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장의 진화
지난 12월 성탄절 무렵부터 1월 초에 예년과 다름없이 많은 연하장을 받았다. 전에는 예쁜 그림이나 사진을 인쇄한 카드에 감사의 말과 새해를 축하하는 글을 정성껏 적어 우편으로 보낸 카드 연하장이 많았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이메일 또는 스마트폰의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로 보내는 사이버 연하장이 많다. 카드 연하장이든 사이버 연하장이든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면서, 부족한 나를 잊지 않고 보내준 것임을 생각하면 반갑고, 기쁘고, 고맙기 그지없다.
연하장은 신년을 축하하면서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비는 마음을 주고받은 데서 시작되었다. 서양의 연하장은 15세기 독일에서 아기 예수의 모습과 신년을 축복하는 글이 담긴 카드를 동판(銅版)으로 인쇄한 것이 시초이다. 18세기 말에 명함에 그림을 넣는 풍습이 생겨났는데, 독일·오스트리아·프랑스 등지에서는 이를 친지들에게 보내는 새해 인사장으로 사용하였다. 19세기 후반부터 영국과 미국에서 크리스마스카드를 주고받는 일이 널리 퍼지면서, 성탄 축하와 신년 인사를 함께 인쇄하여 썼다.
동양의 경우, 한(漢)나라 때 명첩(名帖, 또는 拜帖)이라 하여,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 상대에게 자신의 이름, 고향, 직함 따위를 적어 건네는 풍습이 있었다. 신년에는 거기에다 안부를 묻거나 덕담을 담은 간략한 문구를 추가했다. 이것이 연하장의 시초라 할 수 있다. 명첩은 한나라 때에는 대나무 조각을 평평하게 다듬어 썼고, 종이가 발명된 뒤에는 붉은 색 종이에 썼다. 명나라 때에는 사대부집 대문에 연하장을 받는 봉투까지 매달아 두었다고 한다.
조선의 연하장에 관하여는 정조·순조 때의 학자 홍석모(洪錫謨)가 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기록을 눈여겨 볼만하다. 설날에 의정대신은 모든 관원을 거느리고 대궐에 가서 새해 문안을 드리고, 신년을 하례하는 내용의 전문(箋文)을 지어 바쳤다. 각 관청의 벼슬아치들은 이름을 쓴 명함을 관원이나 선생의 집에 들였다. 그 집에서는 대문 안에 옻칠한 쟁반을 두고 이를 받아들였는데, 이를 세함(歲銜)이라고 하였다. 각 지방의 관청에서도 그렇게 하였다고 한다. 문 밖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중류 이상 가정의 부인들은 자기 집의 여종을 곱게 차려 입혀 인사드려야 할 어른들을 찾아뵙도록 하였다. 이를 ‘문안비(問安婢)’라고 불렀다. 문안비를 맞은 집에서는 자기 집의 종을 보내 답례하였다. 이 때 문안비는 새해를 축하하며 축원하는 서장(書狀)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여기에 나오는 신년하례 전문과 세함, 서장에서 연하장의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풍속은 이어서 행해지다가 대한제국 말기에 우편제도가 생겨나면서 점차 사라지고, 연하전보(年賀電報)와 연하우편(年賀郵便)이 등장하였다. 여기에 서양 문화의 영향이 겹쳐 성탄카드와 연하장을 주고받는 풍속이 생겨 널리 퍼졌다. 처음에는 본인의 글씨나 그림에 인사말을 적어 보내더니, 얼마 뒤에는 예쁜 그림이나 사진에 축하의 말을 적은 카드를 인쇄하여 사용하였다. 카드 연하장이 성행하던 때에는 예쁘게 만들어서 파는 연하장, 우체국에서 만든 연하장, 각 기업이나 대학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연하장이 있었다. 이 시기의 연하장에는 국내외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문물(文物)의 사진, 예쁜 그림, 정성껏 쓴 글씨, 축원의 뜻을 담은 인사말 등이 망라되어 있었고, 모양이나 종이의 질도 좋은 것이 많았다. 이때에는 연하장을 주고받는 일이 빼놓을 수 없는 연례행사였다. 이 시기의 우체국 직원들은 ‘연하장 홍수’를 처리하느라 수고가 많았다.
산업사회가 지식정보사회로 바뀌면서 종이 연하장은 사이버 연하장에게 자리를 넘겨주었다. 사이버 연하장은 선명한 사진이나 그림·글과 함께 음향도 넣어 입체감을 살릴 수 있다. 보내는 것도 아주 간편하고, 비용이 들지 않으며, 동시에 여러 사람에게 보낼 수 있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이버 연하장을 주고받는다. 그에 따라 연말연시가 되면 우편함에 넘쳐나던 연하장은 자취를 감추고, 청구서나 광고물만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연하장을 받으면―사이버 연하장이든 종이 연하장이든 관계없이― 보낸 사람을 만난 듯 반갑고, 기쁘고, 고맙다. 그런데 사이버 연하장의 경우, 그림이나 문구·배경음악이 눈에 익고, 이미 들은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니, 인터넷 공간에 떠도는 것이었다. 이것은 다른 사람한테 받은 파일을 다시 나에게 보낸 것이리라. 이럴 때에는 연하장을 보내준 것은 고맙지만, 지극히 형식적인 것이어서, 그 기쁨과 반가움이 반으로 줄었다.
연하장을 받으면, 나는 빠뜨리지 않고 바로 답장을 보낸다. 사이버 공간에 떠도는 연하장을 받아 기쁨이 반감되었던 경우를 몇 번 경험한 나는, 답장을 보낼 때에는 그 사람에게 맞는 말을 적어 보내거나, 내 손으로 직접 연하장을 만들어 보낸다. 컴퓨터를 켜서 지난해에 찍은 사진 중에서 적합 것을 고른 뒤에 거기에 새해를 축하하며 축원하는 말을 쓰고, 내 이름을 적어 연하장 파일을 만든다. 이 파일을 프린터로 인쇄하여 우편으로 보내거나, 사진으로 찍어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로 보낸다.
답장을 할 때, 사이버 연하장일 경우에는 받은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의 창을 열고 바로 답장을 보낸다. 그러나 우편으로 받은 연하장은 인쇄하여 봉투에 넣고, 주소와 우편번호를 써야 한다. 그리고 우체국에 가서 우표를 사서 붙인 뒤에 부쳐야 하므로, 좀 번거롭게 느껴진다. 우편물을 자주 보내던 몇 년 전만 하여도 연하카드나 우표를 미리 사다놓고 썼으므로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우편으로 서신을 주고받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카드나 우표를 사다 놓지 않는다. 그래서 좀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답장을 보낸다.
새해를 축하하는 전문이나 세함에서 시작된 신년 축하의 글이 손수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써서 정성껏 만드는 연하장으로 바뀌었다. 이것이 인쇄술과 우편제도의 발달에 힘입어 아름다운 사진이나 그림을 넣고 복된 글을 적어 인쇄한 카드 연하장 시대를 열었다. 카드 연하장은 지식정보사회를 맞으면서 사이버 연하장으로 바뀌었다. 나는 이런 연하장의 변화를 보면서 풍속이나 문화는 그 사회의 변화와 함께 하는 것임을 실감하였다. 앞으로 연하장이 어떻게 진화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새해를 맞는 기쁨과 복된 새해를 축원하는 마음을 나누는 것은 변함이 없으리라 생각한다.(2020. 0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