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예술품 협곡[canyon] 탐방
미국 서부 지역에는 경관이 빼어난 협곡 즉 캐년(Canyon)이 여러 곳 있다. 캐년은 ‘붉은 사암층이 수만 년 동안 물의 침식작용에 의해 형성된 좁고 깊은 골짜기’를 말한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인(韓人) 관광회사들은 여러 캐년 중 경관이 빼어난 다섯 곳을 골라 관광객을 모집하여 단체관광을 하고 있다. 나는 지난 10월 하순에 아내와 함께 딸을 만나러 LA에 갔다가 삼호관광에서 모집하는 관광단에 끼어 5대 캐년을 탐방하였다.
그랜드 캐년(Grand Canyon)
애리조나 주에 있는 그랜드 캐년은 미국 국립공원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죽기 전에 꼭 가 볼 곳 제일순위로 꼽히는 곳이다. 그동안 한국인이 다녀간 수만 하여도 8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 지역에는 원래 원주민인 아파치족이 살았는데, 스페인 사람이 이곳을 서방세계에 알렸다. 이 협곡을 처음 발견한 스페인 사람은 이곳의 웅장하고 거대한 모습을 보고, 스페인어로 ‘그랑데(거대하다)’라고 하였다. 이 말이 영어로 바뀌니 ‘그랜드(grand)’가 되어, ‘그랜드 캐년’이라고 한다.
그랜드 캐년은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 협곡으로, 지질학의 교과서와 같은 곳이다. 이곳은 길이 약 470km, 평균 넓이 약 16km, 깊은 곳의 깊이 약 1,700m라고 하니, 정말 거대한 협곡이다.
이곳의 탐방로는 콜로라도 강을 사이에 두고 ‘사우스 림(South Rim)’과 ‘노스 림(North Rim)’으로 나뉜다. 나는 남쪽 포인트로 가서 기묘한 바위들로 이루어진 협곡의 웅장하며 위엄 있는 광경을 보며 크게 감탄하였다. 2001년 3월에 처음 갔을 때에는 장엄한 광경에 가슴이 뛰는 벅찬 감동을 느꼈었다. 이번에는 그 때처럼 가슴이 뛰는 감동을 느끼지는 못하였으나, 장대한 광경에 감탄하고, 또 감탄하였다. 더 오래 보고 싶었지만, 다음날 아침에 콜로라도 강과 그랜드 캐년의 장엄한 광경을 하늘에서 보기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이튿날 아침 일찍 관광용 경비행기 탑승장으로 갔다. 탑승권을 구입하여 체크인(check-in)하고, 대합실에서 김밥으로 아침 식사를 하며 대기하였다. 그런데 출발 예정시간 임박하여 날씨관계로 경비행기 운행을 중단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을 안고 발길을 돌려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자이언 캐년(Zion Canyon)
자이언 캐년은 유타 주에 있는 협곡이다. 이곳에는 웅장하면서 기묘한 바위들이 많다. 그래서 ‘신들이 노니는 곳’이란 뜻으로 ‘자이언(Zion)’이라고 이름하였다.
차를 타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달리면서 길 양편에 이어지는 바위들의 모습을 보았다. 한참 올라간 뒤에 길옆에 차를 세우고 협곡의 장관을 내려다보면서 사진을 찍었다.
앞을 건너다보니, 큰 바위를 깎아내리면서 돌로 온갖 기묘한 모양을 만들어 붙이고, 사이사이에 문양(紋樣)을 넣은 것 같은 바위비탈이 이어 서 있다. 또, 시루떡을 켜켜이 쌓아놓은 것처럼 보이는 바위산도 이어져 있다. 비탈진 바위를 뚫고 뿌리를 내려 살고 있는 크고 작은 나무들을 보면서 나무의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하였다. 이런 협곡을 바라보고 있으니, 신비스런 분위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이곳은 아주 먼 옛날에 바위산이 바다에 잠겨 있으면서 침식작용을 일으켜 이런 장관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 해발 약 2,800m나 되는 이곳이 바닷물에 잠겼었다니, 상상하기 어렵다.
브라이스 캐년(Bryce Canyon)
브라이스 캐년은 유타 주에 있는 계단식 분지 형태의 협곡이다. 선셋 포인트(sun set point)로 가서 협곡을 내려다보았다. 이암(泥巖)과 사암(砂巖)으로 된 붉은 색 바위들이 첨탑(尖塔)처럼 높이 솟아오르며 기묘한 모양을 뽐내고 있다. 이곳을 ‘첨탑의 향연이 펼쳐지는 곳’이라고 하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겠다.
