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물쇠 채운 기원문
지난 4월 초에 아내와 함께 남산에 벚꽃을 보러 갔다. 남산 북쪽 순환로에서 타워 쪽으로 올라가는 길 양편에는 꽃을 활짝 피운 벚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벚나무 사이사이에 피어 있는 진달래와 개나리를 비롯하여 키 작은 봄꽃들도 이에 질세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바람 한줄기가 다가와 벚나무를 흔들고 지나가니, 꽃잎들이 눈송이처럼 날려 흰 눈이 내리는 겨울을 연상케 한다.
아름다운 풍경과 맑은 공기를 마음껏 즐기며 걷다보니, 어느새 남산타워 아래에 당도하였다. 팔각정에 올라 잠시 쉰 뒤에 남산타워 옆과 봉수대 아래쪽을 보니, 소원하는 바를 적은 기원문을 걸어두는 판넬이 설치되어 있다. 여러 가지 색의 예쁜 모양 필름이나 플라스틱판에 적은 기원문은 자물쇠에 채워진 채 설치대에 걸려 있다. 겹겹이 걸린 기원문을 보니, 걸은 지 얼마 안 되는 것은 예쁜 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글자도 선명하였다. 그러나 안쪽에 걸려 있는 것은 판이 퇴색하였고, 글자도 지워졌으며, 자물쇠는 녹이 슬었다.
기원문의 내용은 아주 다양하였다. “우리가 함께 한 1주년, 그리고 함께 할 100년, 영원히 오늘 같기를!”이라고 쓴 글은 연인이 사귄 지 1년을 기념하며 사랑이 영원하기를 기원한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돼서도 남산에 이거 보러 오자”는 글은 친구 또는 연인이 노인이 될 때까지 건강하여 남산에 다시 와서 이 글을 보자는 다짐이다. “00 사랑해요. 큰 거 하나 당첨되게 해 주세요.”는 사랑을 다짐하면서 행운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백반증이 빨리 낫게 해 주세요.”는 피부에 백색반이 나타나는 질환을 낫게 해 달라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다. 자녀의 이름을 쓰고 그 뒤에 “입학 축하해. 사랑해, 건강하기를!”이라고 적은 것이나, “우리 가족 영원히 행복하기를!”은 온 가족의 행복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기원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모두 가정의 평안과 가족의 건강, 사랑의 결실과 지속, 입시·입사 시험 합격 등 일상적 소망을 적은 것이다. 기원문의 대부분은 한글이지만, 영어 또는 낯선 외국어로 쓴 글도 있는 것으로 보아 외국인도 있는 것 같다.
기원문을 쓰는 일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다. 집을 새로 짓거나 고쳐 지을 때 쓰는 상량문에는 새로 짓거나 고친 집의 내력, 공역 일시 등과 함께 집을 지은 뒤에 좋은 일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축원의 말을 적었다. 입춘에는 대문이나 기둥에 한 해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며 복을 바라는 입춘축을 써서 붙였다. 정월 대보름에 하는 달집태우기에서는 마을의 평안과 풍년 기원 등 축원의 글을 써서 붙이고 제를 올린 뒤에 태웠다. 액연(厄鳶) 날리기에서는 재액을 멀리 쫓아 버리고, 복을 부르기 위하여 정월 대보름을 기해 연에 ‘송액영복(送厄迎福)’이라 써서 날려 보냈다. 양초에 소원문 쓰고 태우기, 꽃바구니에 발원문 쓰기, 달님 기도문 작성 등도 기원문 쓰기의 풍습이었다.
이처럼 우리의 전통문화에서는 기원문을 써서 붙이거나 불에 태우고, 멀리 보내거나 간직하였다. 기원문을 작성하여 태우는 것은 신에게 그 뜻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다. 기원문을 써서 사람이 많이 모이는 유명 장소에 자물쇠를 채워 거는 것과 같은 일은 없었다. 이것은 다른 나라에서 널리 행해지는 풍습이 들어온 것 같다.
오래 전에 튀르키예에 갔을 때의 일이다.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솟아 있어 절묘한 지형을 자랑하는 카파도키아의 산언덕에 세운 신나무에 수많은 기원문을 걸어놓은 것을 보았다. 이곳에 신나무를 세운 것은 기묘한 지형의 산언덕을 신이한 장소로 본 때문이리라. 에페스(성경에 나오는 에베소) 근처의 뷜뷜산에 있는 ‘성모 마리아의 집’ 앞에 기원문을 거는 판넬이 서 있다. 이곳에는 소원을 적은 종이와 헝겊이 잔뜩 걸려 있었다. 그 중에는 외국인이 걸어놓은 것도 있지만, 무슬림인 튀르키예인들이 걸어 놓은 것이 더 많다고 한다. 무슬림이 이곳에 와서 소원을 비는 것은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에 마리아를 ‘선지자 예수의 어머니’로 기록하였으므로, 마리아를 ‘거룩한 여인’으로 숭배하기 때문이라 하겠다.
기원문을 써서 거는 이유는 무엇일까? 옛사람들은 언어는 주술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언어주술관은 현대인에게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설날 축원의 뜻을 담아 덕담을 하는 것도 이런 의식의 표현이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 역시 말은 현실화한다는 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종교적인 신심을 가진 신앙인은 물론, 일반 사람들도 자기가 믿는 신에게 정성들여 기도한다. 이것은 인간이 소원하는 바를 말이나 글로 표현하면 신이 이를 받아들여 그것을 이루어 줄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요즈음에는 자물쇠를 채운 소원의 글을 명소에 거는 일이 국내외에서 낯설지 않게 되었다. 이 일이 전통문화이든, 외래문화이든 탓할 일이 아니다. 개인적인 소원을 여러 사람이 모이는 명소에 거는 것은 장난기를 겻들인 행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소원하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의 발로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다만 퇴색되고, 녹이 슨 기원문은 주기적으로 철거하여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2023. 5.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