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어 바로 알고 쓰기
사람이나 사물을 부르는 말을 ‘호칭어(呼稱語)’ 또는 ‘부름말’이라고 한다. 우리말의 호칭어는 다양하므로, 바로 알고 써야 한다. 호칭어의 뜻과 용례를 바로 알고 쓰는 사람을 보면, 그에게서 교양미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를 잘못 쓰는 사람의 말이나 글을 대하게 되면 신경에 거슬리고, 그 사람의 어휘력 부족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이런 경우는 잊히지 않고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내 기억에 남은 여러 사례 가운데 몇 가지만 적어본다.
얼마 전에 유명인사와 그의 친족이 관련된 사건이 신문과 방송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그 때 언론은 ‘유명인사 사촌형의 아들’을 ‘5촌 조카’라고 하였다. 사촌형의 아들을 이르는 ‘당질(堂姪)’ 또는 ‘종질(從姪)’이라는 두 음절의 말이 있는데, 왜 언론에서는 그 말을 쓰지 않고 ‘5촌 조카’라고 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형제의 아들딸은 ‘조카[또는 질아(姪兒)]’라고 하고, 사촌형제의 자녀는 ‘당질’이라고 한다. 아버지의 형제자매는 ‘백부(또는 큰아버지)․숙부(또는 작은아버지)’, 고모이다. 아버지의 사촌형제자매는 당숙(堂叔), 당고모(堂姑母)이다. 나와 아버지 형제의 자녀는 종형제로 4촌이고, 아버지 사촌형제의 자녀는 재종(再從)으로 6촌이다. 남자는 누이의 아들딸을 생질(甥姪)이라 하고, 여자는 언니나 여동생의 아들딸을 이질(姨姪)이라고 한다. 이렇게 적절한 호칭어가 있는데, 요즈음에는 이런 말을 잘 쓰지 않고 길게 풀어서 말한다. 한자말이어서 어렵기도 하지만, 핵가족 시대가 되어 이런 호칭어를 쓸 친족이 없기 때문에 잊혀가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이 든다.
얼마 전에 온라인 서비스(SNS)에 올린 글 중에 ‘저의 부인이 소천하였습니다’라는 글이 눈에 띄었다. 나는 의아하여 다시 들여다보았으나, 분명 그렇게 적혀 있었다. ‘부인(夫人)’이란 말은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예전에는 사대부 집안의 남자가 자기 아내를 부인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지만, 남에게 말할 때는 쓰지 않았다. 부인은 고대 중국에서는 천자의 비(妃) 또는 제후의 아내를 이르던 말이다. 고려ㆍ조선 시대에는 외명부의 봉작(封爵) 가운데 하나로, 남편이나 아들의 품계에 따라 그 아내와 어머니를 봉하였다. 이런 점을 따져 볼 때 다른 사람에게 자기 아내를 이르는 말로 부인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저의 부인’이라기보다는 ‘저의 아내(처, 내자)’라고 쓰는 것이 좋았을 터인데, 황망 중에 실수를 하여 여러 사람에게 교양 없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호칭어를 잘못 쓴 일을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 교회에서 담임목사의 목회 30주년 기념식을 할 때의 일이 떠오른다. 식순에 그 자리에 참석하신 담임목사의 아버님께 꽃다발을 드리는 순서가 있었다. 그 때 기념식을 진행하는 부담임목사가 “다음은 담임목사님의 ‘선친(先親)’께 꽃다발을 드리는 순서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등에서 땀이 흐를 정도로 민망하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선친이란 ‘남에게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를 이르는 말’이다. [남에게 돌아가신 자기 어머니를 이를 때에는 ‘선비(先妣)’라고 한다.] 그러므로 제삼자인 젊은 목사가, 살아계셔서 기념식에 참석하신 담임목사의 아버지를 ‘선친’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부적절한 표현이다. 진행을 맡은 젊은 목사는 ‘선친’이란 말을 남의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로 알았던 모양이다.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이 헛말이 아님을 느끼게 하였다. 담임목사의 아버지를 높여 말하려면, 한자말로 ‘목사님의 춘부장’이라고 하든지, 쉬운 말로 ‘목사님의 아버님(또는 어르신)’이라고 하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TV에서 대정부 질문에 나선 국회의원이 “00당 00지역구 국회의원 ‘000 의원’입니다.”라고 자기소개 하는 것을 보았다. 또, 목사가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자기소개 하기를 “00교회 담임목사 ‘000 목사’입니다.”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한국인은 상대방을 높이는 뜻에서 이름 뒤에 직명을 붙이고, 끝에 ‘님’자를 붙여 부른다. 이것은 상대방을 높여 부르려는 마음에서 생긴 것으로, 오래 전부터 전해 오는 관습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말할 때에 위에 적은 국회의원이나 목사처럼 자기 이름 뒤에 직명을 말하면, 자기 스스로를 높이는 것이 되어 실례가 된다. 따라서 남에게 자기를 말하면서 직명을 밝힐 필요가 있을 때에는 직명을 앞에, 이름을 뒤에 두어 ‘의원 000’, ‘목사 000’라고 해야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표현이 된다. 상대방이 직위를 알 경우에는 직명은 생략하고 이름만 말하면 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겸손을 모르는 교만한 사람으로 인식되기 쉽다.
호칭어는 자기의 말이나 글이 언론에 노출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온라인 서비스에 올리는 글에도 잘못 쓰는 일이 없어야 한다. 호칭어를 잘못 사용하면, 자기의 무교양을 드러냄은 물론, 국어 실력을 의심받게 된다. 그에 더하여 대인관계가 불편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호칭어의 뜻과 용례를 바로 알고 쓰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이런 노력은 올바른 국어생활을 위해, 원만한 인간관계 지속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잘 모를 때에는 알 만한 사람에게 묻거나, 국어사전을 찾아보며 익히면 된다. 호칭어를 바르게 알고 쓰는 것을 사소한 일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늘 관심을 기울여 실수함이 없도록 해야겠다. (2020.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