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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

의재 2011. 7. 11. 18:38
   얼마 전, 가까운 집안 형님의 생일에 초대받아 갔다. 그 형님은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두었는데, 모두 혼인을 하여 아이를 하나 또는 둘씩 두었다. 그 날 저녁에는 4남매의 가족이 모두 모였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할 큰아들의 아이부터 나이 차가 별로 없는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일곱이나 모였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은 한데 어울려 재미있게 놀기도 하고, 싸움을 하기도 하였다. 나는 아이들이 노는 모양을 보면서, 그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녀 교육 방법과 분위기에 따라 아이들의 말과 행동이 다름을 보았다. 그러나 일곱 아이들 모두 열차나 식당에서 본 적이 있는, 버릇없는 아이들의 노는 모습과 달랐다. 자상하면서도 엄격한 부모의 교육을 받고 자란 4남매라서 자녀 교육을 바로 하고 있는 것 같아 흐뭇하였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나는 그들 4남매와 한 자리에 앉아 자녀 교육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아이들을 무척 아끼고 사랑하지만, 해도 좋은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가르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사랑의 매를 아끼지 않는다고 하였다. 나는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오래 전부터 기억하고 있는 옛날이야기 [회초리 맞는 아들]이 생각났다.
 
   옛날에 한 효자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그는 가난하였지만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어머니께서 글을 읽지 않는다고 꾸중하시면 더욱 열심히 공부하였다. 어머니는 조금만 잘못하여도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렸는데, 어머니가 아무리 힘껏 때려도 그는 아픔을 참고 울지 않았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그는 예절 바르고 착한 청년이 되었다.

   어느 날, 그가 작은 잘못을 하였는데, 어머니는 꾸중을 하시며 회초리를 꺾어 오라고 하셨다. 그가 회초리를 한 줌 마련해 오자, 어머니는 그를 목침 위에 세우고 종아리를 때렸다. 그런데 전에는 그날보다 더 아프게 때려도 울지 않고 잘못했다고 하던 그가 자꾸 울었다. 어머니가 이상히 여겨 우는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전에는 어머니께서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면 무척 아팠습니다. 그래도 저는 어머니께서 저의 잘못을 일깨워주시고, 저를 옳게 가르쳐 주시려고 하시는 것이니까 울 것 없다고 생각해서 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어머니께서 힘껏 때리시는데도 아프지가 않습니다. 이것은 어머니께서 기운이 줄어서 그런 것이니, 그게 슬퍼서 웁니다."
 
   이 이야기에는 자식 잘 되라고 때리는 어머니의 엄격하면서도 따뜻한 마음, 그 어머니의 가르침을 잘 받들어 바르게 자란 아들의 착한 마음이 들어 있어 훈훈함을 느끼게 해 준다. 이 이야기는 부모님의 매는 자녀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사랑의 매'이니, 자녀는 이를 달게 받고, 부모의 뜻을 잘 받들 것을 일깨워준다.

   얼마 전에는 18세 소녀가 술을 먹고 새벽 1시에 집에 오자, 아버지가 딸을 꾸짖으며 뺨을 몇 대 때렸는데, 딸이 아버지를 폭력배로 몰아 경찰에 신고한 일이 있었다. 신고를 받고 달려간 경찰관은 아버지가 상습적으로 자녀를 때리는 사람인가를 알아보았는데, 그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어서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고 한다. 열 여덟 살 먹은 딸이 술에 취해 늦게 들어오는 것을 본 아버지가 딸을 꾸짖고, 딸의 태도가 곱지 않을 때 화를 내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딸은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아버지를 자녀를 괴롭히는 폭력배로 몰아 경찰에 신고하였다. 딸이 아버지를 고발한 것은 아버지한테서 다시는 때리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기 위해서였다고 하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1970년대부터 인구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가족 계획 운동을 하였다. 그 후 사회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젊은 아빠와 엄마들이 여러 자녀를 길러 공부시키는 데 따른 어려움을 자각하고, 자녀에게 매이지 않고 부부 중심의 여가 생활을 하는 것이 좋다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요즈음은 자녀를 하나 또는 둘만 낳는 가정이 늘어가고 있다. 젊은 아빠와 엄마는 자녀를 하나나 둘을 낳는 대신 누구보다도 잘 키우겠다면서 아이에게 사랑을 쏟으며 시중 들기에 온 힘을 기울인다. 아이가 해 달라는 것은 무엇이든 해 주면서 아이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 애를 쓴다. 부모의 태도가 이러하니, 아이는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가는 사람이고,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왕자나 공주인 양 착각한다. 요즈음 흔히 말하는 '왕자 병', '공주 병' 환자가 된다. 이런 아이들은 자라면서 조금만 힘들어도 좌절하거나, 포기한다. 선생님의 꾸중을 들었다 하여, 또는 학교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 하여 자살하는 청소년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아이를 곱게만 길러 어려움을 이겨낼 힘을 길러주지 않았기 때문이라 하겠다. 

   사람들이 있는 열차나 식당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소란을 피우는 자녀들을 꾸짖기는커녕 흐뭇한 표정으로 보는 젊은 엄마들의 모습을 보면, 짜증스럽기도 하지만, 아이의 장래가 걱정스럽기도 하다. 초등학교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 교실에서 장난을 하다가 화분을 깨뜨린 아이를 꾸짖을 때, "화분 값 물어내면 되지 뭘 그래요?" 하고 대드는 아이가 있었다고 한다. 한번은 선생님이 반 아이와 싸워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입혔으므로, 그 아이의 어머니를 만나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상의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어머니는 다친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내비치기거나 위로의 말을 하기는커녕 치료비를 물어주면 되지 무얼 걱정하느냐고 하면서 자기 아이가 싸움에 이긴 것만을 만족스럽게 여겼다. 이 일을 보고 선생님은 할 말을 잃었었다고 한다.       

   아이를 잘 기르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노력해서 얻는 마음을 기르고, 어려움을 참는 연습을 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해서는 안 되는 일과 해도 좋은 일, 바른 것과 그른 것을 제대로 아는 판단력을 길러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에 따라 사랑의 매를 들기도 해야 한다. 아이들은 사랑의 매를 맞으며 자기의 잘못을 반성하게 될 것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을 기를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한테 매맞을 것을 생각하여 하고 싶은 일을 참는 자제력과 인내심도 기를 것이다.     

   요즈음 청소년들은 남을 배려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기의 잘못을 지적하면 이를 참지 못하고 반발한다. 이러한 경향은 자기 부모에게도 그대로 작용하여 부모의 꾸지람이나 바른 훈계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태도로 나타난다. 청소년들이 이런 태도를 갖게 된 것은 자녀들의 기를 살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떠받들기만 하고 바로 가르치지 않고,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가르쳐 온 부모와 이를 부추겨 온 사회의 탓이다.

   언제까지나 이대로 둘 수는 없다. 이제부터라도 가정 교육, 학교 교육을 철저히 하고, 필요할 경우 '사랑의 매'를 들어 청소년들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 불교 제533호(서울 : 월간불교, 2000. 3)에 수록한 작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