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재 2011. 8. 18. 16:30

아바노스(Avanos)

   아바노스는 크즐 으르막(Kızıl Irmak, 붉은강) 옆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붉은 강은 터키 안에서 흐르는 가장 긴 강이다. 아바노스는 붉은강 바닥에서 퍼 올리는 붉은 흙으로 토기를 만드는 곳으로 이름난 곳이다. 만드는 물건은 컵이나 접시, 작은 화분과 같은 생활용품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넣은 장식용 접시 등 아주 다양하다. 시내 한 복판에는 토기의 고장답게 토기를 만드는 기술자의 상을 만들어 세워놓았다.


  나는 201022일에 한국어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무스타파 군과 잔수 양과 함께 하즈벡타쉬에 갔다 오다가 이곳 아바노스에 왔었다. 무스타파 군은 자기의 사촌형이 근무하는 도자기 공장으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넓은 판매장과 생산 공장이 함께 있는 비교적 규모가 큰 공장이었다. 도자기를 만드는 기술자가 전기로 돌리는 희전판에 반죽한 흙을 놓고, 손으로 조절하여 접시와 화병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만들은 그릇은 건조시킨 다음에 불에 한 번 굽고, 거기에 그림을 그려 넣은 뒤에 다시 더 높은 온도로 불에 구워 완성한다고 하였다.



  무스타파 군의 사촌형은 우리를 화공(畵工)들이 그림을 그려 넣는 작업장으로 안내하여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화공들은 초보자로부터 수준이 높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다. 화공은 그림을 그린 뒤에 자기의 사인을 넣어 누가 그렸는가를 알게 하였다. 제품의 판매 가격은 그림을 그린 사람의 수준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수준 높은 사람이 그린 작품의 경우에도 작은 실수라도 하면 가격을 낮게 책정한다고 하였다. 화공의 작은 실수는 나 같은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숙련된 화공이 작은 실수를 하여 가격을 낮게 책정하였다는 장식용 접시 큰 것 4점과 작은 것 3점을 샀다.

  도자기점을 나온 우리는 무스타파 군을 따라 터키석을 비롯한 악세사리 판매점으로 갔다. 그곳은 한국어를 비교적 잘하는 무스타파 군이 한국 관광객 담당 직원으로 아르바이트 하였다는 상점이다. 우리는 그 곳에서 터키석의 특성과 세공 과정 등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아바노스의 도자기 판매점이나 터키석을 비롯한 악세사리 판매점은 한국 관광객의 관광 코스에 들어 있는 곳이다. 이곳에 온 관광객은 터키 도자기나 악세사리를 많이 사 간다고 한다. 나는 이곳이 고향인 무스타파 군과 잔수 양과 함께 왔기 때문에 도자기의 제작 과정, 터키석을 비롯한 악세사리의 품질과 세공 과정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도자기를 값싸게 살 수 있었다.

  2011320일의 일이다. 외사촌 동생인 이 부장과 함께 카이막클르 지하도시를 보고 나오니 오후 5시가 넘었다. 데린쿠유 지하도시는 10km를 더 가야한다고 하니,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이제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일만 남았다.

  나는 무스타파 군과 아바노스에 오기 전인 2009104일에 G 교수와 괴레메와서 젤베 야외박물관, 카이막클르 지하도시 등을 둘러보고 카이세리로 돌아가는 길에 아바노스에 왔었다. 그 때 항아리 케밥을 맛있게 먹고, 붉은 강가를 산책한 생각이 났다. 지도를 펴보니, 아바노스가 카이세리로 가는 방향에 있었다. 일부러 돌아가는 것도 아니어서 그곳으로 가자고 하였다.

  아바노스에 도착하여 붉은강을 건너기 전에 차를 세우고 길을 물었다. 함께 간 오누르는 내가 말하는 항아리 케밥이 터키어로 무엇인지 몰라 안타까워하다가 그곳 사람에게 물어 ‘Testi Kebabi’인 것을 알고 좋아하였다.

