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계획
지난 해 12월에 우리 부부는 ㄱ 교수 내외와 함께 전북 정읍에 사는 ㄱ 교장 댁에 갔다. 세 부부가 정읍에서 만나 ㄱ 교장의 차를 타고 남쪽 지방을 여행하기로, 한 달 전에 한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사정이 생겨 남쪽으로 떠나지 못하고, ㄱ 교장 댁에서 묵으면서 정읍 지역을 여행하였다.
ㄱ 교장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전북 고창군 흥덕면 소재지를 지나게 되었다. 그 때 ㄱ 교수는 아끼는 제자가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는 교회가 이 근처에 있다면서 전화를 하였다. ㄱ 교수의 전화를 받은 ㅅ 목사가 바로 차를 몰고 달려왔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에 ㅅ 목사가 담임한 교회의 신축공사장에 갔다. 외부 공사를 마치고 내부 공사가 진행 중인데, 건물의 규모와 방 배정을 볼 때 지역 실정에 맞고, 앞을 내다보는 설계여서 아주 좋았다. 우리는 본당 자리에 둘러서서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공사비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없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헤어질 때 ㄱ 교장은 ㅅ 목사를 저녁식사에 초대하였다.
ㅅ 목사는 ㄱ 교수가 재직한 대학교 재학 시절에 나이 많은 학생으로, 학업에 매우 열중하였고, 기숙사 학생 대표를 맡아 모든 일에 솔선수범(率先垂範)하였다. 그래서 ㄱ 교수를 비롯한 몇몇 교수와 직원으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학생들로부터는 큰형님으로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1994년 1학기에 그 대학에 강사로 가서 선교학과와 신학과 학생들에게 「한국의 전통문화」를 강의한 적이 있다. 그는 그 때 내 강의를 들은 학생인데, 과대표로 강의 분위기 조성에 앞장섰던 노학생(老學生)이어서 기억에 남는 학생이었다.
그 해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에 ㄱ 교수는 나에게 잘 포장된 선물을 건넸다. 웬 선물이냐고 물으니, 선교학과의 노학생이 여름방학에 학교에서 보내는 선교여행단의 일원으로 필리핀에 다녀오면서, 나를 주려고 사온 선물이라고 하였다. 큰 합죽선(合竹扇)인데, 필리핀 특유의 그림이 그려 있어 멋스러웠다. 나는 강사로 나가 강의한 대학의 학생한테 선물을 받은 적이 없었던 터라 받기를 주저하였다. 그러나 ㄱ 교수가 그 학생이 나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는 것이니 받으라고 권하여, 고마운 마음으로 받았다. 그 뒤에 나는 가끔 ㄱ 교수에게 그 학생의 안부를 물었고, 목회를 잘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오후 5시가 되자, ㅅ 목사 내외가 ㄱ 교장 댁으로 왔다. 우리는 반갑게 맞이하여 담소하였다. 그 때 나는 ㅅ 목사에게 담임하고 있는 교회의 교회 형편을 묻고, 목회에 성공하기까지 겪은 일들을 이야기해 달라고 하였다. 그는 그 동안 지내온 일들은 간략하게 이야기하였다.
그는 군산에서 자랐는데, 어렵사리 중학교를 졸업하였으나, 가정 형편상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여러 가지 물건을 가지고 다니며 팔아 돈을 벌어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나이가 좀 든 뒤에는 전기와 설비 기술을 익혀 건축현장을 누비며 열심히 일하였다. 그는 20세에 아는 사람의 전도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는데, 그 때부터 새벽기도를 하였다. 어느 날, 그는 기도 중에 “너는 공부를 더 하여라.” 하는 음성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내 형편에 어떻게 공부를 하나?’ 하는 마음이 들어 그 말씀을 무시하고,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였다. 군에서 제대한 뒤에는 서울에 있는 작은 회사에서 일하며 교회를 다녔다. 그 때에도 새벽기도회에는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심신이 몹시 피곤하여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니, 폐결핵이라고 하였다. 그는 외로운 객지 생활에, 당시에 불치병이라고 여기는 폐결핵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에 빠졌다. 그는 약을 먹으며 기도하는 길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 더욱 열심히 기도하였다. 그 무렵, 그가 다니는 교회의 처녀 전도사가 그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는 처음에는 중졸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 대학을 졸업한 전도사와 결혼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망설였다. 그러나 서로의 진심이 통하여 어른들의 허락을 얻어 29세에 결혼하였다. 신혼에 투병하는 일이 쉽지 않았으나, 굳은 의지와 믿음으로 이겨냈다.
