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나오는 샘[酒泉]
청령포와 장릉을 탐방한 뒤에 영월군 주천면 주천리에 있는 주천(酒泉)을 찾았다. 이곳은 전에 전설을 조사하러 갔던 곳이다. 함께 간 아내는 ‘술이 나오는 샘’이라는 뜻을 지닌 ‘주천’이 면 이름, 기관이나 학교 이름에 들어간 것이 특이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주천이라는 지명은 언제부터 썼으며, 술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물었다.
주천 고을의 이름은 고구려 때에는 ‘주연(酒淵, 술이 괴는 못)’이었다. 그런데 신라 경덕왕 때 ‘주천(酒泉, 술 나오는 샘)’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고려사》 참조). 이 둘은 못[淵]과 샘[泉]으로, 환기(喚起)하는 대상에 차이를 보이지만, 술이 나오는 곳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이로 보아 술과 관련되는 이름이 이 지역의 이름이 된 것은 고구려 때부터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지명이 전설과 함께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으니 참으로 특이한 일이다.
예전에 서쪽 개울가에 술이 나오는 돌구유가 있었다. 그런데 고을 관원이 술을 받으러 다니는 것을 귀찮게 여겨 관청의 뜰로 옮겨 가려고 하였다. 그때 갑자기 천둥과 함께 벼락이 쳐서 구유를 세 개로 쪼개놓았다. 그 중 하나는 이곳에 남고, 하나는 연못으로 잠기고, 하나는 간 곳을 모른다고 한다. 이곳을 찾은 조선 전기의 학자 강희맹(1424~1483)과 성임(1421~1484)은 이 내용을 시로 표현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 원주목 고적). 이 기록은 ‘주천 전설’이 조선 전기부터 전해 왔음을 말해 준다.
최근까지 민간에 전해 오는 이야기는 이와 좀 다르다. 옛날에 주천에서 술이 나왔다. 그런데 이 샘물은 양반이 떠먹으면 약주가 되고, 상민이 떠먹으면 탁주가 되었다. 그 샘물은 상민이 양반의 의관을 하고 가도 탁주가 되고, 그 반대로 양반이 상민의 복장을 하고 가도 약주가 되었다. 어느 때, 이 고을에서 농사짓던 한 젊은이가 서울로 가서 과거를 보아 급제하고 돌아왔다. 그는 양반이 되었으므로, 약주가 나올 것을 기대하고 그 샘물을 떴다. 그런데 역시 탁주였으므로, 화가 나서 그 샘에다 돌을 처넣었다. 그 뒤로는 그 샘에서 술이 나오지 아니하였다고 한다(최상수, 《한국민간설집》, 통문관, 1958). 지금 술샘이 있던 자리에 세워놓은 표지석에 적힌 내용도 이와 비슷하다.
옛날에는 술이 나오는 샘이 정말 있었을까, 이런 전설이 어떻게 하여 생겼을까? 나는 「주천 전설」은 지리적 특성과 인문사회적 상황이 상호작용하여 생겼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주천 인근을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술샘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술샘이 있던 자리에는 이를 소개하는 표지석이 서 있다. 그 아래에는 주천강이 흐르고 있다. 강변을 낀 산자락에는 ‘주천강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술샘은 망산의 벼랑바위 밑에 있고, 아래쪽 너럭바위 밑에는 연못이 있고, 주천강이 흐르고 있다. 이곳은 동서로는 영월에서 원주 쪽으로, 남북으로는 제천에서 평창 쪽으로 통하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는 교통의 요지이다. 그러므로 별다른 교통수단이 없던 옛날에는 걸어서 이곳을 지나는 사람이 아주 많았을 것이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시원한 물을 마시고, 그늘에서 쉬어 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 지역은 석회암이 많은 곳이어서 석회암층을 흘러나오는 물이 언뜻 술맛을 느끼게 하였던 것이다. 갈증을 풀어주는 시원한 물에서 술맛이 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사람들은 이곳에서 물을 마시면서 술을 마실 때 느끼던 시원함과 쾌감을 맛보았을 것이다. 이런 일과 연관 지어 이곳 샘의 이름을 ‘술못[酒淵]’ 또는 ‘술샘[酒泉]’이라 불렀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생긴 특이한 이름이 고을의 이름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석회암층에서 흘러나와 술맛을 느끼게 하는 물은 땅속 물길의 변화에 따라 수질이 조금씩 변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맑은 물이 흐르기도 하고, 조금 흐린 물이 나오기도 하였을 것이다. 강희맹이 주천에 와서 보고 지은 시에서 ‘맑은 술 흐린 술이 저절로 나와’라고 한 것은 이를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사실에 문학적 형상력이 작용하여 「주천 전설」이 형성되었고, 오랜 동안 민간에 전해 오면서 변화를 보이게 되었을 것이다.
주천의 술맛을 느끼게 하는 물이 물길의 변화에 따라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는 것은 자연현상이다. 이 전설을 전파·전승해 온 서민들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양반이 뜨면 약주가 되고, 상민이 뜨면 탁주가 된다고 하여 신분제와 연결시켜 이야기하였다. 이것은 신분제가 동요하던 조선 후기 서민들의 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이 이야기의 결말 부분에서 화가 난 젊은이가 샘에 돌을 처넣은 것은 사회가 변화하였는데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 신분제에 대한 불만과 저항 심리가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물은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 된다. 이에 더하여 물은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는 정화력, 죽어가는 것을 살리는 재생력, 홍수 때에 보이는 것과 같은 무서운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물이 지닌 이러한 큰 힘을 경험하며 살아온 옛사람들은 물을 매우 신성하게 여겼다. 그런데 원초적 사유 면에서 볼 때에 물과 술은 동격이다. 신에게 기도하거나 제사를 지낼 때에 정화수 또는 술을 올리는 것은 이런 의식의 표현이다.
술맛 나는 물은 자연이 주는 혜택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욕심 때문에 특별히 내리는, 술맛 나는 물을 주는 샘을 파기하여 더 이상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앞의 이야기에서는 술을 받아 옮기는 수고를 하지 않으려고 술 나오는 돌구유를 관청의 뜰로 옮겨 가려다가 벼락을 맞아 깨뜨리고 말았다. 뒤 이야기에서는 상민이 양반 대접을 받으려다가 여의치 않자 화를 내며 돌을 넣어 주천을 잃고 말았다. 이것은 자연이 내린 징벌로,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 빚은 비극이다.
주천은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길손이 물을 마시고 쉬어가던 쉼터의 기능이 약화되었다. 거기에 인간의 탐욕에 대한 징벌로 술이 나오는 혜택도 없어졌다. 그 결과 지금은 안내표지석만 남아 주천이 있던 자리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주천이라는 지명과 함께 남아 있는 전설은 인간이 탐욕을 버리고 순리를 따를 때 자연이 주는 혜택을 누릴 수 있음을 일깨워 주고 있다. 인간이 자연에 대한 오만과 탐욕을 자제하지 않으면, 징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2021. 08.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