  ‘붉은강의 다리를 건너자 아내는 전에 왔던 길이 생각난다고 하였다. 윗층은 호텔이고, 아래층은 식당이었던 그곳을 찾아가 보니, 젤베호텔(Zelve Otel)소프라 식당(Sofra Restaurant)이었다. 안에 들어가니 전에 왔던 일이 생각났다. 식당에 들어가 앉으니, “당신은 전에 항아리 케밥을 먹은 적이 있습니까(Siz Hiç Testi Kebabı Yediniz Mi)?” 하는 문구가 쓰인 종이를 식탁에 깔아 놓았다.


  주문을 받은 종업원은 고기와 양념을 국물과 함께 넣고 진흙으로 봉한 뒤에 아궁이에 넣어 익힌 질그릇 항아리를 가지고 와서 항아리의 목을 쳐 연 다음, 넓고 평평한 질그릇에 쏟았다. 이 그릇을 식지 않게 가열하면서 먹는 쇠고기의 맛은 정말 좋았다. 한국 불고기의 맛과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여행사에서는 팩키지 상품으로 카파도키아에 온 광광객들의 식사 일정에 항아리 케밥을 빠뜨리지 않고 넣는다고 한다. 질그릇 하나에 2인분의 케밥이 들어 있는데, 값은 40리라였다.

  저녁 식사를 한 후에 카이세리로 돌아왔다. 이 부장은 하루 종일 운전하느라 피곤하였을 터인데, 피로한 기색도 없이 우리를 숙소까지 태워다 주었다. 전에 왔던 곳이지만 먼 터키에 와서 이 부장과 함께 한 오늘은 아주 즐겁고 흐뭇하였다.

으흘라라 계곡(Ihlara Vadisi)

  으흘라라는 며칠 전에 갔던 데린쿠유 지하도시에서 서쪽으로 30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계곡이다. 2011522일 일요일에 나는 외사촌동생인 이 부장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으흘라라에 갔다. 오전 1025분에 숙소 주차장을 떠나 1250분에 도착하였다.

  언덕 위에 있는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기암괴석(奇巖怪石)이 있는 절벽이 양편에 있고, 그 사이로 물이 흐르는 골짜기가 이어지는데, 그 골짜기의 길이가 14km나 된다고 한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계곡의 바닥까지는 수직으로 100m쯤 될 것 같다. 이곳은 비잔틴 시대에 수도사들이 은둔생활을 하던 곳으로, 석굴교회와 주거지가 모여 있다. 벽화를 볼 수 있는 교회만도 30군데가 넘는다고 한다. 세계 영화 애호가의 시선을 집중하였던 미국의 액션 SF 영화 <스타워즈>의 로케이션(location) 현장이기도 하다.

  전망대 주차장에는 차도 몇 대밖에 없고,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겨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계곡의 입구가 어디냐고 물으니 아래로 내려가라고 하였다. 아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내려가니, 넓은 주차장과 식당이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식당으로 가서 닭고기와 양고기 케밥을 시켜 맛있게 먹었다.

  점심을 먹은 뒤에 입장료 5리라씩을 내고 들어갔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보니, 절벽이 양편으로 갈라져 있고, 그 가운데에 멜렌디즈 강이 흐르고 있었다. 물은 넓고 깊은 계곡을 가득 채우고 힘찬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강물 위로는 다리가 놓여 있어 건널 수 있게 해 놓았다. 물 양편에 있는 절벽에는 지하 교회와 주거지가 나왔다.

