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산문
잎을 따기 위해 나무를 베는 사람
의재
2011. 7. 11. 18:47
며칠 전 한국관광공사 관광교육원 중국어 통역안내원 연수 교육에 강의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수강생은 모두 한국에 사는 화교(華僑)들로, 전에 나의 민속문화 강의를 들은 적이 있어 낯익은 얼굴들이었다. 쉬는 시간에 한 수강생이 지름 5mm 정도로 둥글게 뭉친 찻잎을 더운물에 넣어 잘 우러난 뒤에 건네주면서, 중국에서 제일로 꼽는 모리차(茉莉茶) 맛을 보라고 하였다. 냄새와 맛에 예민하지 못하여 무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향과 맛이 부드럽고 그윽하면서도 특이하였다. 음식을 잘 만들어 호텔 주방장을 하기도 하였다는 그는 차를 매우 좋아하여 차의 맛과 향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나는 그가 준 차를 마시며, 중국의 차(茶)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중국에는 모리, 철관음, 보이, 오룡, 천노, 천룡 등 8대 명차(名茶)가 있는데, 그 중에서 제일로 꼽는 것은 모리차라고 한다. 이 차는 맛과 향이 특이하여 예로부터 사람들이 좋아하였는데, 당(唐)나라 양귀비가 특히 좋아하였다고 한다. 양귀비는 이 차를 즐겨 마셨으므로, 그녀의 땀에서도 이 차의 향기와 같은 냄새가 났는데, 현종(玄宗)이 그녀를 특별히 좋아한 것은 그녀의 몸에서 나는 이 향내 때문이었다고 한다. 모리 나무는 양자강 중상류 지역에 자생하는데, 줄기가 4∼5m 자라야 잎이 나온다. 그 잎을 따다가 젊은 여인이 침을 뱉아가며 둥글게 말아 환(丸)을 만드는데, 찻잎이 많이 나지 않고, 손이 많이 가므로 생산량이 적어 매우 귀하고 값이 비싸서 그 값은 금값에 버금간다고 한다.
오래 전의 일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향이 좋은 모리 잎으로 차를 만들기 위해 잎을 따려고 하였으나, 손이 닿지 않았다. 나무 위로 올라가려고 하였으나, 그것도 그리 쉽지 않았다. 그 사람은 여러 가지로 궁리한 끝에 나무를 베어 넘어뜨린 뒤에 잎을 따서 차를 만들었다. 그 사람은 그곳에 있는 나무를 하나씩 벤 다음에 잎을 따서 차를 만들어 팔아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나무를 다 베고 난 뒤에는 더 이상은 차 잎을 딸 수 없었다. 이 차의 맛과 향이 좋다는 것을 안 사람들이 잎을 따려 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로부터 150년이 지난 뒤에야 다시 나무가 자라서 차를 생산할 수 있었다.
그 후에 사람들은 모리 나무를 베지 않고 잎을 딸 수 있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궁리하였다. 궁리 끝에 한 사람이 배에 과일을 싣고, 모리 나무 밑으로 가서 나무 위에서 놀고 있는 원숭이를 향해 던졌다. 그러자 던질 것이 없는 원숭이는 나뭇잎을 따서 아래로 던졌다. 그 사람은 그 잎을 모아 가지고 와서 차를 만들었다. 지금도 모리차는 원숭이를 이용해 딴 잎을 말린 뒤에 여인들이 손으로 환을 만든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진짜 현명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모리 나무 잎을 따고 싶지만, 손이 닿지도 않고, 올라갈 수 없어서 잎 따기를 포기한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 사람은 나무를 베고 잎을 따서 많은 돈을 벌었다. 그 사람은 잎 따기를 포기한 사람에 비해 적극적이고 현명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나무를 다 벤 뒤에는 그 잎을 딸 수 없었고, 그 후 150년 동안 그 차를 생산할 수 없게 하였다. 그는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그 뒤에 생길 일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원숭이를 이용하여 잎을 딴 사람은 오늘은 말할 것도 없고, 내일도, 내년에도 잎을 딸 수 있었다. 오늘의 이익과 함께 내일의 이익도 챙길 수 있었으니, 그 사람이야말로 진짜 현명한 사람이라 하겠다.
