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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재서실(宜齋書室)

의재 2019. 8. 8. 14:24

   며칠 전 ‘의재서실(宜齋書室)’이라고 새긴 현판(懸板)을 선물로 받았다. 정년퇴임을 한 뒤에 서각(書刻)을 익혔다는 H 교수가 정성껏 새겨 만든 작품이다. 내 연구실이 있는 종로오피스텔에는 각 방문에 호실이 쓰여 있고, 그 위에 표찰(標札)을 붙일 수 있는 A4용지 크기의 사각 판이 붙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 현판을 걸 자리는 없다. 나는 궁리 끝에 현판 사진을 A4용지에 인화하여 사각 판에 붙였다. ‘의재’는 나의 호이고, ‘서실’은 ‘서적을 갖추어 두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방’이라는 말이니, 깊은 뜻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종로오피스텔에는 290여 개의 크고 작은 방이 있다. 복도를 지나면서 보면, 각 방문에는 회사, 출판사, 연구실, 변호사·세무사 사무실, 목회상담실, 서예실 이름 등 각양각색의 표찰이 붙어 있다. 그런데 그동안 내 연구실 문에는 표찰을 붙이는 자리에 흰 종이를 붙여 놓았었다. 그래서 나를 찾는 사람은 방 번호를 기억해야 찾아올 수 있었다. 방 번호를 깜빡하였거나, 잘못 기억한 사람은 다른 방문을 두드리기도 하고, 내게 전화를 걸어 묻거나 1층 경비실로 가서 확인하고 찾아오는 불편을 겪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제 표찰을 붙였으니, 이런 불편을 조금은 덜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표찰을 붙이지 않아 불편을 겪은 분들께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가 종로오피스텔에 연구실을 마련한 것은 2007년 10월의 일이다. 그것은 2008년 2월에 있을 교수 정년퇴임을 앞두고 대학의 연구실에 있는 많은 책을 어디로 옮겨 놓고, 연구 활동을 이어갈 것인가를 고민하던 때였다. 그 무렵에 먼저 퇴임한 선배 교수의 연구실이 있는 종로오피스텔을 찾게 되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나도 이곳에 개인 연구실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부동산 중개인에게 부탁하였고, 순조롭게 진행되어 작은 방을 매입하여 정년퇴임과 동시에 대학 연구실에 있던 책을 옮겨 놓았다.

 

   나는 연구실을 기도와 독서·연구의 공간, 사람을 만나 교양을 넓히고 업무를 처리하는 사무실, 건강을 증진시켜 주는 곳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침에는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갈 곳도 없고, 할 일이 없어 무료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니, 참으로 좋다. 연구실에 와서 기도드린 뒤에 홀로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있으면, 대학의 연구실에 앉아 있는 것과 같아서 퇴직하였다는 기분이 들지 않을 때가 있다. 나는 이 연구실에서 연구 활동을 계속하여 단독 저서와 공동 저서 몇 권을 집필하였다.

 

   내 연구실은 교통이 좋은 종로 3가의 전철역 가까운 곳에 있어서 지인을 만나기에 편하다. 내가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은 인사차 오는 사람, 함께 담소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사람, 연구하고 토론을 하여 보람을 얻으려는 사람, 출판이나 방송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 등 다양하다. 연구실이 없으면 이런 사람들을 집에서 만나야 한다. 교통이 좋은 곳에 연구실이 있기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은 집까지 찾아오는 수고를 덜 수 있고, 아내에게는 손님 접대의 부담을 주지 않는다. 점심은 물론 저녁식사도 연구실 근처에서 하는 일이 많으니, 아내에게 이식(二食)·삼식(三食)의 수고를 끼치지 않아서 좋다.

 

   나는 많은 비용을 들여 유지하는 연구실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의 부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연구실에 나온다. 연구실에 오고갈 때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연구실 밖에 나와 점심을 먹은 뒤에는 가까운 곳에 있는 창덕궁을 산책하기도 하고, 인사동이나 종로에 있는 전시장이나 서점을 방문하기도 한다. 이렇게 걷는 일은 운동량이 부족한 나에게 건강 증진의 계기가 된다. 이러한 일들은 연구실을 유지하는 데 따른 장점으로, 연구실 개설과 유지에 따른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연구실을 마련하려고 할 때, “정년퇴임을 하면 쉬는 게 순리인데, 많은 돈을 들여 연구실을 만들려고 하느냐?”고 하면서,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만류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때 만류하는 말을 듣고 연구실을 마련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집의 서재에서 할 것이다. 그러나 만나는 사람은 집에까지 와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지금보다 적을 것이다. 매일 출근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설 일이 없으니, 게으름을 피우는 날이 많아져서 활동량이 적을 것이다. 그리고 정년퇴직을 하던 해에 책을 모두 기증하고 홀가분해 하던 교수가,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도서관을 찾아다니는 것과 같은 불편을 겪고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보니, 그때 연구실을 마련하기를 잘 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 연구실을 언제까지 가지고 있을지는 나도 모른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이곳에 와서 새로 구입하는 책이나, 쌓아두기만 하고 읽지 못한 책을 읽을 예정이다. 그런데 기억력이 떨어져 책을 읽을 때는 다 아는 것 같지만, 읽은 뒤에는 그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니 읽는 동안 희열을 느끼면서 다시 읽으면, 기억에 남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글감이 잡히는 대로 글을 쓰려고 한다. 그 중에서 수필은 따로 수필집으로 엮어 지인들에게 나눠줄 생각이다. 다만 연구실 서가를 가득 채우고 빈 공간에 쌓여 있는 책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연구실 문에 ‘의재서실’ 현판을 붙이면서 왜 연구실을 가지고 있는가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의재서실’ 현판을 만들어 주어 연구실을 지니고 있는 데 따른 장점과 행복감을 다시 느끼게 해주신 H 교수께 감사한다.(2019. 8.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