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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두 사람의 순례자」를 읽고

의재 2026. 8. 25. 12:24

   며칠 전에 유튜브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톨스토이의 두 노인을 듣다가 직접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에 읽었을 터인데 기억은 희미하고, 서재에는 책이 없기에 연구실에서 가까운 중고서점 알라딘에 갔다.

   여러 출판사에서 간행된 톨스토이의 단편집에 두 사람의 순례자또는 두 노인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실려 있었다. 그런데 작품 이름만 다를 뿐 내용은 똑같으므로, 도서출판 풀잎에서 2013년에 간행한 《톨스토이 단편선》을 사 가지고 와서 읽었다.

   부유한 농부 '예핌'과 풍요롭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엘리사'는 예루살렘 성지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예핌'은 엄격하고 완고한 사람으로 술과 담배를 하지 않으며 나쁜 말을 한 적이 없고, 마을 장로를 두 번이나 착오 없이 해낸 사람이었다. '엘리사'는 목수 일을 하다가 나이가 든 뒤에 꿀벌 치는 일을 하였다. 그는 인정 많고 활달하였으며 술과 담배도 하고, 노래하는 것을 즐겼다.

   두 사람은 오래전에 약속하고도 차일피일 미루어 오던 성지순례 여행을 떠났다. 두 노인이 달포 이상 걸어 소러시아 지방에 이르니 주민들이 앞다투어 숙소를 제공하고 먹을 것을 주었다. 그다음 마을에서는 흉년으로 마을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어서 잠자리는 제공받았으나 먹을 것은 돈을 내고 사서 먹어야 했다. 그다음 마을 앞에 이르렀을 때 '엘리사'는 몹시 목이 말라 한 농가로 물을 얻어먹으러 갔다. 동행한 '예핌'은 다음 마을에서 그를 기다리겠다며 먼저 갔다.

   그 농가의 젊은 주인 부부는 먹지 못한 데다가 과로로 병이 들어 쓰러져 있고, 두 아이와 노모는 여러 날 굶어서 기운이 빠져 죽어가고 있었다. '엘리사'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빵을 물에 불려 먹게 한 뒤, 그 집의 사정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려고 이웃집에 가 보았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 역시 굶고 있어 도와 줄 형편이 못되었다. 그는 가게에 가서 옥수수와 소금, 밀가루와 버터를 사다가 보리죽을 만들어 온 식구에게 먹였다.

   그는 며칠 동안 함께 지내며 그들을 보살펴 기운을 차리게 하였다. 그가 떠나려다가 생각해 보니, 그대로 두고 가면 다시 굶어서 죽을 것 같아 살아갈 방도를 마련해 주고 떠나기로 하였다. 그는 여행비를 털어 농부가 부자에게 잡힌 목초지와 경작지를 찾아주고, 보리를 수확하는 봄까지 먹을 밀가루와 젖소, 일을 할 말 한 필과 수레 등을 사서 주었다. 그리고 길을 떠나 부지런히 '예핌'을 따라가면서 남은 돈을 헤아려 보니, 남은 돈이 얼마 안 되므로 여행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예핌'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예수님의 생애와 관련이 있는 여러 곳을 순례하였다. 그는 성묘(聖廟)에 참배할 때와 성묘 성당에 갔을 때 맨 앞자리에서 '엘리사'가 머리에 환한 빛을 받으며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환상을 본 것인데도 '엘리사'가 자기보다 먼저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열심히 찾아보았으나 만날 수 없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내 정성은 받아주셨는지 몰라도 엘리사의 정성은 받아주신 거야!’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잔잔한 감동을 느낀 나는 이 작품이 지닌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예핌'은 겉으로는 완벽한 신앙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만의 의무에 갇혀 있는 사람이다. 반면에 '엘리사'는 부족하고 허술해 보이지만,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을 지닌 참된 신앙인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소설은 단순한 성지순례 이야기가 아니라, 진정한 신앙과 사랑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기독교인인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돌이켜 본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니고 있고, 성경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실천하였는가를 생각하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드리고, 헌금을 하고, 여러 가지 친교·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형식적 의무이다. 이런 의무 수행도 중요하지만, 고통받는 이웃을 돕는 실천이 더 중요함을 이 작품은 일깨워 주고 있다. <기독교연합신문> 제1822호, 2026. 8.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