고, 옛 성의 일부도 남아 있다. 히타이트 문자로 된 기념비가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또 셀축 시대에 기독교 수도사들이 수도하던 수도원이 있다.

  G 교수의 차를 내가 운전하고, 1050분쯤 숙소인 빌림 시테시(Bilim Sitesi)를 떠났다. 눈은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는데, 바로 녹아 길에 쌓이지는 않았다. 카이세리 시내를 벗어나니 편도 3차선의 도로에 차가 많지 않아 한적하였다.

  니데 시내 거의 다 가서 왼쪽으로 난 길로 들어서서 4~5km를 달리니 건물 56층 높이의 바위산이 길게 뻗쳐 있었다. 나무도 자라지 않는 바위산에는 동굴의 입구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많은 자연동굴이 있는 것 같았다.

  산자락의 중간쯤에 가니, 산 밑의 평지에 큰 나무들이 서 있는데, 그 앞에는 목책(木柵)을 둘러놓았다. 그곳이 은빛 수도원(Gümüşler Manastır)’이다. 셀축 시대인 10세기경부터 기독교 수도사들이 수도하던 곳이라고 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3리라를 내고 입장권을 사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10m쯤 들어가니, 건물 안에 있는 마당처럼 된 곳이 있는데, 넓이는 보통 강의실의 서너 배쯤 될 듯하였다. 마당의 사면은 바위가 거의 수직으로 서 있어서 마치 건물의 벽처럼 보였다.


  마당의 안쪽에 있는 동굴에 들어가니, 100여 명이 모일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었다. 정면 벽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을 비롯하여 성경의 인물들을 그린 몇 점의 성화가 그려져 있었다. 부분적으로 훼손되기는 하였으나, 그림의 내용은 대강 알 수 있었다.

   교회 옆의 공간에는 바닥에 길쭉한 구덩이와 좁고 깊은 구덩이가 여려 개 파여 있었다. 사람이 누울 만큼 길쭉한 곳은 시신을 놓아두던 곳이고, 큼직한 항아리를 넣을 만큼 깊게 판 구덩이는 죽은 사람의 유품을 놓아두던 곳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곳은 수도원 안에 있는 무덤이었던 것 같다.


   광장의 옆면과 앞면에는 위층과 아래층으로 나눠진 동굴이 여러 개 있는데,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동굴에는 수도사들의 숙소로 쓰기 좋은 곳도 있고, 조용히 기도하기 좋은 곳도 있었다. 여러 사람이 모여 앉을 수 있는 넓은 공간도 있고, 포도주를 비롯한 식료품을 저장해 두던 곳도 있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마당에 수직으로 뚫려 있는 작은 구멍이 있는데, 그 구멍에 작은 돌을 넣으면, 그 돌이 지하 2층 정도의 깊은 방에 떨어지게 되어 있었다. 이것은 꼬불꼬불한 통로를 지나야 갈 수 있는 지하 2층 깊이의 방에 있는 사람에게 긴급한 사항을 알리는 통신 수단이 되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곳을 둘러보면서 괴레메 지역에 있는 지하 동굴교회와 지하도시가 떠올랐다. 당시의 수도사들은 지하의 동굴로 들어와서 이곳을 이용하기 좋게 부분적으로 손질하고, 거기에서 생활하면서 수도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불편하고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하면서 신앙의 깊이를 더하였을 것이다. 신앙의 힘은 참으로 위대하다고 하겠다.

   수도원 밖으로 나와 보니, 수도원의 위쪽과 아래쪽에 절벽을 이룬 바위산이 연이어 있었다. 그 바위산에는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안에 많은 석굴이 있는데, 그곳은 교회와 수도사들의 숙소로 쓰던 곳이라고 한다. 가보고 싶었지만, 진눈깨비가 계속 내리고 있어서 그만 두었다.

   수도원을 나온 우리는 차를 타고 니데 시내로 들어왔다. 이곳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메흐멧 군은 시내에서 가장 맛있는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우리는 니데의 전통음식인 니데 타바(Niğde Tava)’를 시켜 먹었다. 돌로 만든 프라이팬에 닭고기와 당근, 양파, 토마토 등을 넣고, 양념하여 익힌 요리인데 맛이 좋았다.