어느 날, 그는 기도하는 중에 “왜 공부하라는 내 말을 따르지 않느냐? 더 공부해라!” 하는 음성을 들었다. 그는 그 말씀을 따르기로 하고, 한국 나이로 37세가 되던 해 1월에 노량진에 있는 고입검정고시학원에 등록하였다. 20여 년 만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보니, 전에 배운 것은 다 잊어버렸고, 정신 집중도 잘 안 되어 어려움이 많았다. 공부를 시작하고 두 달이 지난 3월에 고입검정시험이 있다고 하였다. 그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응시하였는데, 5월에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그는 합격의 기쁨을 접어두고, 8월에 있을 대입검정고시를 준비하였다. 주위 사람들은 너무 욕심을 부린다며 만류하였지만, 그는 대입검정고시 준비에 매진(邁進)하여 합격하였다. 그래서 한국나이로 38세에 ㅂ대학교 선교학과에 입학하였다. 늦깎이 대학생이 된 그는 한시 반때도 놀지 않고 공부에 열중하여 장학금을 받으며 학부 과정을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대학원을 마치고 전도사로 일한 뒤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에 흥덕에 있는 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그 때 교인은 13명이었고, 지역 주민은 대부분 노인어른들이었다. 그는 교회차로 동네 어른을 태워다드리며 사는 형편과 어려움을 겪는 일이 있는가를 묻곤 하였다. 그가 만난 어른 중에는 수도가 잘 나오지 않아 불편을 겪고 있기도 하고, 전등․TV․냉장고․세탁기 등의 가전제품이 고장 나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이 계셨다. 그는 이런 말을 듣는 즉시 달려가서, 청년 시절에 익힌 설비와 전기 기술을 발휘하여 무료로 수리해 드렸다. 이를 본 노인 어른들은 크게 감사하며 기뻐하였고, 다른 사람에게 칭찬의 말을 하였다. 이런 일이 알려지자 이웃동네 어른들도 그에게 어려움을 호소하며 그를 불렀다. 그는 동네 어른들과 친해지면서 조심스럽게 전도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그 동네는 물론 이웃동네의 어른들이 한 분씩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 사는 그 분들의 자녀가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교인이 130여 명이 되었다고 한다. 교인이 늘고 보니, 교회를 신축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교인들과 뜻을 모아 신축공사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가 시골에서 목회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투철한 신앙심에 여러 가지 장사 경험, 전기와 설비의 기술, 늦깎이 학생으로 열심히 공부해 쌓은 실력 등이 함께 어우러져 꽃을 피운 덕이라 생각한다. 나는 ㅅ 목사의 간증을 들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를 시골교회 목회자로 키우기 위해 오래 전부터 준비하셨다는 생각과 함께 구약 성경에 나오는 요셉을 떠올렸다. 형들의 미움을 사서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간 요셉은 이집트 왕의 경호대장 보디발의 종이 되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살림을 도맡아하고, 모함을 당하여 감옥살이를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험은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7년이나 계속되는 흉년에서 이집트 사람과 자기 가족을 살릴 역량을 갖추게 하셨다. 하나님은 ㅅ 목사로 하여금 어린 시절에 장사를 하게 하여 남다른 친화력(親和力)과 수완을 기르게 하시고, 전기와 설비 기술을 익히게 하여 노인들이 많은 시골교회 목회를 위한 자질을 갖추게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ㅅ 목사를 시골교회 목회에 적합한 능력과 자질을 갖춘 목회자로 키우려는 장기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ㅅ 목사 교회가 입당예배를 드리는 날이다. 입당예배 시간에는 전 교인과 원근각지에서 오신 많은 분들이 입당을 축하하며 감사하는 예배를 드릴 것이다. 나는 그 교회에 가서 입당예배에 참석할 수 없어 ㄱ 교수 편에 입당축하헌금을 조금 보냈다. 그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신축에 따른 후유증이나 어려움 없이 더욱 부흥하여 머지않은 날에 헌당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한다. (2018.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