  다리를 건너 절벽으로 난 길을 조금 가다가 계단을 오르니, 석굴교회가 나왔다. 조금 더 내려가다가 교회 표지판을 보고 올라가 보면 역시 교회가 있고, 벽화가 보였다. 여러 교회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뱀교회(Yılanlı Kilise)는 큰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는데, 왼쪽에는 비어있는 무덤이 있다. 여기에는 성 미카엘의 선행과 악행을 저울질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에는 사람의 몸에 뱀들이 얽혀 있는 그림이 있고, 돔 내부에는 예수와 천사들을 그려 놓았다. 남동쪽 벽에는 성모 마리아의 죽음이 그려져 있다. 그 외에도 최후의 만찬,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나무교회(Aǧaç Kilise)는 다른 교회보다 오래된 곳으로, 십자가의 형상을 하고 있다. 문과 마주하는 벽에는 사자 두 마리 사이에 있는 다니엘이 그려 있고, 천장에는 용 그림이 있다.

  그 외의 교회에도 성경에 나오는 많은 사건들을 그린 그림들이 있는데, 일일이 다 적을 수 없다.

  물가로 난 숲길을 따라 걸으며 표지판을 보고 올라가 교회와 주거지를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내려와 숲길을 걸었다. 3km쯤 내려가서 보니, 강물 위로 다리가 놓여 있고, 건너편에 찻집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차를 마시며 담소하고 있었다. 우리 네 사람은 미루나무 그늘에 통나무를 깔고 앉아 나와 아우는 커피를, 아내와 양 선생은 터키 차이를 시켰다. 협곡 안에 들어와 절벽의 기암괴석을 앞에 두고, 힘차게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마시는 커피 맛은 정말 좋았다.

  오리 한 쌍이 새끼를 데리고 와서 손님들이 던져주는 과자를 받아먹는다. 우리는 가진 것이 없어 각설탕을 던져 주었다. 오리는 반갑게 달려가 부리로 집더니만 이내 던져 버린다. 먹을 것과 먹지 않을 것을 저렇게 빨리 판단하다니 놀랍다.

  차를 마신 우리는 다시 다리를 건너지 않고 강가로 난 길을 따라 출입구 쪽으로 걸어왔다. 강가로 난 길을 따라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은 참으로 여유롭고, 즐거웠다. 우리가 출입구 쪽에 거의 다 왔을 때 한국말 소리가 들렸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으니 부산에서 왔다고 하였다. 터키의 외딴 곳에 있는 관광지에서 한국 사람을 떼로 만나니 정말 반가웠다.

셀리메(Selime)

  으흘라라 계곡에서 악사라이 방향으로 15분쯤 달리니, 삼각형 모양의 큰 바위산이 오른쪽에 보였다. 바위에는 창문 모양의 구멍이 뚫린 곳이 아주 많다. 네브쉐히르와 위르귑 사이에 있는 위츠히사르와 비슷한 모양의 바위산이다. 이곳이 셀리메 교회(Selime Katedrali)이다.

  

  올라가 보니, 넓은 교회와 기도실로 쓰였을 것과 같은 곳이 있고, 주거공간으로 쓰였을 것 같은 방도 있다. 괴레메에서 보던 지하교회와 비슷하였다. 올라가는 길 왼쪽에 홀로 있는 원뿔 모양의 큰 바위에도 넓은 구멍이 있기에 올라가 보았다. 왼쪽 벽면에는 가로 1m, 세로 60cm쯤 되는 직사각형 안에 염소를 조각해 놓은 것이 보였다. 양 선생과 나는 염소 그림을 새겨놓은 것으로 보아 번제를 드리던 곳이 아닐까 생각하였다. 다른 방과는 달리 실내가 검게 그을린 흔적이 있는 것도 이런 생각을 갖게 해 주었다.

  바위산 아래로 난 도로 건너편에는 공동묘지가 있다. 작은 무덤이 있고, 한쪽에 넓고 크게 자리 잡은 무덤이 있다. 안내판에는 셀리메 술탄의 무덤(Selime Sultan Türbesi)’이라고 쓰여 있다.

 * 이 글은 2012년 8월 25일에 도서출판 '민속원'에서 간행한 <<터키 1000일의 체험>> 중 <터키 여행의 즐거움과 보람>에 실려 있음.