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산문

《문예운동》과 나

의재 2022. 2. 15. 12:36

  내가 대학원을 다니던 1970년대 초반의 일이다. 은사이신 K 교수님은 국어학 전공의 학자로서 많은 연구 성과를 내신 분이다. 그런데 틈틈이 수필을 쓰셔서 수필집을 두 권이나 내셨다. K 교수님은 두 번째 수필집에 사인(sign)을 해서 주시면서 농담조로, “내가 수필집을 두 권이나 냈는데, 아무도 나를 수필가라고 하지 않네!”라고 말씀하셨다.

  K 교수님의 이 말씀은 농담조로 하신 말씀이지만, 나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K 교수님의 수필은 이름난 수필가의 글 못지않게 좋은 글이 많았다. 국어학자로서 명성을 얻으신 분이 좋은 수필을 쓰신 것을 보니, 참으로 존경스럽고 부러웠다. 그런 분이 ‘구태여 수필가라는 명성까지 얻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 때까지만 하여도 나는 문단의 등단 절차에 관해 잘 몰랐고,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았다.

  나는 1978년에 대학의 교수가 되어 한국의 고소설, 구비문학, 민속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연구 논문과 저서를 집필하는 일 외에 일반 교양인을 대상으로 한 글을 많이 썼다. 글의 제재는 생활주변에서 취한 것도 있고, 민속과 설화에서 고른 것도 있었다. 나는 그동안 쓴 글 중에서 민속․설화와 관련된 글은 《민속적인 삶의 의미》(계명문화사, 1993. 59편 수록), 생활주변에서 제재를 취한 글은 《가을 햇빛 비치는 창가에서》(한울, 1993. 71편 수록)라는 제목의 수필집으로 출판하였다. 수필집 두 권을 낸 뒤에 ‘나는 수필가인가?’ 하고 자문해 보았다. 그 때 문득 대학원에 다닐 때에 들은 K 교수님 말씀이 떠올랐다.

  내 연구실 옆방에 계신 청하 선생님 연구실로 수필집을 가지고 가서 드리면서 K 교수님의 말씀을 화제에 올렸다. 청하 선생님은 정식으로 문단 데뷔 절차를 밟지 않으면, 훌륭한 학자(또는 명사)의 글로는 인정을 받을 수 있지만, 수필가의 글로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다. 청하 선생님은 나에게 수필가로 등단하는 절차를 밟으라고 하시면서 글 두 편을 써오라고 하셨다.

  청하 선생님은 그 전에도 나에게 수필을 쓰라고 하셨다. 그래서 내가 등단 절차를 밟기 전에도 《시와 시론》 52호(1993)에 <나의 호>라는 글을 실어 주셨다. 나의 글 솜씨를 좋게 보아 주신 덕이리라. 다른 지면에도 글을 쓰라고 하셔서 발표한 적이 여러 번 있다. 청하 선생님께서 등단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수필 두 편을 써오라고 하신 것은 나의 글쓰기 실력을 인정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뻤다.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을 하고서도 연구 논문을 쓰느라 수필을 쓸 겨를이 없었다. 몇 달을 지낸 뒤에야 <개와 오륜>, <법 없어도 살 사람>이라는 제목의 글을 청하 선생님께 드렸다. 내 글을 받으신 청하 선생님은 《시와 시론》 심사위원들과 검토하신 뒤에 등단 작품으로 인정하고, 김병권 선생님의 추천사와 함께 《시와 시론》에 실어 주셨다. 그래서 나는 1995년에 발행하는 《시와 시론》(통권 52호)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하였다.

  《시와 시론》은 나를 수필가로 인정해 준 종합문예지이다. 문예지 추천은 자동차 운전에 비유하면, ‘운전면허증’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운전면허증을 가졌기에 전국 어디든지 차를 몰고 갈 수 있는 것처럼, 나에게 수필가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을 공인해 준 것이다. 나는 《시와 시론》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한 뒤에 한국수필문학회,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등 문학단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그러자 한국문인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등단한 뒤에도 연구 논문이나 저서 집필에 힘쓰면서 틈틈이 수필을 썼다. 신문이나 잡지사의 청탁을 받고 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시와 시론》에도 몇 차례 발표하였다. 이러한 글들은 교수직에서 물러난 뒤에 손질하여 수필집 《능소화처럼》(보고사, 2015)에 실어 출간하였다. 그 뒤에 쓴 글들은 수필집 《새로운 보금자리에서》(학연제, 2021)에 실어 곧 출간될 예정이다.

  문인은 신문이나 문예지를 통해 등단하는 절차를 밟아서 정식 문인으로 인정받게 된다. 그러므로 등단한 신문이나 문예지는 그 문인에게 어머니의 태와 같은 존재이다. 따라서 종합문예지인 《시와 시론》은 내 수필문학의 어머니와 다름없다. 《시와 시론》이 없어지지 않고, 《문예운동》으로 이름을 바꾸어 주옥같은 글들을 실어내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스럽고 자랑스럽다. 《문예운동》이 민족문학의 정통성을 추구하는 문예지로 크게 발전할 것이라 믿는다.

  나를 수필가로 등단할 수 있게 해 주시고, 좋은 글을 쓰도록 자극을 주고, 발표 지면을 허락해 주신 청하 선생님께 감사한다. 또 추천사를 써 주신 김병권 선생님께 감사한다. 내 문학의 어머니와 같은 《문예운동》의 무궁한 발전과 두 분 선생님의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문예운동》 150호, 서울: 문예운동사, 2021.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