우리 둘레에는 나무를 베고 잎을 따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들이 수없이 벌어지고 있다. 지방세 수입을 늘리기 위해 보존해야 할 산림 녹지에 건축 허가를 내준 지방자치단체나, 당장의 이익을 위하여 산림을 훼손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그렇다. 온천을 개발한다고 산림을 마구 훼손하고, 여기저기에 구멍을 뜷다가 방치해 두는 일이 또한 그렇다. 홍수 조절과 물 부족 예방을 이유로 동강에 댐을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를 백지화하기로 하였다니 다행이다. 그러나 동강댐 계획은 자연 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백지화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서도 홍수 조절용 댐은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새로 나왔는데, 이것 역시 당장의 이익을 위하여 더 큰 것을 버리는 일이 아닌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무분별한 개발로 국토가 훼손되어 복구할 길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학교나 각급 기관에서 행하는 교육의 경우도 그렇다. 교육은 그 효과가 금방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에 서서히 나타나는 것이고, 측정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도 교육 기관의 경영이나 교육의 효과를 경제 논리로 가늠하고,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교육 과정이나 기관을 구조 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손질하려고 한다. 이 역시 잎을 따기 위해 나무를 베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즈음 젊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자녀를 가르치는 것을 보면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부모들은 아이가 찡그리기만 하여도 무엇이 못마땅해 그러는가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고, 자녀가 해 달라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해 주고, 잘못을 저질러도 따끔하게 꾸짖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 그래서 자녀들로 하여금 어려움을 모르고, 자제할 줄도 모르면서 제가 제일인 줄 알고, 돈을 제일로 알며 자라게 한다. 이런 아이는 자라서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못하는 이기적인 사람,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사람, 어려움에 처하면 쉽게 좌절하는 사람,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 될 게 뻔하다. 자녀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지금 하는 일이 자녀의 인성 형성에 어떤 효과를 줄 것이며, 자녀의 장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지곤자성(知困自成)'이란 말이 있다. 곤고함을 알아야 스스로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 한 뒤에 성취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자녀를 맹목적으로 사랑하고 감싸며 자녀의 기를 죽이지 않으려고 허둥대는 것과 같은 행동이 잎을 따기 위해 나무를 베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임을 알아야겠다.
접객업소를 운영하는 어른들이 미성년자를 고용하여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 '영계( 鷄)가 좋다.'며 미성년자가 있는 업소를 찾는 어른들이나, 눈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이들을 고용하는 업소 주인들 역시 사회와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요즈음에는 외국의 값비싼 소비재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외국산을 좋아하는 일부 사람들의 기호에 맞춰 소비 심리를 부추기면서 이익을 챙기려는 수입업자나 유통업체 운영자의 영리함이 나라의 경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 역시 모리차 잎을 따기 위해 나무를 벤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소비가 미덕인 양 소비 심리를 자극하고, 값비싼 소비재를 수입하여 무역 역조가 심화되면 한국 경제가 어려워질 것은 뻔한 일이다. 모리 나무가 다시 자라는 데 150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한 번 어려워진 경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몇 년을 기다려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나무를 베고 잎을 따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원숭이를 이용하여 모리 나무 잎을 따는 양자강 유역 사람들의 지혜로운 이야기가 우리의 생활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조선문학 2000년 6월호에 수록하였음.>
중국에는 모리, 철관음, 보이, 오룡, 천노, 천룡 등 8대 명차(名茶)가 있는데, 그 중에서 제일로 꼽는 것은 모리차라고 한다. 이 차는 맛과 향이 특이하여 예로부터 사람들이 좋아하였는데, 당(唐)나라 양귀비가 특히 좋아하였다고 한다. 양귀비는 이 차를 즐겨 마셨으므로, 그녀의 땀에서도 이 차의 향기와 같은 냄새가 났는데, 현종(玄宗)이 그녀를 특별히 좋아한 것은 그녀의 몸에서 나는 이 향내 때문이었다고 한다. 모리 나무는 양자강 중상류 지역에 자생하는데, 줄기가 4∼5m 자라야 잎이 나온다. 그 잎을 따다가 젊은 여인이 침을 뱉아가며 둥글게 말아 환(丸)을 만드는데, 찻잎이 많이 나지 않고, 손이 많이 가므로 생산량이 적어 매우 귀하고 값이 비싸서 그 값은 금값에 버금간다고 한다.
오래 전의 일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향이 좋은 모리 잎으로 차를 만들기 위해 잎을 따려고 하였으나, 손이 닿지 않았다. 나무 위로 올라가려고 하였으나, 그것도 그리 쉽지 않았다. 그 사람은 여러 가지로 궁리한 끝에 나무를 베어 넘어뜨린 뒤에 잎을 따서 차를 만들었다. 그 사람은 그곳에 있는 나무를 하나씩 벤 다음에 잎을 따서 차를 만들어 팔아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나무를 다 베고 난 뒤에는 더 이상은 차 잎을 딸 수 없었다. 이 차의 맛과 향이 좋다는 것을 안 사람들이 잎을 따려 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로부터 150년이 지난 뒤에야 다시 나무가 자라서 차를 생산할 수 있었다.
