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를 잘 둔 제자
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사로 10여 년, 대학 교수로 30여 년 간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그래서 나에게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대학·대학원에서 가르친 제자가 많이 있다. 그중에는 가끔씩 만나는 사람도 있고, 자주 만나는 사람도 있다. 이를 아는 지인 중에는 나를 ‘제자 잘 둔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나보다 제자를 잘 둔 사람도 많이 있다. 나를 보고 ‘제자 잘 둔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내 제자인 김 교수를 꼽는다.
나와 김 교수는 그가 대학 2학년 때 내 강의를 수강하면서 학연을 맺었다. 그 뒤에 옮겨간 대학교의 대학원에서 박사과정 지도교수와 학생으로 다시 만나 학문의 동반자가 되었다. 김 교수는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하였고, 이제는 나와 함께 늙어가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도 그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전과 다름없이 깍듯하다. 나는 그와 자주 만나 학문·신앙에 관하여 이야기하기도 하고, 부부동반으로 국내·외를 여행하기도 한다. 이를 아는 사람들은 부럽고 존경스럽다고 입을 모은다.
김 교수는 진실한 마음으로 제자들을 대하고, 자상하게 지도하는 교육자이므로,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 나의 관심을 끄는 사람은 그가 초등학교 교사 시절에 가르친 제자들이다. 젊은 교사 시절에 어린 학생과 맺은 사제의 인연이 4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다니, 정말 특이하고 귀한 일이다. 그 중에는 의사들도 있고, 사업가와 회사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의사 제자들은 “선생님의 건강은 저희들이 책임지겠습니다.”라고 하면서, 그의 건강을 정성으로 보살펴준다고 한다. 그가 50대 후반이 된 이들과 나누는 정은 ‘아름다운 사제의 정’이라 칭송할 만하다. 나는 그의 제자 두 사람에게 신세를 졌다.
몇 년 전의 일이다. 아내가 어깨 통증이 심하여 동네 병원에 다녔으나 차도가 없었다. 이 말을 들은 김 교수는, 종합병원 정형외과에 근무하는, 초등학교 시절의 제자 K 교수를 소개해 주었다. 그는 내 아내를 ‘존경하는 김 선생님의 사모님’이라면서 정성스레 진찰하고, 치료해 주었다. 그 덕으로 아내는 병이 나아 지금까지 큰 불편 없이 지내고 있다. 그 일이 있은 뒤에 아내는 두 차례나 K 교수의 도움을 받았다. 한 번은 가슴의 통증 때문에, 또 한 번은 시신경(視神經)에 문제가 생겨 K 교수를 다시 찾았다. 그는 먼저는 순환기내과, 그 다음에는 신경과 의사에게 진료를 받도록 주선해 주었다. 그의 부탁을 받은 두 교수는 ‘K 교수 은사의 사모님’이라는 말을 듣고, 아주 친절하게 대하며 정성껏 진료해 주었다. 제자를 잘 둔 김 교수 덕으로, 아내는 의사를 신뢰하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진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하였다. 고맙기 그지없는 일이다.
2년 전의 일이다. 김 교수는 스위스에 살고 있는 초등학교 교사 시절의 제자가 여러 곳을 안내해 준다고 하니, 함께 가자고 하였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김 교수 부부를 따라 스위스에 갔다. 공항에 마중 나온, 김 교수의 제자 P씨는 50대 중반으로, 스위스에서 20년째 살고 있으며, 보험회사 임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존경하는 김 선생님을 위해 1주일 휴가를 얻었다면서, 자기 승용차로 우리를 태우고 스위스의 여러 곳을 탐방하였다. 그가 아주 세밀하게 일정을 짜서 안내하였으므로, 우리는 아주 알찬 여행을 하였다. 여행 중에 그가 김 교수를 대하는 말과 행동은 진정한 사랑과 존경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내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었다.
지난달에는 김 교수 내외와 함께 오스트리아와 독일, 체코를 여행하였다. 이번에도 스위스에 사는 P씨가 일주일 휴가를 얻어, 우리를 자기의 승용차에 태워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과 유서 깊은 곳을 안내하였다. 그래서 체코의 크룸로프 성, 오스트리아의 미라벨 궁전·잘츠부르크 성·볼프 강·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 월드, 독일의 히틀러 별장과 소금산 작업장 등을 탐방하였다. 세계적인 음악가 모차르트의 생가와 기념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도 가 보았다.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김 교수와 P씨 사이에 오가는 아름다운 사제의 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큰 기쁨과 보람, 감동과 함께 P씨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득 안고 돌아왔다.
나는 제자를 잘 둔 김 교수 덕에 K 교수를 만나 아내의 건강을 되찾게 하였다. 그리고 P씨를 만나 두 차례나, 알차게 유럽여행을 하였다. 나는 K씨와 P씨가 40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에도 김 교수에게 존경과 사랑을 표하는 것을 보면서 사제 간에 흐르는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젊은 시절에 사랑과 정성을 기울인 스승과 나이 들어서도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간직한 제자의 관계는 정말 귀하고, 고결하게 느껴진다.
나는 김 교수와 그의 제자 덕으로 아내의 건강을 회복하였고, 즐겁고 알찬 여행도 하였다. 이 일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고마운 마음과 함께 흐뭇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제자를 잘 둔 김 교수와 사제의 정을 나누며 살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2019. 1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