  오후 3시 경에 나지막한 산의 능선에 쌓은 니데 성에 올라갔다. 옛 성의 일부만 남아 있기는 하였으나, 옛 모습을 짐작할 수 있었다. 거기서 니데 시내를 내려다보니, 시가지는 작고 아담하였다. 메흐멧이 니데는 작지만 아름다운 도시예요.’ 하던 말이 사실이었다.

  진눈깨비가 그치지 않고 내리므로 빨리 가자고 하니, 메흐멧은 성을 내려가다가 아주 특별한 자미(Cami, 이슬람교 사원)를 보고 가자고 하였다. 성의 바로 아래에 있는 이 자미는 셀축 시대에 지어졌는데, 동쪽으로 나 있는 정문 위의 조각이 일품이라고 하였다. 무엇이 특별하냐고 물으니, 동쪽에서 뜨는 햇빛이 정문 위의 장식에 비치면 예쁜 왕비의 모습이 보인다고 하였다. 왜 그럴까를 생각하며, 오늘은 날씨도 흐리고, 해가 뜨는 시각도 아니니 이를 볼 수 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디지털 카메라의 샷터를 누른 뒤에 찍힌 영상을 보니, 정문 위에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신기하게 생각하며 다시 찍고 보아도 역시 보였다. 문 위의 조각에 비치는 빛의 굴절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리라. 그러고 보니, 10세기경의 건축과 조각의 수준이 대단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눈이 그치지 않고 내리는데, 날이 저물어 기온이 내려가면 길이 미끄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출발하였다. 여기까지 와서 니데 박물관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낯선 나라에 와서 남의 차를 운전해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오후 6시경에 탈라스에 있는 식당 아늘에 가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학교 안에서만 생활하던 나와 아내는 오랜만에 나들이를 하여 기분이 좋았다.

소안르(Soğanlı)

   2011226()에도 G 교수의 승용차를 몰고 나들이를 하였다. 양 선생 남매, 메흐멧과 함께 카이세리에서 50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소안르(Soğanlı)에 갔다. 원래는 폭포가 있는 야흐얄르(Yahyakı)에 갈 예정이었는데, 비가 와서 길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메흐멧의 말에 따라 소안르로 행선지를 바꿨다.

   시내를 벗어나 산길을 달리면서 좌우를 보니, 산자락에 양들이 찬비를 맞으며 풀을 뜯고 있다. 가을철에 시들어 버린 마른풀을 뜯고 있는 것이리라. 멀리서 보니, 구데기들이 오물거리는 듯하였다. 양 선생은 구데기를 본 적이 없어 그 말이 어떤 상황을 표현하는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높은 산길에 오르니, 비는 눈으로 바뀌어 창문에 쌓이곤 하였다. 와이퍼로 눈을 닦아내며 한참을 달리니, 소안르 표지판이 나왔다. 둘레 산의 등성이에는 눈들이 쌓여 있었다. 소안르 가까이 가면서 보니, 산세나 바위들이 괴레메 지역과 비슷하였다. 메흐멧은 괴레메와 같이 화산 폭발에 의해 생긴 화강암이 기묘한 형상을 이루고, 그 안에 여러 모양의 동굴이 생겼다고 하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기가 무섭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소안르 인형을 비롯하여 관광 상품을 팔려는 상인들이었다. 우리가 물건을 사지 않겠다고 하니, 상인들은 금새 어디론가 사라졌다.

   ‘뱀 교회라고 쓴 안내판을 따라 산봉우리를 향하여 조금 올라가니, 넓은 지하 공간이 있었다. 그곳은 전에 교회로 쓰이던 곳으로, 벽에는 성화가 그려져 있었다. 기독교의 성인과 성모 마리아의 형상을 그린 그림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림을 지우려고 한 흔적이 역력히 보였다. 둘레의 동굴 안에 여러 공간이 있는데, 사람들이 생활하던 주거 공간인 듯하였다.

