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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로 받은 쌀

의재 2020. 12. 30. 12:39

   며칠 전에 초등학교 동창인 친구가 택배로 보낸 쌀을 받았다. 서울에 살면서 고향에 있는 논을 친척에게 농사짓게 하여 수확한 쌀을 보낸 것이다. 작년에도 보내주어 잘 먹었는데, 금년에도 또 보내주니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현관 앞에 놓여 있던 쌀 포대를 들여놓고 바라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였다.

 

   나는 쌀을 선물로 받은 적이 여러 번 있다. 도시에 사는 제자가 자기 부모님께서 농사지은 쌀을 보내주어 받기도 하였고, 은퇴하여 농촌으로 간 제자가 그 지역에서 나는 쌀을 보내주어 받은 적도 있다. 보내는 사람의 정성이 담겨 있는 선물을 받으면 고맙고 기쁘다. 그런데 나는 쌀을 선물로 받으면 다른 선물을 받았을 때보다 기쁘고 고마운 마음이 한결 더 크게 느껴진다.

 

  오래 전에 쌀 도매상을 하는 분한테 들은 말에 따르면, 서울에서는 경기미(여주, 이천, 포천 등)를 일등급으로 치고, 충청도에서 나는 쌀은 이등급으로 여긴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충청남도 홍성, 그 중에서도 갈산에서 나는 쌀을 제일로 여긴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이 있다. 몸과 땅은 둘이 아니라는 뜻으로, 자신이 사는 땅에서 나는 것을 먹어야 체질에 잘 맞는다는 말이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에서 나는 쌀을 먹는 것이 나의 건강에 제일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는 홍성 쌀을 제일로 꼽는다.

 

   고향의 산과 논밭은 내가 어렸을 때 늘 대하던 자연환경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마루에 서면 보이는 것이 넓은 들의 논이었다. 학교에 오갈 때 걷는 오솔길 양편에도, 자동차가 다니던 신작로의 좌우에도 논이 이어졌다. 나는 논의 모습이 계절에 따라 바뀌는 것을 보며 자랐다. 이른 봄에는 두엄을 져다 부어 놓은 모습을 보았고, 얼마 뒤에는 두엄을 흩은 뒤에 물을 대고 쟁기질을 하고, 이어서 써레질한 뒤에 모내기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모를 심은 뒤에는 벼가 자라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였고, 벼이삭이 나와 고개를 숙일 때에는 흐뭇한 마음으로 논두렁을 쏘다니며 메뚜기를 잡았다. 겨울철에는 물을 대 놓은 논의 얼음판에서 썰매를 타며 즐거워하였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두엄을 져 나르는 일, 모를 심는 일, 벼를 베는 일을 하였다. 논은 내 생활의 터전이었고, 삶의 일부였으며,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공간이다. 이런 논에서 수확한 쌀이 나와 정서적으로 유대감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우리 집은 가난하였으므로, 쌀이 넉넉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늘 쌀을 아껴 먹어야 했다. 쌀을 아끼기 위해 겨울철에는 고구마로 한 끼를 때우기도 하였고, 보릿고개를 앞두고는 채소를 넣고 죽을 쑤어서 끼니를 해결하기도 하였다. 이런 과정을 겪다 보니, 자연히 쌀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이런 마음이 내 의식 속에 잠재되었으므로, 아이들을 키울 때에는 가을에 일 년 먹을 쌀을 사다가 방에 쌓아놓아야 마음이 놓이기도 하였다. 이런 쌀을 선물로 받았으니, 어찌 기쁘고 고맙지 않겠는가!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날 때 논밭을 다 정리하였다. 고향에는 누님 한 분을 빼고는 가까운 친척이 없다. 그런데다가 학생 때에는 공부하느라고 바빠서, 교수가 된 뒤에는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에 몰두하느라 고향에 자주 찾아가지 못하였다. 그러나 마음만은 농사지으며 학교 다니던 때를 잊지 않고 있다. 고향의 산과 들은 따스한 마음을 느끼게 해 주는 아련한 그리움의 공간이고, 아름다운 추억이 서린 곳이다. 그래서 고향의 논에서 수확한 쌀은 몸에 영양을 주는 동시에 고향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일깨워주는 보약이다. 나의 몸과 정신의 기능을 조절하고, 저항 능력을 키워 주며 기력을 보충해 주는 보약을 보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복되고 귀한 일이다. 이런 친구가 있다는 것에 뿌듯함과 함께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지인 중에는 내가 초등학교 동창 모임 갖는 것을 희한한 일로 여기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서울에서 살았으니, 서울에서 자리 잡고 사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농촌 출신들은 서울에 와서 자리 잡을 때까지 온갖 시련과 고통을 견디고 이겨내야 했다. 이를 이기지 못한 사람들은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다. 따라서 서울서 자리 잡은 초등학교 동창들은 온갖 역경을 이겨낸 용사들로, 보람과 자부심을 지니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동창회를 만들어 노년이 되도록 자주 만나며 정을 나누는 것은 자연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이번에 쌀을 보내준 친구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서울에 와서 공부를 하였다. 직장 생활을 하다가 건설회사를 설립하여 많은 어려움과 실패를 겪기도 하였으나 마침내 성공한 의지의 한국인이다. 주관이 뚜렷하고, 생각이 바르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도 넉넉한 사람이다. 그는 부모님의 유산으로 받은 논에서 생산한 쌀을 혼자 차지하는 것이 미안하다며 고향 친구들에게 나누어 준다. 그의 정겹고 따뜻한 마음이 고맙기 그지없다. 이 친구가 얼마 전부터는 하루에 몇 가지씩 약을 먹고,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그렇지만 그는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초등학교 친구들의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소모임을 주관하기도 한다. 이 친구가 건강관리를 잘 하여 오래도록 우정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20.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