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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을 좋아는 까닭

의재 2020. 3. 15. 21:16

   우리는 나이, 연도, 날짜, 시간, 가격, 운동경기의 득점 등을 말할 때 숫자로 표현한다. 또, 중요한 문제나 일의 계획과 실천 등을 말할 때에도 숫자와 관련지어 설명한다. 이렇게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숫자 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숫자는 어느 것일까? 아마도 3일 것이다. 3과 관련된 말은 하루 세 끼, 삼합, 술 석 잔(중매를 잘하면), 3요소, 3원칙, 삼총사, 삼일천하,서당개 3년, 삼청동, 삼년고개,  세 번의 기회, 스리 아웃(three out, 야구), 스리 고(three go, 고 스톱) 등 아주 많다.

 

   3은 1과 2가 만나서 된 수이다. 1은 ‘모든 수의 시작’, ‘만물의 시초’, ‘만사의 근원’이라고 여기는, 양(陽)의 수이다. 2는 ‘짝수의 시작’, ‘길(吉)한 수’로 여기는, 음(陰)의 수이다. 이렇게 보면, 3은 양과 음이 만나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힘[生産力]을 지닌 수로, ‘신성한 수[聖數]’가 된다. 서양의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3을 남자의 튼튼한 두 다리와 성기의 상징으로 보아 생산력을 지닌 수라고 하였다. 그에 따르면, 3은 ‘성수(性數, sexual number)’이면서 동시에 ‘성수(聖數, sacred number)’가 된다.

 

   옛사람들은 우주와 자연에 대한 오랜 관찰과 깊은 사유(思惟)를 거쳐 하늘과 땅이 사람과 연계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이것은 삼재(三才) 사상의 기초가 되었을 것이다. 또 3은 ‘완전수’의 의미를 지닌다. 전에 쓰던 세발솥이나, 지게를 작대기로 받쳐놓은 모습은 3이 완전수임을 실감하게 한다. 그래서 3은 고대로부터 ‘성수(聖數)’, ‘완전수’로 인식되었다. 이런 인식은 생활 속에 스며들어 3은 신성함과 함께 친근감을 갖는 숫자가 되었다. 그에 따라 3은 우리 민족을 비롯한 여러 민족의 문화 속에 녹아들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단군신화」를 보면, 환인(桓因) 천제의 아들인 환웅(桓雄)은 인간계로 내려와 곰의 변신체인 웅녀(熊女)와 관계하여 단군을 낳는다. 이것은 하늘과 땅이 화합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것으로, 3이 성수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수 관념은 환웅이 가지고 온 천부인(天符印) 세 개, 데리고 내려온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와 3천의 무리에도 나타난다. 3천은 성수·완전수의 의미를 지닌 3과 ‘많은 수’, ‘완성의 수’의 의미를 지닌 ‘백·천’을 결합한 숫자이다. 따라서 3천은 꼭 3,000이라는 뜻보다는 ‘매우 많은 수’의 의미라 하겠다. 백제가 망할 때 낙화암에서 물에 빠져 죽은 삼천궁녀의 삼천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고구려인은 삼족오(三足烏)를 수호신으로 믿으며 신성시하였다. 이것은 각저총(角觝冢), 쌍영총(雙楹冢), 천왕지신총(天王地神冢) 등의 고구려 고분 벽화에 삼족오가 많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까마귀는 매우 영리하고, 늙은 어미를 봉양하는(反哺) 새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까마귀를 영험한 새, 신의 사자 역할을 하는 새로 여겨 신성시하였다. 다리가 셋이라고 한 것은 성스럽게 여기는 까마귀에 성스럽고 완전하다는 숫자 3의 의미가 더해져서 형상화된 것이다. 삼족오가 태양 속에 산다고 한 것은 이를 신성한 태양과 연계하여 더욱 성화(聖化)한 것이라 하겠다.