   그 외에도 교회를 비롯한 여러 명소의 안내판이 있는데, 눈이 쌓인 곳도 있고, 물을 건너야 갈 수 있는 곳도 있었다. 그래서 이곳의 지형적인 특색과 바위의 모양을 살펴보고, 사진을 찍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우리가 차를 타려고 하니, 한 남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자기네 식당으로 가자고 하였다. 우리는 그 사람의 안내를 받아 카파도키아 레스토랑으로 갔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홀 한쪽에 놓은 장작난로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우리는 난로 가에 앉아 식당 주인이 권하는 대로 소안르 귀베츠(Soğanlı Güveç)’라고 하는 음식을 시켜 맛있게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 인제수(incesu)에 있는 대상들의 숙소(Kervansarayı)를 둘러보았다. 옛날 실크로드를 오가던 대상들이 묵던 곳이기에 안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토요일 오후라서 직원들이 없는 관계로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아주 넓게 지은 집의 둘레에 쌓은 담장을 따라 돌아보며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하고, 발길을 돌렸다.

   2월은 이 지방의 우기(雨期)이니 비나 눈이 내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토요일마다 눈이 내리지 않으면 비가 와서 모처럼 얻은 외출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하즈벡타쉬(Hacıbektaş)

   한국어문학과 학과장인 G 교수가 미국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러 가면서 승용차를 써도 좋다고 하였다. 그래서 2010221일 일요일에 우리 부부는 양 선생, 4학년 무스타파 군, 3학년 잔수 양과 함께 G 교수의 승용차를 타고 하즈백타쉬에 갔다. 무스타파 군은 자기가 운전하면 어떻겠느냐고 하였으나, 남의 차를 빌려 다른 사람에게 운전하게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내가 하겠다고 하였다. 그 대신 무스타파 군을 운전석 옆자리에 앉히고, 길을 안내하게 하였다.

   하즈벡타쉬는 이슬람 벡타쉬(Bektaş) 교단의 수피즘 지도자인 하즈벡타쉬(Hacıbektaş A.D. 12481337)가 묻혀 있는 곳이다. 그는 일찍이 여성의 가치를 인정하고 여성의 지위와 명예를 부여하도록 하고, 여성들에게 교육을 받도록 한 이슬람 철학자이다. 그의 사상은 이성, 지식, 사랑, 존경, 평등을 바탕으로 하여 정리되었다.

   1시간쯤 차를 달려 하즈벡타쉬에 도착하였다. 14세기에 지어진 자미를 중심으로 한 단지에는 자미와 박물관, 문화센터가 있고, 그 옆에 공동묘지가 있었다. 박물관 안에는 하즈벡타쉬를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었다. 문화센터에는 하즈벡타쉬를 비롯한 교단 지도자들이 사용하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 옆에는 소원을 비는 나무가 있고, 그 옆에는 금욕주의자들이 생활하던 방과 주방, 게스트하우스 등이 있었다.

   그곳에는 추운 날씨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관람하였다. 단체로 온 관람객도 있지만, 대개는 가족 단위로 온 관람객이 많았다. 관람하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분위기가 조금은 엄숙하고, 경건하였다. 아마도 신비적이고 금욕적인 수도를 하는 교단의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관람을 마친 뒤에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식당으로 와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가족끼리 운영하는 식당인 듯 어린 학생이 서빙을 하였다. 주인의 딸인 듯한 여학생에게 수고하였다고 햐면서 팁을 주니 그 학생은 아주 좋아하였다.

   식사 후에 아바노스로 가서 무스타파 군의 사촌이 근무하는 도자기 공장에 가서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의 시범을 보고, 거기에 그림을 그려 넣은 화공들의 작업 장면을 보았다. 그리고 무스타파 군이 전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 터키석을 비롯한 악세사리 판매점에 갔다. 그 곳에서 터키석의 특성과 세공 과정 등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해가 질 무렵에 괴레메로 가서 기묘한 모양의 바위들이 모여 보여주는 아름다운 풍경을 돌아보았다. 작년 10월에 왔었던 곳이고, 시간도 없어 승용차를 타고 몇 군데를 돌아본 뒤에 카이세리로 돌아왔다.

   오늘 여행을 통하여 이슬람 벡타쉬 교단의 수피즘의 존재에 관하여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은 큰 소득이라 하겠다. 아바노스와 괴레메를 다시 가본 것도 좋았다.

 * 이 글은 2012년 8월 25일에 도서출판 '민속원'에서 간행한 <<터키 1000일의 체험>> 중 <터키 여행의 즐거움과 보람>에 실려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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