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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화(禪扉花)

의재 2022. 1. 1. 15:00

  지난 6월 말경에 아내와 함께 영주 부석사를 찾았다. 무량수전을 오른쪽으로 돌아 조금 올라가니, 이 절을 창건한 의상 대사(625~702)의 상을 모신 조사당(祖師堂)이 있었다. 국보 19호로 지정된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목조건물이다. 고려 우왕 3년(1377)에 세웠고, 조선 성종 21년(1490)에 다시 고쳤다고 한다. 그러나 고려 신종 4년(1201)에 단청을 하였다는 기록도 있는 것을 보면, 조사당이 세워진 때는 더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조사당의 처마 밑에는 손가락 굵기의 줄기 몇 개가 곧추선 선비화(禪扉花)가 있다. 이 나무는 부석사를 창건한 신라의 의상 대사(625~702)가 방문 앞 추녀 밑에 꽂아 둔 지팡이에서 뿌리가 생기고, 가지와 잎이 나서 꽃을 피우며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한다. 의상 대사가 “내가 간 뒤에 이 지팡이에서 반드시 가지와 잎이 날 것이다. 이 나무가 말라 죽지 않으면 나도 죽지 않은 줄로 알아라.”라고 한 말이 실현된 것이다. 이 나무는 처마 밑에 있어 비와 이슬을 맞지 않으면서 천 년의 세월을 지나 오늘에 이르렀다고 하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중환(1690~1756) 선생은 《택리지》(「卜居總論 山水」)에 선비화를 두고, “지팡이에 싹이 터서 자란 이 나무는 햇빛과 달빛은 받을 수 있으나 비와 이슬에는 젖지 않는다. 지붕 밑에서 자라고 있으나 지붕은 뚫지 아니한다. 키는 한 길 남짓하지만, 천년 세월을 지나도 한결같다.”고 적었다. 그리고 이어서 광해군 때 경상감사 정조(鄭造)가 지팡이를 만들겠다며 이 나무를 잘라간 일을 이야기하였다. 이 나무는 곧 두 줄기가 다시 뻗어나서 전과 같이 자랐지만, 정조는 인조 계해년에 역적으로 몰려 참형을 당하였다고 한다. 그는 이어서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이 이 나무를 두고 지은 시를 소개하였다. “옥을 뽑은 듯 정정하게 절 문에 의지했는데(擢玉亭亭倚寺門), 스님의 말은 지팡이가 신령스러운 나무로 화했다 한다(僧言錫杖化靈根). 지팡이 머리에 스스로 조계수가 있는가(杖頭自有曺溪水). 하늘이 내리는 비와 이슬의 은혜를 힘입지 않는구나(不借乾坤雨露恩). 이 글은 선비화가 의상대사의 지팡이에서 싹이 나서 자란 나무이고, 비와 이슬의 은혜 없이 자라고 있는 신령스러운 나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옛사람들은 신이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 사물을 접촉하거나 먹으면, 신이한 힘이 자기에게 전이된다고 믿는 주술적(呪術的) 심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신이한 물건을 접촉하거나 몸에 지니기도 하고, 그 일부를 먹기도 하였다. 부적이나 주물(呪物)을 몸에 지니기, 돌미륵의 코를 갈아 먹기, 특정 식물의 줄기나 잎을 따다가 끓여 먹기 등은 이러한 주술적 심성에서 나온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의식을 가졌기에 신이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 선비화의 잎을 따거나 줄기를 잘라가는 일이 빈번해 졌다. 이를 막기 위해 절에서는 오래 전부터 선비화 둘레에 철망을 둘러 이 나무를 보호하고 있다. 지금도 이 나무는 너비 3m, 폭 1.4m, 높이 2m 가량의 촘촘한 스테인리스 철망 안에 갇혀 있다.

  선비화는 낙엽관목으로, ‘골담초(骨擔草)’라고도 한다. 뿌리가 생약으로 뼈를 다스린다는 뜻으로 부르는 이름이다. 한국과 중국 등의 아시아가 원산지여서 우리나라의 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이다. 뿌리혹박테리아를 가진 콩과 식물이라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이는 몇 개의 줄기가 모여서 곧추서 있고, 가시가 있으며 껍질은 어두운 녹색이다. 4~5월에 나비 모양의 꽃이 노랗게 피어 붉게 변한다. 열매는 원주형으로 9~10월에 익는다. 관상용으로 재배하고, 뿌리와 꽃은 약재(해수, 대하, 고혈압, 타박상, 신경통 등)로 쓰인다. 꽃말은 겸손, 청초, 관심이다. 의상 대사는 우리나라에 많이 자라고 있는 골담초로 지팡이를 만들어 짚고 다녔던 모양이다.

  지팡이의 주된 기능은 노약자나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걷거나 서 있을 때 몸을 의지할 수 있는 보조기구이다. 시각장애인의 흰 지팡이는 혼자 걸을 때 더듬이 역할을 하여 보행의 안전을 기하게 한다. 지팡이가 보행의 보조기구 이상의 기능과 의미를 지니는 경우도 있다. 유목민의 목자에게는 양떼를 인도할 때 쓰는 도구이고, 마법사에게는 마법을 행할 때 꼭 있어야 하는 소품이다. 장로나 족장, 스님, 도인과 같은 사람에게는 권위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특히 스님의 지팡이는 주장자(拄杖子)라고도 한다. 주장자는 걸을 때에 도움을 주는 도구이면서, 법문(法問, 불법에 대하여 묻고 대답함)․좌선(坐禪, 고요히 앉아서 참선함)․경책(警策, 주의가 산만하거나 조는 사람을 깨우침)을 할 때에도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장자는 스님과 희로애락을 같이하면서 도의 길을 함께 하는 도반(道伴)이다. 그러므로 주장자는 스님의 사상과 감정이 응집되어 있는, 분신과 같은 존재이다. 또, 높은 도의 경지에 이른 스님의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이다. 따라서 선비화는 도가 깊고 법력이 높은 의상대사의 도력(道力)과 높은 정신이 깃들어 있는 신령스런 나무이다.

  《구약》 「민수기」에는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으로 인도한 지도자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선비화와 아론의 지팡이 이야기는 신라와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이고, 사제자인 두 사람의 지팡이에 싹이 나고 자라서 꽃을 피웠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난 것은 하나님의 권능을 드러낸 것이고, 의상 대사의 지팡이에서 싹이 난 것은 의상 대사의 법력이 깊고 높았음을 드러낸다.

  유명 인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가 싹이 나서 자란 나무는 선비화 외에도 많이 있다. 강원도 정선의 태백산 정암사 주목은 신라 시대 자장 율사가, 경기도 양평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의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고 한다. 전남 순천 송광사 천자암의 쌍향수(곱향나무)는 고려 시대 보조국사 지눌 스님, 전남 장성 백양사 이팝나무는 고려 때 각진 국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둔 것이라고 한다.

  부석사의 선비화는 의상 대사가 짚고 다니던 골담초 지팡이에 뿌리가 생기고, 가지와 잎이 나서 꽃을 피우며 천 년을 살고 있는 신령스런 나무이다. 이 나무는 의상 대사의 깊은 도와 법력이 깃들어 있는 신령스런 나무임을 드러내면서 부석사가 신성한 사찰임을 강조한다. 선비화는 한국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골담초이다. 이것은 일반 민중과 친숙한 골담초에 신이성을 부여한 것으로, 민중들에게 의상 대사를 추앙하면서 불심을 돈독히 할 것을 권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22. 01. 01.)

부석사 조사당 오른쪽 추녀밑 스테인리스 철망 안에 있는 선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