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산문

전업주부 체험

의재 2018. 3. 25. 17:09

  요즈음 나는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집안일은 살림을 꾸려 나가면서 하여야 하는 여러 가지 일로, 밥하기빨래청소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일들을 말한다.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을 흔히 전업주부라고 한다. 이 말을 받아들여 사용한다면내가 전업주부가 된 것이다. 내가 전업주부가 된 데에는 아내의 시력(視力)에 문제가 생겨서이다.

   지난 125일의 일이다. 아내는 친구들과 만나 무슨 강의를 들으러 간다면서 일찍 집을 나섰고, 나는 연구실로 나갔다. 오후에 ㄱ교수 내외와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연구실에 온 아내는 뜻밖의 말을 하였다. 오전에 강의를 듣는 중에 속이 거북하고, 강사의 얼굴이 둘로 보이더란다. 그래서 점심도 안 먹고 전에 다니던 내과의원에 가니, 내과의사는 소화제 이틀 분을 처방해 주면서 이 약을 먹고 낫지 않으면 안과에 가서 진료를 받으라.”고 하더란다. 아내는 내과의원에서 준 약을 먹고 속이 편안해진 것 같다고 하였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추운 날씨에 찬바람을 쐬고 돌아다녀서 아침 먹은 게 탈이 났었나 보다.”고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ㄱ교수 내외와 담소하다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집으로 왔다.

   이튿날인 126(금요일) 오전 11시에 교회에 가서 은빛섬김예배 겸 연합속회예배를 드렸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내는 예배 끝날 무렵부터 물건이 둘로 보이는 현상이 다시 나타난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나는 소화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안과에 가보라고 하였다는 내과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차를 돌려 미아리에 있는 ㅎ안과에 갔다. 안과에서는 여러 가지 검사를 한 뒤에 안과진료에는 별 문제가 없다면서 먼저 큰 병원 신경과, 그 다음에 신경안과에 가보라고 하였다. 모든 병은 초기에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진료가 없는 주말이 다가오니, 걱정스럽고 불안하였다. 그래서 큰 병원에 서둘러 진료 예약을 하였다.

  주말을 그대로 보내고, 129(월요일)에 어렵게 예약한 강북삼성병원 신경과에 가서 ㅁ교수의 진찰을 받았다. ㅁ교수는 아내의 병은 복시(複視)’인데, 여러 가지 검사를 해 봐야 그 원인을 알 수 있겠다면서 입원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그날로 입원하여 3일 동안 X-Ray 촬영혈액검사MRI, MRA,척수검사를 받고, 안과에서 하는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검사가 끝난 뒤에 ㅁ교수는 뇌졸중이나 순환기에는 문제가 없다면서, 안구를 움직이는 여섯 개의 근육 중 하나가 마비되었거나 시신경(視神經)의 일부에 염증이 생긴 것 같다고 하였다. 아내는 의사에게 하나인 남편이 둘로 보이고, 두 아들이 넷으로 보이니, 빨리 낫게 해 달라고 하였다. ㅁ교수는 입원한 상태에서 5일간 주사 치료를 하고, 그 뒤에 약물 치료를 해야 한다면서 말했다. “이 병은 올 때는 급하게 왔으나, 갈 때는 천천히 떠나는 병이니 조급하게 마음먹지 마세요. 빠르면 3개월, 늦으면 6개월 정도 되어야 회복될 것이라고 하였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아내는 앞을 볼 수 없으니, 모든 것을 옆에서 보살펴주어야 했다. 그래서 나와 아들 둘이 번갈아 아내 옆에서 자면서 간호하였다.

  아내는 25일에 8일간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하였다. 그러나 두 눈을 다 뜨면 사물이 둘로 보이므로, 어지러워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음식을 먹거나 움직일 때에는 안대나 거즈로 한쪽 눈을 가려야 한다. 많이 움직일 때에는 옆에서 부축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한쪽 눈을 가리면 다른 눈의 피로가 심하므로, 긴 시간 안대를 하고 있을 수도 없다. 그러니 집에 온 그 시간부터 집안일은 모두 내 몫이 되었다. 세 끼 식사 준비, 장보기, 청소, 세탁, 쓰레기 버리기 등을 모두 내가 해야 한다. 그런데 집안일을 해본 적이 없는 나는 할 줄 아는 일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일일이 아내에게 물으며 식사를 준비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마트에 가서 식품을 사온다. 반찬은 며느리가 만들어다 준 것과 사다 준 것, 여동생과 처제아내의 친구가 갖다 준 것을 고마운 마음으로 먹는다.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날이 늘어감에 따라 식사 준비, 사용한 그릇을 씻어 말리는 일, 행주를 빨아 햇볕에 말리는 일, 가스레인지압력밥솥프라이팬 활용 방법 등에 어느 정도 익숙해 졌다. 빨래를 할 때 세탁물을 세탁주머니에 넣어 세탁기에 넣기, 세제 넣기, 헹굼 횟수와 세탁 시간 조절 등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아침을 먹은 뒤에는 점심에 무엇을 해서 먹을까를 생각하고, 점심을 먹은 뒤에는 저녁에 무엇을 해서 먹어야 하나를 생각하며 답을 찾는 일도 낯설지 않게 되었다. 아내는 내가 생각보다 집안일을 잘한다면서 전업주부 자격증을 주어야겠다고 농담을 한다.

   집안일을 도맡아 한 지도 어언 두 달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외출을 자제하고 24시간을 아내와 함께 지내며 시중을 들고 있다. 집안일을 함은 물론, 아내의 전화기로 오는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와 우편물을 읽어 준다. 매일 아내를 승용차에 태우고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게 한다. 그리고 강북삼성병원 신경과와 안과에 가서 검사를 받고, 약 처방을 받아 온다. 또 전에 한 갑상선 결절 검사 결과를 보러 다른 병원에도 다녀왔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내 나름의 시간 활용 계획은 언감생심(焉敢生心) 할 수 없다. 그래서 글 쓰는 일과 <한국구전설화집-서울편> 원고 정리하던 일을 멈추었고, 독서 계획도 보류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잠깐씩 성경을 읽고, 신문 제목을 살피는 일뿐이다. 아내는 내가 자기 시중을 들고, 집안일을 하며 운전기사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며 고맙고 미안하다고 한다. 내가 이 말을 받아 당신은 이 일을 52년이나 하였는데, 나는 이제 겨우 두 달 하였을 뿐이야. 미안해 할 것 없어.” 하니, 아내는 그래도 미안하다고 한다.

   나는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 이 일이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아내가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을 군소리 없이 도맡아 해 준 덕에 나는 연구하고 가르치며, 글 쓰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그동안의 아내의 노고에 감사한다. 아내의 발병은 나에게 이런 깨달음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요즈음 하루하루의 일이 힘들고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동안 아내의 노고에 조금이나마 보답한다는 생각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집안일을 하며 아내의 시중을 들고 있다. 아내가 쾌차한 뒤에도 요즈음에 익힌 대로 집안일을 하여 아내를 돕고, 삼식이(하루 세끼를 집에서 먹는 사람)는 하지 말아야겠다. 그래서 아내가 가끔씩은 가사노동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맛볼 수 있게 해 주어야겠다. 아내의 복시 현상이 없어져서 마음대로 활동하고, 책을 읽을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한다. <2018. 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