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산문

정겨운 참새

의재 2020. 12. 16. 14:41

   코로나19의 만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된 요즈음 나의 일과는 매우 단조롭다. 지하철을 타야하고, 식당에 가서 점심을 사먹는 일이 부담스러워 연구실에도 자주 나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책을 읽다가 오후에 집 앞에 있는 응봉공원에 가서 걷는 일이 내 일과의 전부이다.

   숲속에 자리 잡은 공원의 타원형 보행로(둘레 1,100m 가량) 좌우의 평지와 언덕에 있는 나무들의 모습이 달라졌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상록수가 아닌 나무들의 잎은 단풍이 들어 곱더니, 이제는 누렇게 변한 잎을 떨어뜨리고 맨 가지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내가 공원을 걷는 시간과 새들이 움직이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인지 자주 눈에 띄던 까치와 비둘기는 보이지 않고, 참새가 떼를 지어 날아와 먹이를 찾는다.

   오랜만에 참새를 보니, 참으로 반가웠다. 통통하게 살이 찐 참새들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먹이를 찾다가는 후루룩 소리를 내며 날아올라 나무에 앉는다. 조금 뒤에는 다시 내려와 가벼운 몸놀림으로 먹이를 찾는다. 이런 참새의 모습을 보니, 귀엽고 사랑스럽다. 어린아이처럼 만져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가까이 다가가니, 또 후루룩 소리를 내며 날아간다.

   어린아이 주먹보다 작은 참새들이 떼를 지어 내려와 촐싹대는 모습을 보니, 어린 시절에 덫을 놓아 참새를 잡던 일이 떠오른다. 그 시절에는 참새가 참으로 많았다. 숲에서 작은 벌레나 풀씨를 찾아먹던 참새들이 겨울철이면 농가로 찾아들었다. 참새들은 안마당은 물론 토방, 헛간까지 다가오고, 닫힌 문의 틈새로 부엌에 들어가 먹이를 찾기도 하였다.

   이때 나는 참새를 잡을 궁리를 하였다. 참새들이 자주 오는 안마당에 싸리로 만든 발채(짐을 싣기 위하여 지게에 얹는 소쿠리 모양의 물건)를 놓고, 아래쪽은 돌이나 통나무로 눌러놓는다. 발채 밑에는 벼나 쌀을 조금 뿌려 놓고, 발채 머리를 한 뼘쯤 되는 막대기로 받쳐 세운다. 그 막대기의 아래쪽에 가늘고 질긴 실을 매어 방안으로 가지고 들어간다. 그리고는 방문에 붙인 유리에 눈을 대고, 발채 주변을 주시한다. 참새가 날아와 발채 근처를 서성이면, 나는 바짝 긴장되어 가슴이 콩닥거렸다. 정신을 집중하여 그곳을 응시하다가 참새가 곡식을 먹으려고 발채 밑으로 들어가면, 얼른 실을 잡아당긴다. 그래서 발채가 앞으로 수그러질 때 참새 한두 마리가 발채 밑에 깔린다.

   나는 기뻐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가 발채를 조심스레 들어 올리며 참새를 붙잡았다. 참새의 가슴이 팔짝팔짝 뛰는 것이 손에 느껴졌다. 참새의 발에 실을 묶은 뒤에 방안에 놓으면,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멈춘다. 방바닥에 놓으면 이리저리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이렇게 촐싹거리는 참새의 몸짓은 아주 귀엽고 정겹게 느껴졌다. 나는 참새가 배가 고플 것이라 생각하여 쌀을 물과 함께 주었으나, 통 먹지 않았다. 참새를 빈 방에 두고 하룻밤을 지낸 뒤에 아침에 가보니, 참새는 숨을 거두었다. 나는 죽은 참새가 불쌍하여 눈물을 흘리며 땅에 묻어주었다. 그 뒤로도 한두 번 더 참새를 잡아서 가지고 놀다가 놓아주었다. 그 때 내 손을 벗어나는 참새의 날갯짓은 힘이 넘쳤다.

