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곡폭포와 문배마을
며칠 전에 교일산우회 남부모임 회원 7명과 함께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강촌리에 있는 구곡폭포와 문배마을에 갔다. 오전 9시 50분에 상봉역에서 만나 춘천행 열차를 타고 1시간쯤 달려 강촌역에 도착하였다. 강촌역에서 내린 우리는 기다리고 있는 택시를 타고 구곡폭포 매표소 앞 주차장으로 갔다. 주차장에서 보니 왼쪽 길은 봉화산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 길은 구곡폭포로 가는 길이다. 문배마을은 구곡폭포 입구에서 갈라진다고 하므로 구곡폭포 매표소 쪽으로 갔다.
구곡폭포 매표소 앞에는 길 양쪽에 세운 목조 문기둥에 가로로 걸쳐놓은 현판에 ‘자연이 살아 숨쉬는 구곡폭포 관광지’라고 커다랗게 쓴 글자들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매표소에 가니 어르신들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고 하여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길 양편에는 서 있는 아름드리나무들이 만들어 주는 그늘을 따라 황토 오솔길을 걸어 올라갔다. 길옆의 계곡에는 물이 조금씩 흐르고, 산에는 여러 모양의 바위들이 멋진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계곡의 물이 많았으면 시원함과 산길의 운치를 느끼게 해주었을 터인데, 초여름의 가뭄이 심한 탓에 물이 거의 말라 아쉽게 느껴졌다.
구곡폭포는 해발 526m의 봉화산 기슭에 있는 높이 50m의 폭포이다. 구곡폭포는 ‘아홉 구비를 돌아서 떨어지는 폭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구곡폭포는 1981년 2월 13일 춘천시 관광지로 지정되는데, 옛 이름은 ‘문폭(文瀑)’이라고 한다. 회원들과 대화하며 걷다가 길옆에 세워놓은 간판을 보니, 그 내용이 매우 흥미로웠다.
“봉화산(해발 525.8m)이 품고 있는 생명수가 아홉 골짜기를 휘돌아 내리고, 선녀의 날개옷처럼 하늘거리는 아홉 줄기의 사뿐한 물 내림, 그 조화로운 물소리가 아름답고 단아한 폭포입니다. 폭포에 이르는 황토 오솔길과 시냇물을 벗 삼아 폭포에 이르면 ‘꿈, 끼, 꾀, 깡, 꾼, 끈, 꼴, 깔, 끝’의 쌍기역(ㄲ) 아홉 가지 구곡혼(九曲魂)을 담아가실 수 있습니다.”
쌍기역으로 된 낱말 9개를 제시하고, 이를 ‘구곡혼’이라고 한 발상이 매우 흥미로워 각 낱말의 뜻을 생각해 보았다. 각 낱말의 뜻과 나타내려는 의도가 얼른 떠오르는 말도 있지만, 무어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는 말도 있었다. 조금 올라가니, 작은 간판(leaflet)에 낱말 하나를 적고, 그 말이 지닌 의미와 지향점을 짧게 풀이하고, 영어 단어로 적어 놓았다. 이렇게 적은 아홉 개의 작은 간판이 폭포 앞까지 띄엄띄엄 서 있다. 나는 낱말의 뜻과 지향점, 그 말을 번역한 영어 단어가 궁금해 적으면서 올라갔다.
꿈(희망은 생명. Dream), 끼(재능은 발견. Talent), 꾀(지혜는 쌓음. Wisdom), 깡(용기는 마음. Courage), 꾼(전문가는 숙달. Expert), 끈(인맥은 연결고리. Connection), 꼴(태도는 됨됨이. Altitude), 깔(맵시와 솜씨는 산뜻함. Freshness), 끝(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 End).
구곡폭포 가까이 오니, 문배마을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나왔다. 구곡폭포를 보려고 경사가 급한 꼬부랑길 위에 놓은 나무계단을 한참 올라갔다. 수많은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니, 50m 높이의 폭포가 보였다. 그러나 가뭄 탓에 흐르는 물이 적어 폭포로서의 이름값을 느낄 수 없어 아쉬웠다.