그 후에 사람들은 모리 나무를 베지 않고 잎을 딸 수 있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궁리하였다. 궁리 끝에 한 사람이 배에 과일을 싣고, 모리 나무 밑으로 가서 나무 위에서 놀고 있는 원숭이를 향해 던졌다. 그러자 던질 것이 없는 원숭이는 나뭇잎을 따서 아래로 던졌다. 그 사람은 그 잎을 모아 가지고 와서 차를 만들었다. 지금도 모리차는 원숭이를 이용해 딴 잎을 말린 뒤에 여인들이 손으로 환을 만든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진짜 현명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모리 나무 잎을 따고 싶지만, 손이 닿지도 않고, 올라갈 수 없어서 잎 따기를 포기한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 사람은 나무를 베고 잎을 따서 많은 돈을 벌었다. 그 사람은 잎 따기를 포기한 사람에 비해 적극적이고 현명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나무를 다 벤 뒤에는 그 잎을 딸 수 없었고, 그 후 150년 동안 그 차를 생산할 수 없게 하였다. 그는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그 뒤에 생길 일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원숭이를 이용하여 잎을 딴 사람은 오늘은 말할 것도 없고, 내일도, 내년에도 잎을 딸 수 있었다. 오늘의 이익과 함께 내일의 이익도 챙길 수 있었으니, 그 사람이야말로 진짜 현명한 사람이라 하겠다.
우리 둘레에는 나무를 베고 잎을 따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들이 수없이 벌어지고 있다. 지방세 수입을 늘리기 위해 보존해야 할 산림 녹지에 건축 허가를 내준 지방자치단체나, 당장의 이익을 위하여 산림을 훼손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그렇다. 온천을 개발한다고 산림을 마구 훼손하고, 여기저기에 구멍을 뜷다가 방치해 두는 일이 또한 그렇다. 홍수 조절과 물 부족 예방을 이유로 동강에 댐을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를 백지화하기로 하였다니 다행이다. 그러나 동강댐 계획은 자연 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백지화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서도 홍수 조절용 댐은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새로 나왔는데, 이것 역시 당장의 이익을 위하여 더 큰 것을 버리는 일이 아닌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무분별한 개발로 국토가 훼손되어 복구할 길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학교나 각급 기관에서 행하는 교육의 경우도 그렇다. 교육은 그 효과가 금방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에 서서히 나타나는 것이고, 측정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도 교육 기관의 경영이나 교육의 효과를 경제 논리로 가늠하고,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교육 과정이나 기관을 구조 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손질하려고 한다. 이 역시 잎을 따기 위해 나무를 베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즈음 젊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자녀를 가르치는 것을 보면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부모들은 아이가 찡그리기만 하여도 무엇이 못마땅해 그러는가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고, 자녀가 해 달라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해 주고, 잘못을 저질러도 따끔하게 꾸짖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 그래서 자녀들로 하여금 어려움을 모르고, 자제할 줄도 모르면서 제가 제일인 줄 알고, 돈을 제일로 알며 자라게 한다. 이런 아이는 자라서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못하는 이기적인 사람,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사람, 어려움에 처하면 쉽게 좌절하는 사람,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 될 게 뻔하다. 자녀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지금 하는 일이 자녀의 인성 형성에 어떤 효과를 줄 것이며, 자녀의 장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지곤자성(知困自成)'이란 말이 있다. 곤고함을 알아야 스스로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 한 뒤에 성취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자녀를 맹목적으로 사랑하고 감싸며 자녀의 기를 죽이지 않으려고 허둥대는 것과 같은 행동이 잎을 따기 위해 나무를 베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임을 알아야겠다.
접객업소를 운영하는 어른들이 미성년자를 고용하여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 '영계( 鷄)가 좋다.'며 미성년자가 있는 업소를 찾는 어른들이나, 눈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이들을 고용하는 업소 주인들 역시 사회와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요즈음에는 외국의 값비싼 소비재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외국산을 좋아하는 일부 사람들의 기호에 맞춰 소비 심리를 부추기면서 이익을 챙기려는 수입업자나 유통업체 운영자의 영리함이 나라의 경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 역시 모리차 잎을 따기 위해 나무를 벤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소비가 미덕인 양 소비 심리를 자극하고, 값비싼 소비재를 수입하여 무역 역조가 심화되면 한국 경제가 어려워질 것은 뻔한 일이다. 모리 나무가 다시 자라는 데 150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한 번 어려워진 경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몇 년을 기다려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나무를 베고 잎을 따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원숭이를 이용하여 모리 나무 잎을 따는 양자강 유역 사람들의 지혜로운 이야기가 우리의 생활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조선문학 2000년 6월호에 수록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