   참새와 관련된 옛날이야기 중에 「볍씨 한 알」이 있다. 옛날에 부자 노인이 세 며느리에게 선물이라면서 봉투 하나씩을 주었다. 세 며느리가 열어 보니, 볍씨가 한 알씩 들어 있었다.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첫째와 둘째 며느리는 버리거나 까서 먹었다. 셋째며느리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발채로 새덫을 만들고, 볍씨 한 알을 놓아 참새 한 마리를 잡았다. 그 때 이웃집 노파가 약에 쓴다면서 참새를 달걀 하나와 바꾸자고 하여 바꿨다. 시아버지가 병아리를 깨려고 어미닭에게 알을 품게 할 때, 그 달걀에 표시를 하여 함께 품게 하였다. 그 알에서 깬 병아리가 자라 암탉이 되어 달걀을 낳았다. 달걀을 모아 팔아서 암탉 한 마리를 더 사서 길러 알을 낳게 하였다. 그 뒤에 암탉과 달걀을 팔아 새끼돼지를 사서 기르고, 돼지의 숫자가 늘어나자 이웃에 수내(수나이, 가축을 기르게 하고, 이익을 나눔)를 주어 길렀다. 그 돼지를 팔아 송아지를 사서 기르고, 소가 늘자 이웃에 수내를 주어 길렀다. 그래서 10년 뒤에는 논 열 마지기를 샀다. 이를 본 시아버지는 셋째며느리를 크게 칭찬하고, 재산을 셋째 아들․며느리에게 물려주었다고 한다.

   볍씨 한 알과 작은 참새를 연결시킨 이 이야기는 작은 일에 충실하고, 매사를 계획을 세워 철저히 하라는 교훈을 내포하고 있다. 공원에서 참새 떼를 보는 순간 나는 참새를 잡아 가지고 벗 삼아 놀던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과 함께 이 옛이야기가 떠올랐다. 이런 추억을 떠올리니, 오랜만에 보는 참새가 더욱 반갑고, 정겹게 느껴졌다.

   참새는 우리 선조들의 생활과 관련이 깊은 새였으므로, 참새와 관련된 관용구나 속담이 많다. 음식을 조금씩 여러 번 먹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에는 ‘참새 물 먹듯’이라고 한다. 그만그만한 것들 가운데에서 굳이 크고 작음이나 잘잘못을 가리려고 할 때나, 자질구레한 말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을 비꼴 때에는 ‘참새가 기니 짧으니 한다.’라고 한다. 욕심 많은 사람이 이끗(재물의 이익이 되는 실마리)을 보고 가만있지 못하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곳은 그대로 지나치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말할 때에는 ‘참새가 방앗간을 그저 지나랴’라고 한다. 아무리 약한 것이라도 너무 괴롭히면 대항한다는 것을 말할 때에는 ‘참새가 죽어도 짹 한다.’라고 한다. 몸은 비록 작아도 능히 큰일을 감당함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에는 ‘참새가 작아도 알만 잘 깐다’라고 한다. 실력이 없고 변변치 아니한 무리들이 아무리 떠들어 대더라도 실력이 있는 사람은 이와 맞붙어 함께 다투지 아니한다는 뜻을 드러낼 때에는 ‘참새가 아무리 떠들어도 구렁이는 움직이지 않는다’라고 한다. 참새가 작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만든 이 말들은, 참새가 우리 조상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음을 말해 준다.

   참새는 텃새로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다. 가을에는 농작물에 피해를 주지만, 여름에는 해로운 곤충을 잡아먹어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이로운 새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에 농촌에서 정겹게 보던 참새를 서울의 공원에서 보니 감회가 새롭다. 요즈음에는 술꾼들이 즐기던 ‘참새구이’가 사라져서 다행이다. 참새가 도시에서도 사람과 친밀하게 지낼 수 있도록 잘 보호하였으면 좋겠다.(2020.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