구곡폭포 입구 갈림길에서 오른쪽 능선 쪽으로 길을 잡아 문배마을로 향했다. 널찍하게 닦아놓은 비탈길과 계단을 40여 분 걸어 올라가니 문배마을이 나왔다. 문배마을은 산 정상처럼 보이는 분지(盆地) 마을인데, 6․25 전쟁 때 전쟁이 일어난 것도 모르고 살았다는 평화로운 마을이다. 약 66,000㎡ 넓이의 분지인 이 마을은 200여 년 전에 형성되었는데, 이 지역 산간에 자생하는 돌배보다는 크고 과수원 배보다는 작은 문배나무가 있었고, 마을의 생김새가 짐을 가득 실은 배 모양이어서 문배마을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문폭(구곡폭포의 옛이름)’의 뒤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문배(文背)마을’이라고 하였다고 하기도 한다. 구한말 춘천 의병장으로 유명한 이 마을의 선비 습재(習齋) 이소응(李昭應, 1852~1930) 선생은 그의 문집에서 구곡폭포를 문폭이라 하고, 문배마을에 관하여는 “문배의 샘물은 달고, 토지는 비옥하며 둘러친 산으로 하여 마치 큰 배와 같이 생겼다.”고 하였다.
문배마을 어구에는 ‘자연생태 우수마을’로 인정한 환경부장관의 인증서(2010. 1. 1.~2012. 12. 31.)를 확대하여 올려놓은 간판이 서 있다. 세움 간판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니, 길옆에 심어놓은 여러 가지 꽃들이 개망초를 비롯한 야생화와 어울려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아주 조용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주는 마을에는 띄엄띄엄 집이 있는데, 모두 식당 간판이 붙어 있다. 각 집에는 주차장은 물론 족구장을 비롯한 작은 운동장과 간이 운동 시설이 보였다. 이로 보아 이곳은 우리처럼 잠깐 왔다가는 손님도 있지만, 단체로 와서 친목 도모와 함께 체력 단련을 하는 손님이 많은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ㅂ형이 서울에서 소개받았고,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만난 서울 손님들이 소개한 신씨네 집을 찾아갔다. 야외에 마련된 넓은 마루에 앉아 닭백숙을 주문하고, 서비스로 주는, 칡가루로 부친 전을 안주로 이 집에서 담갔다는 술을 한 잔씩 마셨다. 우리는 문배마을에서 빚은 술은 문배주라고 하면서 이 술이 그 이름난 문배주와 관계가 있느냐고 물었다. 젊은 주인은 이곳에 오는 손님들이 이 술을 문배주라고 하지만, 이름난 문배주와는 관계가 없다고 하였다. 문배주는 원래 평양에서 밀․좁쌀․수수를 재료로 하여 만들던 술로, 술의 향기가 문배나무의 과일에서 풍기는 향기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86년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는데, 2000년 6월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 건배하여 유명해졌다. 우리는 문배마을에 와서 전통의 문배주를 맛볼 수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문배마을에서 빚은 술이 곧 문배주라며 웃었다. 닭백숙을 기다리는 동안 여행, 건강, 사회문제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곳에서 먹은 맛있는 닭요리와 유익한 대화는 고갯길을 넘어오느라고 쌓인 피로를 말끔히 날려 주었다.
가던 길을 되돌아오는 동안 산세(山勢)와 길, 여러 나무와 풀의 어울림을 살펴보았다. 푸른빛을 자랑하는 나무와 하늘을 번갈아 보면서 70이 넘은 나이에 건강한 몸으로 이런 곳에 올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였다. 가뭄으로 물이 적어 구곡폭포의 멋진 모습을 보지 못하고 내려오는 길이 못내 아쉬웠는데, 매표소 가까이에 예쁘게 지어놓은 ‘구곡정(九曲亭)’이 아쉬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2014년 6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