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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 만에 만난 고교 동창

의재 2024. 7. 13. 14:54

   지난 4일 고등학교 동창 L 목사와 62년 만에 해후했다. 그가 강원도 원주에서 목회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각자의 일에 열중하느라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야 만났다. 며칠 전에 나는 문득 그가 생각나서 연락할 방법을 찾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심전심이라고 할까 그가 먼저 전화를 걸어와서 반갑게 통화하였다.

   그가 내 전화번호를 안 것은 나의 중·고·대학 후배이면서 제자인 C 교수를 통해서라고 한다. 그는 1년 후배인 C 교수와 고등학교 때 홍성제일감리교회에서 학생부 활동을 함께 한 사이였다. 나는 그와 통화 중에 셋이 함께 만나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는 C 교수가 서울과 원주의 중간 지점인 양평에 살고 있으니, 그곳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왕십리에 용문행 전동열차를 탔다. 가는 동안 그가 어떻게 변했을까, 첫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 어떤 말을 먼저 할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설레었다. 양수역에 내리니, 최 교수 부부가 마중 나와 있었다. 그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 전이었으므로 네 사람은 먼저 C 교수가 예약한 넓고 깨끗한 식당으로 가서 대화하였다. 약속 시간이 되자 C 교수가 문밖으로 나가 L목사를 맞아 함께 들어왔다. 부인은 몸살로 기침이 심해 혼자 왔다고 하였다.

   C 교수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그는 예대로 작은 체구였지만 건강해 보였다. 그의 손을 잡자 고등학교 때의 추억이 떠올라 더욱 정다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약속한 장소에서 만났으니 바로 알아보았지만, 만약 길에서 만났다면 그냥 스쳐 지났을 것 같다. 그와 C 교수도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 만난다고 했다.

   세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의 일을 시작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가 서울감리교신학대학에 진학한 것을 어머니께서 몹시 부러워하셨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지난 일을 풀었다. C 교수는 서울감리교신학대학 기숙사에서 그와 하룻밤 같이 보내고 온 뒤에 입학원서를 보내주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교육대학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고백했다. 그는 대학 시절 미국 선교회에서 전액 지급하는 장학금을 받아 졸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세 사람의 화제가 종횡무진이었지만 학창 시절 얘기라서 옆에서 듣는 아내와 C 교수 부인도 재미있는 표정이었다.

   그는 신학대학 재학 중에 군에 입대하여 제대하고 복학해 졸업한 뒤에 여러 곳에서 목회하다가 원주감리교회로 와서 23년 동안 시무한 뒤에 은퇴하였다. C 교수는 공주교육대학을 졸업한 뒤에 고향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입대하여 월남전에 참전했고, 현지에서 미국방성 군무원으로 근무한 뒤 귀국하여 중등교사 자격검정고시, 서울시 순위교사에 합격하여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공부하여 대학 교수가 되었다. 나 역시 서울교육대학을 졸업한 뒤에 군 복무 후에 초·중등학교 교사를 거쳐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세 사람의 젊은 날이 마치 하나님의 각본대로 펼쳐진 것처럼 대화가 이어져 그 계획과 섭리가 온 몸으로 느껴졌다.

   세 사람은 각자 맡은 일에 전념하여 뜻한 바를 이루었고, 지금 건강한 몸으로 편안한 은퇴생활을 한다.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에 감사하면서 뜻있는 일에 힘써야겠다. 그는 지금 감리교단에서 은퇴한 목회자 중 형편이 어려운 분들을 돕는 사마람(사마리아 사람들)’ 활동에 열심이다. C 교수는 언론계와 학계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글을 분석하고 정리하여 문장의 이론을 정립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인다. 나는 회혼기념문집을 내려고 글을 쓰고 있다. 출발은 미약했지만, 뿌린 대로 거두리라 믿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한다.

   우리는 점심 식사를 마친 뒤에 한강변에 있는 카페로 옮겨 차를 마시며 아내들의 얘기에도 귀를 기울였다. 오늘 모임을 주선하고 환대해 준 C 교수의 부인 홍 여사께 감사한다. 우리는 다음에 원주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돌아온 뒤에 그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까까머리 소년들이 백발이 되어서야 다시 얼굴을 보게 되었네 그려. 열심히 산 모습을 보게 된 것 같아 반가웠어. 피차 갈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남은 동안 자주자주 봤으면 좋겠네.” 이 소박한 바람이 차질 없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24. 7.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