 

   3을 성수·완전수로 보는 인식이 민간에 널리 퍼져 일상생활에 깊이 자리 잡으면서 3은 친숙한 숫자가 되었다. 옛날이야기에서 환상적인 자녀의 수는 아들·딸 3형제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가정을 일으키거나 효성이 지극한 자녀는 셋째로 표현된다. 또, 고난을 당한 주인공은 세 번의 시련을 극복한 뒤에 성공하고, ‘참을 인(忍) 자 셋으로 살인을 면했다’고 한다. 이것은 3에 대한 민간의 의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어린아이를 점지하고, 산모와 아기를 돌보는 신을 ‘삼신’, 또는 ‘삼신할머니’라고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삼’은 ‘태아를 싸고 있는 막과 태반’, ‘삼 가르다’는 ‘아이를 낳은 뒤에 탯줄을 끊다’로 풀이하였다. 이로 보아 삼신은 ‘산신(産神)’ 또는 ‘태신(胎神)’을 뜻하는 말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3을 성수로 여기면서도 친숙하게 느끼는 마음이 작용하여 삼신을 삼신(三神)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삼신상을 차릴 때에도 밥과 미역국을 세 그릇 올려놓는다.

 

   전에는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면 초혼(招魂)한 뒤에 사자상(使者床)을 차려 놓았다. 초혼은 육신을 떠난 영혼이 돌아오기를 비는 의식으로, 망인의 주소와 이름을 말한 뒤에 ‘복! 복! 복!’하고 세 번 외친다. 사자상 위에는 밥 세 그릇과 돈을 놓고, 그 옆에 신발 세 켤레를 놓는다. 이것은 죽은 이의 영혼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저승사자가 셋이라고 여기는 의식 때문이다. 반함(飯含, 염습할 때에 죽은 사람의 입에 구슬이나 쌀을 물림) 때에도 ‘백 석이요, 천 석이요, 만석이요!’ 하면서 물에 불린 쌀알을 버드나무 숟가락으로, 죽은 사람의 입에 세 번 떠 넣는다.

 

   유교에서는 삼강(三綱)을 강조한다. 공자는 때때로 글을 읽고 배우는 것,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는 것, 남이 나를 몰라주더라도 개의치 않는 것을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君子三樂]’이라고 하였다. 맹자는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것, 부모형제가 평안한 것, 천하 인재를 가르치는 것을 ‘세 가지 즐거움’이라 하였다. 또 공자는 덕이 되는 친구[익자삼우(益者三友)]와 손해를 끼치는 친구[손자삼우(損者三友)]를 셋씩 말하였다. 삼고초려(三顧草廬) 고사에서도 3은 깊은 뜻을 지닌다.

 

   불교에서는 불보(佛寶, 석가모니불과 모든 부처), 법보(法寶, 깊고 오묘한 불교의 진리를 적은 불경), 승보(僧寶, 부처의 가르침을 받들어 실천하는 사람들)를 삼보(三寶)라 하여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불교에서 쓰는, 3과 관련된 말은 삼계(三界), 삼겁(三劫), 삼도(三道), 삼생(三生), 삼업(三業), 삼재(三災), 삼천불(三千佛) 등 많이 있다.

 

   기독교에서도 3은 매우 중요하고, 성스러운 숫자이다. 성부(聖父)·성자(聖子)·성령(聖靈)의 삼위일체는 교리의 중심이다. 예수는 광야로 가서 악마의 시험을 세 번 당한다.(마태 4:1~11). 예수는 자신이 사흘 만에 부활할 것을 비유적으로 말하며,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요한복음 2:19)고 한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뒤에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 예수가 잡혔을 때, 베드로는 예수의 말대로 닭이 울기 전에 예수를 세 번 모른다고 한다.

 

   이처럼 3은 우리 문화는 물론, 다른 나라 문화나 종교의 바탕에 자리 잡고 있다. 이제 내가 살면서 중요하게 여기고, 지켜야 할 일 몇 가지를 세 가지로 정리해 본다. 인생에서 한번 무너지면 다시 쌓을 수 없는 세 가지는 존경, 신뢰, 우정이다. 내가 진정 사랑해야 할 사람은 현명한 사람, 덕 있는 사람, 순수한 사람이다. 남에게 주어야 할 세 가지는 필요한 이에게 도움을, 슬퍼하는 이에게 위안을,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이에게 올바른 평점을 주는 일이다. 지켜야 할 일 세 가지는 젊었을 때 일을 자랑하지 말고, 젊은이들 틈에 끼어들려 하지 않으며, 입은 다물고 주머니는 여는 일이다. 이렇게 살면, ‘참을 걸, 베풀 걸, 즐길 걸’ 하는 후회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2020. 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