나바흐 루프(Navajo loop)로 내려갔다가 올라오면서 기묘한 바위들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어떤 바위는 굉장히 큰 빌딩과 같은 모습을 보이고, 어떤 것은 첨탑처럼 하늘로 뾰족하게 솟아오르며 멋진 모습을 뽐낸다. 어떤 것은 수수하고 소탈한 모습을 보이고, 어떤 것은 섬세한 조각가가 만들어 놓은 것과 같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모두 다 경이롭기 짝이 없다.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
유타 주 남부로부터 애리조나 주 북부에 걸쳐 있는 협곡이다. ‘메사(mesa, 원래 평평한 평지였으나 단단한 표면의 지층은 부식되지 않는 반면, 부식이 잘 되는 약한 부분은 물에 씻겨 내려가면서 단단한 표면은 상대적으로 주위보다 높은 언덕)’라고 하는 테이블 모양의 바위가 여러 곳에 솟아 있는 곳이다.
이곳은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원주민들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다. 원주민들이 운행하는 16인승 지프(geep)차를 타고, 흙먼지가 이는 길을 15분쯤 달려 계곡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서는 원주민들의 생활용구와 관광용품을 전시․판매하고 있었다.
주위에는 ‘세 자매바위’, ‘낙타바위’를 비롯하여 이름 있는 큰 바위들이 곳곳에 있다. 이곳은 이런 바위들이 마치 ‘기념비(monument)’가 줄지어 있는 듯하다 하여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라고 이름하였다. 이곳에서 <추적자>를 비롯한 여러 편의 서부영화가 촬영되었다고 한다.
안텔로프 캐년(Antelope Canyon)
안텔로프 개년은 애리조나 주 파웰 호(Powell Lake) 근처에 있다. 콜로라도 강이 만든 예술품으로, 붉은 사암층(砂巖層)이 수만 년 동안 물의 침식작용에 의해 형성되었다. 1980년대 말부터 사진작가들이 모여 자유롭게 사진을 찍기 시작하였는데, 그 뒤로 널리 알려져 관광객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이곳은 인디언보호구역에 위치한 지하협곡(under canyon)으로, 탐방길이 복잡하다. 그래서 원주민들이 운영하는 두 개 관광회사에 소속된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 우리는 켄스 투어(kens Tour)에 탐방 신청을 하였다. 15명이 한 조가 되어 원주민인 나바오 족 청년의 안내를 받았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평지를 300m쯤 걸어간 뒤에 동굴 입구에서 철제 계단을 밟고 지하로 내려갔다. 20여 계단을 내려간 뒤에 바위 사이로 난 좁은 길을 이리저리 돌아 걸으며 바위들의 모습을 살폈다. 건물 3~4층 높이의 바위들은 깎아지른 듯이 곧게 또는 비스듬히 서 있기도 하고, 소라껍질 속처럼 둥글게 파인 채 서 있기도 하였다. 사람이나 동물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바위도 있다. 이런 바위들은 바위틈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여러 가지 색으로 보였다. 같은 바위도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색감이 다르다. 눈으로 볼 때와 사진기에 찍어서 볼 때도 색이 다르게 보인다. 참으로 신기하다. ‘자연의 신비’요, ‘빛의 마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를 안내하는 인디언 가이드는 앞장서서 걷다가 사진 촬영하기 좋은 곳에서는 멈춰 서서 사진을 찍으라고 하고, 직접 찍어 주기도 하였다. 지하협곡을 탐방하는 시간은 정말 즐겁고 황홀하였다. 그런데 철판으로 된 계단을 밟고 지상으로 올라오니, 조금 전에 지하에서 보던 황홀한 광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하로 내려가기 전에 보던 광경 그대로였다. 아쉬움이 밀려온다. 남가일몽(南柯一夢) 고사에 나오는 주인공이 꿈을 깬 뒤에 느꼈을 허망함도 이와 같았을까!
나는 5대 캐년의 풍광을 보는 동안 놀라움과 감탄이 연속되었다. 이런 장관은 이 세상의 예술가들이 모두 힘을 합쳐도 만들 수 없을 만큼 웅장하면서도 섬세하고 기묘하며, 아름답고 신비롭다. 이런 장관이 생긴 것은 메사 지질의 특성과 강의 침식작용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협곡이 생긴 내력을 설명하는 이론일 뿐이다. 대자연의 예술품이 생긴 내력이 이런 말로 다 설명되지는 않는다. 나는 이를 ‘위대한 신의 예술품’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신비로운 신의 예술품을 감상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을 감사하며, 많은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잘 보존되기를 바란다. (2018. 1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