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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용 선풍기

의재 2021. 8. 29. 20:39

  단오 무렵부터 휴대용 선풍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눈에 뜨이기 시작하더니, 7월 들어 기온이 30°c를 웃도는 날씨가 계속되자 부쩍 많아졌다. 부채를 들고 다니는 사람은 어쩌다 볼 수 있다.

  단오의 풍습을 보면, 조선 시대에는 단옷날에 공조(工曹)에서 부채를 만들어 임금께 진상하고, 임금은 이를 신하들에게 나눠 주었다. 또 일반인들 사이에도 부채를 선물로 주고받았다. 청년에게는 푸른 부채를, 노인이나 상제에게는 흰 부채를 주었다고 한다. 부채 선물은 더위 타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라는 뜻이 담겨있다. 단오에는 더위를 식히는 부채를, 동지에는 농사에 도움을 주는 책력을 선물하는 ‘하선동력(夏扇冬曆)’은 오랜 동안 전해 오는 관습이었다.

  요즈음에는 집이나 각 건물의 실내는 말할 것도 없고, 승용차나 버스·지하철·열차·항공기 등의 교통수단에도 냉방 시설이 잘 되어 있다. 그래서 긴 시간 더운 곳에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가까운 거리를 걸어서 이동할 때나 냉방 시설이 없는 곳에 있게 될 경우에는 더위를 식히는 도구가 필요하다. 이런 때에 전에는 부채를 즐겨 사용하였지만, 요즈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휴대용 선풍기를 선호한다. 휴대용 선풍기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이를 얼굴 정면과 옆, 뒷목 부분에 번갈아 대곤 한다. 이것은 몇 년 전만 하여도 청소년들이 주로 들고 다녔으나, 요즈음에는 중년의 여성은 물론, 나이든 할머니들까지도 들고 다닌다.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도 이것을 들고 다닌다.

  지난해에 중학생인 손녀가 왔을 때의 일이다. 손녀는 다른 아이들이 들고 다니는 것보다 좀 큰 휴대용 선풍기를 들고 왔다. 바람을 쐬어보니, 제법 시원하다. 더위를 타는 손녀는 작은 것은 시원하지 않아 큰 것을 골라 샀다고 하였다. 휴대용 선풍기는 제품에 따라 크기가 다르고, 배터리의 사용 시간도 차이가 있다. 가격은 5천원에서 3만원까지로 다양하다. 손녀는 자기 용돈 2만원을 주고 샀다고 하였다. 손녀의 말에 따르면, 휴대용 선풍기는 자기 용돈으로 산 친구가 있는가 하면, 친구끼리 선물로 주고받은 친구도 있고, 부모님이 사 주신 친구도 있다고 하였다.

  휴대용 선풍기는 바람을 일으키는 날개 부분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날개가 있는 것은 날개의 숫자와 크기, 배터리의 성능에 따라 바람의 세기가 다르다. 날개 부분이 없는 제품은 바람이 균일하고, 부드러우며, 보관과 청소가 간편하다. 손잡이만 있는 제품도 있고, 받침이 있어 세울 수 있는 제품도 있다.

  최근에는 목걸이형 선풍기도 나왔다. 이 제품은 목에 걸므로 손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잃어버릴 염려도 적다. 그리고 안전 날개로 되어 있어 손이 닿아도 다칠 위험이 없으므로 인기를 끌고 있다. 또 뒷주머니에 걸어 등을 시원하게 하는 허리 선풍기, 반으로 접어 휴대하고, 접으면 밑 부분은 거치대가 되는 폴더형도 있다. 이처럼 휴대용 선풍기는 다양한 제품이 개발되었다.

  휴대용 선풍기를 구입할 때에는 바람의 성능, 배터리의 충전과 사용 시간, 사용할 때의 편의성, 소음(騷音) 유무, 가성비 등을 따져봐야 한다. 휴대용 선풍기가 처음 나올 무렵에는 배터리가 폭발하여 화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였으나, 요즈음에는 품질이 좋아져서 그런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리튬전지가 포함된 제품을 살 때에는 KC 마크, 전자파 적합등록번호, 안전인증번호 등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휴대용 선풍기에서는 매우 높은 수치의 전자파가 발생한다. 그런데 바람개비 팬으로부터 조금만 떨어져도 전자파의 세기가 크게 낮아진다고 한다. 그러므로 머리와 얼굴로부터 25cm 이상 떨어뜨린 상태에서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국립전파연구원이 최근에 전자파 강도를 측정한 바에 따르면, 대부분의 제품은 인체보호기준을 만족한다고 한다. 이것은 휴대용 선풍기의 품질이 매우 좋아졌음을 말해 준다.

  며칠 전에 지하철역에서 만난 남자 어른은 하얀 밴드를 목에 걸고, 부채를 들고 있었다. 앞서서 걸어가는 것을 보니, 목 뒤에서 불이 번쩍거렸다. 나는 목에 건 것이 헤드폰인지, 넥 밴드 선풍기인지 궁금하여 그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선풍기라고 하면서, 자기 목에 걸었던 선풍기를 나에게 대 주었다. 정말 바람이 잘 나와 시원하였다. 시원한 선풍기를 목에 걸고서 부채는 왜 들고 있느냐고 물으니, 그는 얼굴을 시원하게 하려고 부채질도 한다고 하였다. 그는 외국에 사는 딸이 선물로 보내준 것이라면서 한껏 자랑하였다. 지하철역에서 만난 할머니 한 분은 딸이 선풍기를 사 주었다면서, 처음에는 들고 다니는 것이 번거로웠지만, 지금은 필수 휴대품이 되었다고 하였다.

  인터넷을 보니, 인천 계양구의 주민센터에서는 저소득층 노인과 어린이에게, 농협 서울지역본부에서는 고령, 취약 여성 농업인에게 휴대용 선풍기를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모 디지털 가전그룹에서는 자기 회사 제품을 구입하는 고객에게 이를 사은품으로 준다고 한다. 이처럼 휴대용 선풍기는 여름철이면 개인 또는 단체에서 선물로 주고받는 인기 품목이 되었다.

  나도 작년에 휴대용 선풍기를 손녀한테 선물로 받았다. 이것을 외출할 때에는 가지고 다니지는 않고, 집에서만 쓰고 있다. 나는 계절에 관계없이 밤에 잠들었다가 깨면 더워서 땀이 날 때가 있다. 그럴 경우 전에는 협탁에 놓아둔 합죽선을 펴서 부채질하여 땀을 식히곤 하였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손녀가 사다준 미니 선풍기를 켜고 바람의 세기를 조절하여 땀을 식히곤 한다. 부채질을 하지 않고 누워 있어도 되니, 유용성이 부채보다 낫다 하겠다.

  이제 휴대용 선풍기는 현대인의 생활용품이 되었다. 그에 따라 단오에 부채를 선물하던 풍습은 어느새 휴대용 선풍기를 선물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단오선(端午扇)’은 문헌 기록으로만 전해지게 되었다. 20~30년 전만 하여도 여름철 필수품이던 부채가 에어컨이나 선풍기에게 자리를 내준 것처럼 외출할 때 챙기던 합죽선도 휴대용 선풍기에게 자리를 물려주게 되었다. 과학 기술의 발달과 사회 변화에 따른 풍속의 변화이다. 전통문화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편의성과 효용성에 맞게 변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2021. 08.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