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의 오덕
6월 하순의 어느 날 아침 외출하려고 아파트 단지 안의 벚나무 아래를 지나다가 매미 소리를 들었다. 금년 들어 처음 듣는 매미 소리로, 다른 해보다 이른 시기여서 의아하면서도 반가웠다. 그로부터 2~3일 뒤에 집 앞의 공원에 가니, 여러 종류의 매미들이 떼를 지어 노래한다. 여러 종류 매미들의 합창 소리를 들은 아내는 시끄럽다고 하였으나, 나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며 아주 정겹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 여름에 매미가 울면 매미 소리를 흉내 내면서 맨손으로 매미를 잡으려고 뛰어다니던 기억이 새롭다. 맨손으로 매미를 잡은 적도 있기는 하지만,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매미는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뭇가지를 휘어 원형 또는 4각의 틀을 만들어 장대에 고정시킨 뒤에 거기에 거미줄을 묻혀 매미채를 만들었다. 나뭇가지에서 울고 있는 매미에게 매미채를 대면 매미의 날개가 거미줄에 붙어 바로 잡을 수 있었다.
거미줄 묻힌 매미채를 만든 것이 전적으로 내 아이디어였는지, 형들이나 어른들의 귀띔이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매미채는 잠자리를 잡는 데에도 아주 유용하였다. 잡은 매미는 실로 묶은 뒤에 집 앞의 나무에 올려놓기도 하고, 날려 보내기도 하였다. 여름방학 숙제로 곤충표본을 만들어 학교에 제출한 적도 있다. 그늘에 깔아놓은 밀짚방석에 누워 매미 소리를 자장가 삼아 낮잠을 즐기기도 하였다. 매미와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아련하다.
매미의 수컷은 사랑을 나눌 상대를 부르기 위해 자기만의 소리를 낸다. 다른 개체의 소리와 구별되는 소리를 내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 발성한다. 그 소리가 나에게는 ‘맴맴’, ‘쓰름 싸름’, ‘위--’, ‘지르르르’ 등으로 들린다. 매미가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나뭇가지에서 사는 기간은 2~3주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수컷의 노래 소리에 마음이 끌린 암컷은 수컷에게 다가가서 짝짓기를 한다. 수컷은 짝짓기를 한 뒤에 죽고, 암컷은 나무껍질 속이나 틈새에 알을 낳은 뒤에 죽는다.
알은 나무껍질 속에서 추운 겨울을 나고 여름이 되면 애벌레가 되어 땅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여러 차례 허물을 벗으며 보통 5~6년, 길게는 17년 가량 산다. 그런 뒤에 다시 나무위로 올라가 우화(羽化)하여 성충 매미가 된다. 길게는 17년을 사는 매미가 나무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기간은 고작 2~3주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이렇게 짧은 기간을 노래하는 매미의 한살이를 생각하면, 어린 시절에 매미를 잡아 죽게 하거나 곤충표본을 만들었던 일이 부끄러워진다. 매미가 사랑의 노래를 마음껏 부른 뒤에 상대를 만나 소원을 이루도록 도와주고 싶다.
3세기경 중국 진(晉)나라 시인 육운(陸雲)은 매미를 유심히 관찰한 뒤에 다섯 가지 특성을 들어 ‘매미의 오덕(五德)’이라 하였다. 머리 모양과 곧게 뻗은 입 모양이 선비의 갓끈과 유사하니 선비와 같다(文). 여느 곤충들과는 달리 이슬과 나무의 진을 먹으니 청렴하다(凊). 곡식이나 채소, 나무에 해를 끼치지 않으니 염치가 있다(廉). 자기의 집을 짓지 않으니 검소하다(檢). 때에 맞추어 울며 살다가 때를 맞추어 죽으니 신의가 있다(信).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극을 보면, 왕과 왕세자는 곤룡포를 입고 집무할 때에 익선관(翼善冠)을 쓴다. 앞 꼭대기에 턱이 져서 앞이 낮고 뒤가 높은데, 뒤에는 두 개의 뿔을 날개처럼 달았으며 검은빛의 사(紗) 또는 나(羅)로 둘렀다. 이것은 매미의 날개를 본 뜬 것이다. 매미의 오덕(五德)을 생각하며 백성을 다스린다는 의지를 담은 모자라 하겠다. 익선관은 고려와 조선은 물론, 명나라와 베트남에서도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로 보아 왕은 매미의 오덕을 생각하며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의식이 오래 전부터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매미는 그리스인의 진귀한 음식’이라고 하였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중앙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몇몇 지역에서는 매미의 애벌레를 튀겨 먹는다고 한다. 일본 도쿄의 한 공원에서는 매미를 즐겨 먹은 사람들이 매미를 쓸어가므로 포획금지 명령을 내린 적도 있다고 한다. 굼벵이가 허물을 벗고 매미로 날아간 뒤에 남은 껍질은 선태(蟬蛻), 또는 선퇴(蟬退)라고 한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한약재로 쓴다. 그러고 보면 매미의 오덕에 식용, 또는 약재로 자기 몸을 내어주는 희생의 덕을 추가해야겠다.
매미는 변온동물로 보통 15℃ 이상 되면 울기 시작하여 더운 여름에 마음껏 울어대다가 가을이 되면 사라진다. 예상보다 일찍 울거나 여름철이 지나 늦가을에도 우는 것은 기후 변화로 기온이 일찍 오르고, 늦게까지 내려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주광성(走光性)인 매미는 대부분 낮에 울고, 밤에는 울지 않는다. 그런데 밤에도 우는 이유는 가로등 등 환한 인공 빛 때문에 밤을 낮으로 착각한 때문이라 하겠다. 얼마 전에 매미가 11층인 우리 아파트의 방충망에 붙어 갑자기 우는 바람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이것은 매미가 방향을 잃어 급한 대로 방충망에 앉아 있다가 울음소리를 낸 것이리라.
오늘도 공원의 숲에서는 매미들이 땅속에서 인고의 시간을 보냈음을 알리면서 사랑을 나눌 상대를 부르는 노래를 목청껏 부른다. 나는 공원 숲속의 벤치에 앉아 매미의 노랫소리를 즐기며 잠시 추억에 젖어본다. 이때 갑자기 위급함을 알리는 매미 소리가 들리더니 멀어지니, 매미가 까치에게 잡혀가는 모양이다. 매미채로 매미를 잡아 통에 넣으며 좋아하는 아이와 그 부모가 보인다. 매미의 한살이를 설명하고 날려 보내라고 하고 싶었지만,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 그만두었다. 매미가 까치에게든 사람에게든 잡히지 않고 마음껏 노래하며 짧은 여생을 즐겼으면 좋겠다.(2024. 8.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